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7일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가자지구를 폐허로 만들었다.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의 영화 ‘힌드의 목소리’는 가자지구에 대피 명령이 떨어진 날, 적신월사로 걸려 온 한 통의 신고 전화를 시작으로 전쟁의 참상을 조명한다.
실제 음성 기록과 자료를 활용한 연출은 우리를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구조대와 불과 8분 거리에 고립된 6살 소녀 ‘힌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 5시간의 기록은 전쟁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이성적인지를 보여준다.
8분 거리를 가로막은 ‘허가’라는 이름의 장벽
힌드는 이미 사망한 친척들의 시신 틈에서 홀로 긴 시간을 견디고 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통화 너머로는 불안한 총성이 빗발친다. 적신월사는 아이를 구하려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불과 8분 거리의 현장으로 대원들을 출동시키지 못한다. 안전 확보를 위해 거쳐야 하는 복잡하고도 비합리적인 조정 절차 때문이었다.
전쟁의 한복판인 가자지구의 도로는 이스라엘군의 승인 없이는 한 걸음도 뗄 수 없다. 출동 허가를 받기 위해 허비되는 시간 속에 적신월사의 초조함은 극에 달한다. 전화기 너머 떨리는 아이의 목소리는 현장의 급박함을 고스란히 전하며 어른들의 무력함을 보여준다.
조정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적신월사 대원들 사이의 갈등이 깊어진다.
모든 형식을 무시하고 당장 구조대를 보내자는 ‘오마르’와 대원들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는 ‘마흐디’. 오마르는 가장 먼저 신고 전화를 받고 현장의 총성을 실시간으로 들으며 아이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마흐디의 냉정함에도 이유는 있다. 수많은 임무를 수행하며 동료들을 떠나보냈던 그는 더 이상 의미 없는 희생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에게 무의미한 죽음이란 최소한의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은 무모한 출동이다. 전쟁터에 ‘안전한 죽음’이란 없겠지만, 상관으로서 그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내 동료들을 살리며 임무를 완수하고자 한다. 하지만 아이의 비명을 듣는 오마르에게 마흐디의 신중함은 방관처럼 느껴질 뿐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사람의 갈등은 점점 절정으로 치달아 사무실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라나는 힌드와 가장 큰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인물이다. 아이를 안정시키려 쿠란을 읽어주는 등 온 힘을 쏟던 그녀는 결국 감정적 소진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한다. 상담사 역시 동요하는 대원들을 다독이는 동시에 힌드와 직접 대화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현실적인 구조 방법이 막막해지자 이들을 SNS의 파급력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참혹한 시체 사진이 넘쳐나는 세상에 이게 무슨 소용이냐는 오마르의 말에, 사무실은 무거운 침묵에 잠긴다. 타인의 고통에 무뎌진 현대 사회에서, 폭력의 참상을 전시해 시선을 끌려는 전략은 효과가 없었다.
고통스러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적신월사는 안전한 경로를 확보한다. 구조대를 출발시키고, 대원들은 전화로 상황을 보고 받고 실시간 모니터링을 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경로를 이탈하기도 하지만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다. 드디어 힌드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 찰나, 총성이 울려 퍼진다. 그리고 구조대와의 연락은 영원히 끊긴다.
모든 절차를 지켰고, 군의 공식 허가까지 얻어냈다. 그런데도 왜 구조대는 피격되어야 했으며, 구급차는 산산조각이 나야 했을까.
승인된 경로, 허락되지 않은 생존
이 영화는 전쟁의 비극을 있는 그대로 비출 뿐이다. 전장 위에 규칙과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죽고 죽이는 참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민간인 보호라는 약속이 폭력의 현장에서 준수될 리 없다. 전쟁은 이기고 지는 것만이 목적이 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비합리적인 과오다.
어쩌면 힌드는 처음부터 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누가 살고 죽을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무질서, 그것이 바로 전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 폭력이 멈추지 않는 한 인간은 모두 죽음을 향해 걸어갈 수밖에 없다. 화면 속 피해자의 모습은 곧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생명을 등한시하는 폭력이 바로 전쟁의 실체다.
힌드와 구조대의 물리적 거리는 단 8분이었지만, 전쟁이라는 벽 앞에서 그 짧은 시간은 영원히 닿지 못할 거리가 되었다. 한 아이를 살리려던 적신월사의 노력을 비웃듯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폭력이 가져오는 허무한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