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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듬성듬성한 나의 일기장을 본다. 요즘 도통 자의로 글을 쓰지 않는다.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도 8할이 마감 때문이다. 사진과 함께 간략한 글을 덧붙이던 일상 블로그는 어느새 휑해졌고, 개인 블로그 속 일상 게시판에 거미줄이 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적어도 분기마다 결산 게시글을 올리겠다고 다짐해 본다.


본래 천성이 그렇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마감의 마감까지 미루는 스타일. 그래서 이번에는 그러지 않겠다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정이 있는 날에는 간단한 기록을 남기겠다고 마음먹었다. 3월 초의 나는 부랴부랴 1, 2월의 사진첩을 뒤져 짧은 메모를 남겼고, 그 메모들은 임시저장 상태로 쌓여갔다.


그렇게 일상의 틈새마다 임시 저장된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들락날락하다 보니 3월 말이 되었다. 스크롤을 내려보니 생각보다 많은 일상이 쌓여 있었다. 하루하루를 보낼 땐, 매일이 비슷하고 심심하게 흘러간다고만 느꼈는데, 막상 모아보니 제법 즐거운 날이 많다.


생각보다 많은 곳을 다녔고, 내 곁에 남아 있는 친구들과의 인연을 이어갔으며,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도 쌓였다. 1분기 동안 읽은 책들도 모아보니 한 손을 넘길 만큼이 되었다. 이렇게 쌓인 조각들을 보고 나서야, 기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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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하루는 느리고, 한 달은 빠르다. 일 년은 바람 같다. 인식조차 못 한 사이에 지나버린 날들이 너무 많다.


일상을 기록한다는 것은, 밋밋하게만 느껴지던 민무늬의 실타래를 묵묵히 꿰어나가는 뜨개질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코를 하나씩 꿰어갈 때는 이게 얼마나 길어질까 의심이 들지만, 지루한 시간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대바늘 사이로 길게 이어진 직물이 생긴다.


당장의 성과는 보이지 않고, 오늘의 내가 자라 내일의 내가 된다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막막하게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다. 목적도 없이 그저 버티는 하루. 나는 고작 내가 되려고 살아온 게 아닌데, 머쓱히 뒤통수만 벅벅 긁게 되던 시간. 손에 쥔 모래알처럼 나에게서 빠져나가는 하루를 붙잡고 싶었다.

 

스치듯 본 어느 글에서는 하루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 본인은 영화를 본다고 했다. 그러면 그날은 ‘영화를 본 하루’가 된다고. 그 문장이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마치 내 과거의 어떤 장면을 건드린 것처럼. 그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나에게도 비슷한 시절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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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을 했지만 준비했던 대외 활동은 떨어지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때. 아르바이트를 나가지 않는 날에는 집에 혼자 남아 있곤 했다. 나의 이십 대를 이렇게 보내도 되나 싶던 즈음, 내가 택한 방법은 집 근처 도서관에서 무작정 책을 빌려오는 일이었다.


대출한 책을 다 읽지 못한 채, 가방에 넣어둔 그대로 다시 반납하러 가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과정마저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에 가거나, 뭐라도 읽고 있으면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아서 좋았다.


나를 둘러싼 그 고요가 좋았다. 그래서 집에서도, 손님이 없는 가게에서도 자주 책을 펼쳤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소설에 집중하기 어려워 짧은 단상이 담긴 에세이를 주로 읽었다. 책 속에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삶을 지나왔는지 훔쳐보는 일은 꽤 흥미로웠다. 그렇게 읽어온 책의 권수보다 더 많은 ‘세상’을 읽으면서, 그때의 나는 나름의 방식으로 하루를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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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내가 문득 떠오른 건 왜일까.


그때의 나는 책이라는 형태로 하루를 붙잡아 두고 있었다. 읽고, 빌리고, 반납하는 과정까지 포함해 그날의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든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하루를 너무 쉽게 흘려보내고 있다. 쉽게 보고, 넘기고, 잊어버리는 방식으로.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하루는 내게 아무것도 없던 하루처럼 기억되었듯, 그렇게 지워진 날들은 어느 순간 나의 삶 전체를 흐릿하게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거창한 기록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완벽하게 정리된 문장이나 의미 있는 결론이 아니라, 단 한 줄이라도 남아 있으면 충분하다. 그 한 줄이 그날의 나를 대신 기억이 되어주니까.


그래서 나는 다시 쓰기로 다짐한다. 나의 오늘이 사라지지 않도록. 적어도 오늘만큼은 ‘없던 하루’로 남기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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