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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 삼매경 [공연]

도달할 수 없는 상태를 향해 계속해서 미끄러지는 나와 우리가 보이는 연극 <삼매경>

by 이유은 에디터
2026.03.21 16:22

 

 

[국립극단] 삼매경(2026) 포스터.jpg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일상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곳에서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흐른다. 돌아갈 수 없는 방식으로, 되돌릴 수 없는 속도로.


연극 <삼매경>은 바로 그 상태를 집요하게 붙잡는다. 제목이 의미하듯, 이 작품은 단순한 몰입이 아니라 빠져나올 수 없는 상태, 혹은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인간을 끝까지 따라간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배우가 있다. 그는 35년 전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실패’로 규정한 채, 그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현실과 무대의 경계는 이미 흐려졌고, 그는 여전히 그 역할 속에서 살아간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그 장면을 붙잡으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혹은 매번 다른 자리에서 멈춘다.

 

실패는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계속해서 호출되는 감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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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삼매경>은 사건을 전개하기보다 하나의 상태를 보여준다. 무언가를 극복하거나 해결하려는 서사가 아니라, 어떤 기억에 붙들려 있는 인간의 수많은 구조를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의 차원을 넘어선다. 연극 <삼매경>이 보여주는 배우의 상태는, 자아와 의미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라캉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는 처음부터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을 통해 형성된다. 이를 ‘거울 단계’라고 부르는데, 이 과정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하나의 완전한 이미지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 인식은 사실 하나의 오인에 가깝다.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언제나 이상적인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 속에서 살아간다.

 

한편 데리다는 의미가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어떤 대상이나 상태의 의미는 끊임없이 미뤄지고, 완전히 도달할 수 없는 채로 남는다. 이를 차이와 지연을 합하여 ‘차연’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는 원래의 의미가 유지되기보다는 오히려 계속 변형되고 미끄러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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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삼매경>의 배우는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한때 도달했다고 믿었던 ‘완전한 자아’, 즉 '도념'이라는 역할 속의 자신을 붙잡고 있는 존재에 가깝다.

 

그러나 그 동일성은 애초에 완전한 것이 아니었고, 라캉이 말한 것처럼 하나의 오인 위에 세워진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아무리 반복해도 그 상태로 돌아갈 수 없으며, 오히려 그 간극만을 계속해서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반복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배우가 집요하게 되풀이하는 연기는 완벽한 재현을 향한 시도처럼 보이지만, 그 반복은 원본에 도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 데리다의 관점에서 보자면, 완벽한 연기란 애초에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배우가 붙잡고 있는 것은 실제의 과거가 아니라, 스스로 구성해낸 하나의 흔적에 가깝다. 곧이어 사라질 흔적만을 쫓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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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연극 <삼매경>은 한 인간이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상태를 향해 계속해서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구조 자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끝내 자신을 놓지 못하는 태도를 끝까지 견디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연극’이라는 형식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연극은 본질적으로 반복되는 예술이지만, 동시에 매 순간이 단 한 번뿐인 경험이기도 하다. 같은 장면을 다시 올릴 수는 있지만, 완전히 같은 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반복할수록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관객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극을 관람해도 그것은 똑같은 극일 수 없는 것이다.


연극 <삼매경>은 그 아이러니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연극에 인생을 바친다는 것은 축복인가, 아니면 저주인가.' 이 질문은 쉽게 답할 수 없는 채로 남는다. 도념에게 있어 '연극'과 같은 존재는 극을 관람하는 나를 포함한 관객들 각자의 삶 속 어딘가에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현실같으면서도 문학같기도 한 유려한 대사 속에서 관객들은 이리저리 헤엄치게 되지만, 한 지점마다 분명히 도념에게서 나를 비추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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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극의 전개는 특정한 사례를 통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실패를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끌어안은 채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 불완전한 나를 수없이 죽이고도, 완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무대 위에 서는 것. 똑같은 장면, 똑같은 대사가 머릿속에서 반복되지만 그것은 이미 결코 다르다는 것.

 

이 수많은 현상을 연극 <삼매경>은 극적이고 유려하게, 무엇보다 일품인 배우들의 연기로 잘 표현하여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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