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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인간의 사유는 축복이자 가장 큰 고통이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은 삶에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을,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불가역성을, 그 흐름을 막을 수도 없다는 불가제항의 운명을 마침내 깨닫는다. 되돌릴 수도, 막을 수도, 그렇다고 벗어날 수도 없는 시간 안에서 인간은 때로 또 자주 괴로워한다. 절실했으나 완벽해질 수 없었던 그날, 그 장소, 그 시간은, 그래서 누군가에게 평생의 번뇌로 남기도 하는 것. 다만 ‘그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으나 어쩌면 ‘그 장소’는 유사하게 다시 소환할 수 있을 것이라서, 그 장소로 기어코 돌아감으로써 예술이 되어버린 사건이 있다.


연극 <삼매경>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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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념(지춘성)은 배우다. 배우를 ‘연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헐겁게 규정한다면 도념은 오래도록 연극 무대에 오르며 직업윤리를 지켜온 좋은 배우일 테지만, 지나간 무대를 번뇌하고 후회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도념은 ‘삼류’ 배우에 불과하다. 이것은 오래전 연극 <동승>에서 진정한 ‘도념’이 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배우 자신의 규정이기도 한데, 그래서 다시, 죽음을 앞둘 만큼 늙어버린 배우 도념은 오래전 그날로 돌아가 무대에 오르길 간절히 소원한다.


완전한 죽음에 이르는 삼도천을 건너기 전, 도념은 자신을 마중 나온 엄마(곽성은)와 조우한다. 죽음의 세계에서 만난 모자의 상봉은 애틋하지만, 도념에게 남은 강한 미련은 그리운 엄마와의 재회마저 미루고 다시 그의 세계―연극의 공간으로 돌아가 만든다. 도념이 삼도천으로 다시 몸을 던져 죽음을 거스를 때 그가 느끼는 것은 ‘엄마의 양수’ 같은 물의 온도, 과거 연극 속 인물인 ‘도념’에게 부재했던 그 모성의 온도다. 이처럼 새롭게 깨닫는 낯설고 절실한 감각들은 다시 연극 속 도념이 되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되어 시간마저 거스르고, 도념을 그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동승>의 연습실로 데리고 간다.


배우로서 존재할 때는 제발 자기 자신을 다 버리고 와야 한다는 연출(심완준)의 절규처럼, 배우는 텍스트 안에서 죽어있는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직업이자, 그 인물과 하나가 되는 합일의 행위다. 그 숭고한 행위는 필사적이면서 동시에 필생적이어야 하므로 이제 도념은 자기 자신을 반드시 죽이고, <동승>의 도념으로서 다시 한 번 살아내야 한다. 평생 도념 그 자신이 되어주겠다며 어린 도념(조성윤)과 맺었던 약속을 지키고, 진정한 배우로서, 혹은 완전한 도념으로서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서.


도념이란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도념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어머니를 잃는 것조차 반갑게 느껴지는, 광기에 가까운 열망으로 배우 도념은 되돌아간 시간에 온힘으로 몰두한다. 그러나 배우 도념은 어린 도념과 결코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흉내만 낼 뿐 결코 진정한 타인이 되지 못하는 배우로서의 한계, 자신은 느리고 재능 없는 배우일 뿐이라는 절망감. 그 절망감은 차라리 도념에게 새로운 장르를 제시한다. 완전히 동일할 수 없다면 유사하게 비틀어버리는 패러디로서의 연극, 혹은 누구나 마음껏 누군가가 되어도 좋은 공동창작으로서의 삶의 길이 그것이다.


연극을 사랑하기에, 죽을 만큼 사랑했고 죽일 만큼 사랑했기에, 도념은 새롭게 시작된 자신의 마지막 연극 속에서 다른 도념들을 죽여 나간다. 진짜 도념이 될 수 없다면 자신만이 유일한 도념으로 남아 다른 도념들을(도념이 되기에 실패한 도념들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 도념은 도념들을 살해한 후 6구의 머리를 불전에 올린다(이것은 언젠가 다시 만날 어머니를 위해 6마리의 토끼를 살생했던 <동승> 속 도념에 대한 불완전한 패러디이기도 하다). 이것은 도념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연극이라는 사바에 올리는 제의처럼 보이는데, 그 괴로운 세계의 끝에서 배우 도념은 다시 유수와 같은 시간―생로병사의 흐름 속으로 되돌아간다. 간절하게 돌아왔다가 끝내 정도(正道)로 되돌아가는 이 불가역적 과정에 ‘해탈’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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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운 ‘허공’에서 방황하며 너(도념)와 나(도념)의 중간, 무한한 채움의 공간으로서 남겨진 대본의 ‘사이’를 메우기 위한 필생적 분투에 실패한 배우가 여기 있다. 그러나 그 실패는 결코 실패가 아닌 실패일 테다. 배우 도념의 34년. 그 시간을 힘겹게 만든 것은 <동승>의 도념이지만, 그 시간을 배우로서 버티게 해준 것도 사실은 바로 그 도념이기도 한 것. 배우와 인물의 관계는 창조하는 신과 창조된 피조물이고, 마음을 알아주는 은사와 그만큼 자신을 내어주는 보은자이며, 무대에서 그 자신이 되어줄 것을 약속하는 나와 그 약속을 지키려 평생을 내어주는 나의 관계다.


우주이자 별이고, 살아있으며 죽어있고, 나이면서 타인인 것. 어느 무엇도 누군가도 아닌 채 남겨진 '사이', 그 아름다운 미완성이 배우의 숙명이다. 무대 위에서 마지막 종을 칠 때 도념의 세계가, 배우 지춘성의 세계가, 그가 오래도록 지켜왔던 연극의 세계가 무너진다. 이것은 어쩌면 그날엔 결코 완성될 수 없었던 ‘그 시대’의 연극이 새로 도래한 ‘동시대적’ 연극에 자리를 내어주기 위한 자발적 붕괴이기도 할 테다. 살고 죽고 다시 살아도 연극은, 혹은 예술은 영원히 미완인 채 삼매경을 향해 유수처럼 흐를 것이다. 그리고 그 숭고한 붕괴의 흔적 위에 우뚝 다시 세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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