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튜브에서 90년대생이라면 지나치지 못할 그런 썸네일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바로 이 썸네일들이다.
과거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콘텐츠가 이제는 하나의 흐름이 됐다. 재개봉, 팝업, 굿즈샵 등 소식을 많이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오케스트라 공연이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었고, 놓칠 수 없었다.
이번 공연의 주인공은 과거 인기 애니메이션 ‘달빛천사’다. 가수의 꿈을 품고 있는 소녀, 루나가 저승사자 (타토, 멜로니)를 만나면서 ‘풀문’이라는 가수로 변신해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다. 불치병이라는 현실과 사랑, 꿈 사이에서 성장하는 루나를 만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방영 당시, 당시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엄청났다. 물론, 남자아이들도 몰래 봤던 명작 애니메이션이다.
이 공연을 찾아온 관객들 역시 달빛천사를 봤었던 그 소녀들이었고, 공연의 제목조차 그 소녀들을 위해서 이름 지어졌다. ‘달빛천사 오케스트라 콘서트 : 풀문을 찾아서’.
달빛천사 애니메이션이 스크린에 상영되었고, 그에 맞춰 오케스트라가 연주되었다. 공연은 그야말로 달빛천사를 거대한 스크린에서 보는 경험 그 자체였다. 우리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애니메이션 달빛천사와 그 곁에서 영상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던 선율을 재현했다. 2시간으로 압축한 영상을 보면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동안에 우리는 그때 TV 앞을 지키던 소녀가 되었다.
스크린 영상이 이번 공연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전에 봤던 영상 비율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 영상에 계속 몰입했다. 너무 빠져버린 나머지 악기 연주를 보기보다는 영상만 뚫어져라 봤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에는 영화가 끝났을 때처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마무리까지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했던 것만 같았다.
애니메이션 기반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영상을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영상을 기반으로 세트리스트가 구성되었는데, 영상에서 진행된 서사에 맞는 곡들이 연주되었다. 같은 곡이 3~4번 반복되었음에도 각 영상의 흐름과 분위기에 맞게 변주되어서 들을 때마다 새로운 곡을 듣는 신선함이 있었다. 전개 장면에서는 경쾌하게, 감정 절정부에서는 웅장하게 편곡했다. 여기에 연주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어울리는 색의 조명이 비치면서 점점 음악에 빠져들었다.
세트리스트
Part 1
• 나의 마음을 담아
• Saikai + Yume no Kakera
• New Future
• Barechatta!
• New Future (reprise)
• Onegai! Takuto!! + Hidamari no Naka de + Myself
• Sora wo Miagete + Soredemo Utaitai
• Takuto no Theme
• Dokidoki Hatsushigoto
• Mou Aenai no
• Umaku Ikanai na + Chiisana watashi
• Chikai
• Unmei no Hi
• Myself (reprise)
• Eternal Snow + Wana
• Yakusoku
• Eternal Snow
Part 2
• Reikai kara no Shirei + Izumi no Theme
• Sora wo Miagete (reprise) + Eternal Snow (reprise)
• Mou Aenai no (reprise) + Chiisana watashi (reprise)
• Miezaru Mono + Wana (reprise)
• Tsuki no Keifu + Myself
• Oshigoto Shimasho♥
• Smile
• Unmei no Hi
• Tsuki no Keifu + Eternal Snow (reprise)
• Love Chronicle + Sabaki no Toki + Umaku Ikanai na (reprise)
• Soredemo Utaitai (reprise) + Eternal Snow (reprise)
• Kokoro no Soba ni
• Love Chronicle (reprise)
• Sora wo Miagete (reprise) + New Future (Full, reprise)
맨 처음으로는 그 유명한 오프닝곡 ‘내 마음을 담아‘로 산뜻하게 시작했다. TV에서 작게 들렸던 음악이 오케스트라 홀에서 울릴 때 처음으로 그 스케일을 느꼈다. 1부의 마지막 곡은 Eternal Snow였다. 루나가 에이치 오빠의 무덤 앞에서 오열하던 그 장면에서 흘렀던 곡이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 그 아련함이 오케스트라 선율에 실려 공연장을 가득 채웠을 때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왔다. 단순히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의 벅차오름이 아니라, 그때 그 장면과 함께 묻어뒀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나만 느낀 줄 알았는데, 옆자리 관객도 그런 감정을 같이 느낀 것 같았다.
사실 고백을 하자면 유명한 곡만 알고 있었고, 미리 다른 곡들을 듣고 가지는 않았는데 몰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영상에 몰입하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모든 곡이 연주되었고, 공연은 끝나 있었다.
원래라면 2시간 동안 공연을 보면서 중간에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지루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이번 공연은 그렇지 않았다. 곡 사이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분위기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세심한 조명, 영상과 음악이 하나로 이뤄져 서사를 만들었기에 2시간 동안은 다른 생각은 할 새도 없이 집중을 했다. 이렇게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공연은 끝나있었다.
마지막 앵콜에서는 소녀들을 위한 싱어롱 타임이 준비되었다. 사전 투표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곡들을 서로 부를 수 있는 특별 시간이 준비되었다. 노래방처럼 가사를 띄어주고 다같이 노래를 불렀는데, 처음에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게 부끄러워서 소리가 작았지만, 점점 후반부로 갈수록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추억을 함께 공유한 세대를 위한 공연에서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2000년대, 각자의 가슴속에 달빛천사를 품고 있던 소녀들을 눈물짓게 만드는 무대였다. 2시간 동안 나는 분명 어른이었는데, 어디선가 그때의 내가 같이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