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만이 나를 이해한다고 믿었던 날들이 있다.
새하얀 종이만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내면을 갈무리하고 삶의 범위를 확장해 나갔던 시간들. 내가 떠나면 일기장은 불태우고, 오래 운영한 블로그는 어떻게 처분할지 골똘히 상상하던 날들. 당시 나의 문장에는 온기보다 축축한 눈물이 가득했다. 글이란 본래 그렇다. 빛나는 겉면보다 드러내기 어려운 이면을 기록하게 되는, 지극히 투명한 고백의 흔적이다.
<타이핑>이 창간된다는 소식에 마음이 들떴다. 인생의 상당 부분을 글에 빚졌고, 평생토록 출판게의 '빛나는 오점'이 되고 싶어 그 주변을 서성거렸다. 스스로를 의심하던 시간 속에서도 글을 쓸 때만큼은 미미한 자부심이 일어, 꺼져가던 자존감의 불씨를 되살리곤 했다. 그런 이들이 모여 모인 소중한 첫걸음. 이 매거진에는 '이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아트인사이트'와 '엘엠디엘 프레스'의 협업으로 탄생한 <타이핑>은 여타 매거진과 궤를 달리한다. 상업 광고도, 테마별로 파편화된 구성도 없다. 하나의 주제 아래 여러 소재를 버무려 내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씀'에 대한 갈망과 고뇌, 좌절과 희망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필자들이 결코 놓지 못했던 글에 대한 애착이 에세이와 리뷰 곳곳에서 짙게 묻어난다.
화자마다 목소리는 달랐지만 지향점은 닮아 있었기에, 이 만남이 더없이 반가웠다.
초고는 쓰레기라는 명제 앞에서
필자들은 글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다가도 결국 스스로 붙잡혀 돌아오는 회귀본능을 발휘한다.
마감이 끝나면 또 다른 마감으로, 변화하는 것들에 찰나의 의미를 부여하며 기억의 실마리를 향해 간다. 마침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마음이 사랑인 것 같다(p.33)"는 결론에 다다른다.
특히 에세이보다 리뷰를 주로 써온 필자로서 깊이 공감한 대목이 있다. "감정에 솔직하기보다 판단을 드러내는 일이 편했다(p.34)"는 장유정 필자의 고백은, 리뷰라는 형식을 빌려 숨어왔던 나의 내면을 대변하는 듯했다.
나는 자주 쓰기 싫어진다
글을 아끼고 쓰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자진해서 여러 마감을 짊어지지만, 마음 한편에는 '쓰기 싫다'는 모순된 감정이 요동친다. 책임 없는 쾌락을 누리고 싶은 유혹도 뒤따른다.
하지만 그 뒤안길에는 늘 부채감이 남는다. '쓰기 싫으면 안 쓰면 되지, 왜 억지로 쓰려 해?'라는 단순한 물음 앞에, 그것이 그리 간단치 않다고 설명하려 들면 마디마디가 길어져 외려 피곤해진다.
그래서 <타이핑>의 필진들이 '쓰고 싶은 의지'만큼이나 '쓰기 싫은 권태'를 솔직하게 털어놓아 주어 좋았다. 좋아하는 일도 지겨워질 때가 있지만, 글쟁이들에게 '안 하기'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써야 한다'는 강박과의 불편한 동거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동거가 결코 싫지 않은 이유는, 그 불편함을 통과하며 비로소 나만의 문장을 생산해 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타이핑하는 순간을 위해
단군 이래 불황이 아닌 적 없는 출판계에서 이토록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고 동경하는 이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글쓰기야말로 가장 접근하기 쉬운 도구로 시작할 수 있는 '자기표현'이기 때문이라 믿는다.
누구나 관심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 건강하게 분출되는 창구가 있다는 것, 서로의 이면을 읽어내며 함께 성장하는 예술이 바로 글쓰기가 아닐까.
글은 누군가를 이겨야하는 매체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는 구조다. 더 많은 사람이 종이에 미안해하기보다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타이핑했으면 한다.
진부한 표현일지라도 <타이핑>이 그런 이들에게까지 멀리 뻗어 나가는 열린 광장이 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