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공연은 처음이었다. 무용과는 큰 인연이 없었다보니.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 소개글을 확인하면서, 내가 전공하는 역사와 내게는 낯선 발레가 어떻게 어우러져 예술 작품이 되는지 궁금해졌다.
사료를 토대로 하는 '문헌'사학인 역사와 몸으로 감정과 상황을 표현하는 무용의 만남은 어쩌면 약간 모순적으로 느껴지기기도 했다. 직접 보고 싶었다. 마주하고 싶었다. 언어가 아닌 음(音)과 무(舞)로 담아낸 안중근 의사의 삶을 만나러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으로 향했다.
공연은 수미상관 구조로 진행되었다. 막이 오르고 음악이 흐른다. 뤼순 감옥에 갇힌 채 무릎을 꿇은 안중근 의사가 등장한다. 천천히 바닥을 쓸며 몸을 움직인다. 전신으로 인물을, 상황을, 감정을 표현하는 무용수들. 그들의 팔과 다리, 손끝과 발끝마다 오랜 시간이 새겨져 있다.
백여 년 전 과거를 재현하는 이들의 몸짓은 모두 수십 년간 연습으로 쌓아올린 흔적들이다. 그 걸음을 따라 '안중근'의 일생이 그려지고, 다시 뤼순 감옥으로 되돌아온다.
그중에서도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3장과 4장이었다.
3장은 일본군 장교 이시다가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연회를 여는 파트로, 의도된 것인지 분위기 때문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묘하게 일본 느낌을 덧입힌 듯한 음악이 인상적이었다. 흐르는 선율을 따라 춤추는 사쿠라의 안무 역시 유독 동양적으로 다가왔다.
발레라고 하면 자연히 서구권의 이미지가 강한데 어쩌면 그조차 편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4장에서는 안중근의 연해주 의병 활동을 다루고 있었다.
총을 든 의병들의 군무. 곧이어 천장에서 내려온 끈을 붙든 일본군들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왜 소품으로 끈을 활용한 건지 의아했다. 총이나 칼이 더 현실성 있지 않나 싶었다. 그러나 안무가 이어지고 장이 끝나가면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용수들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 검은 천들이 안중근을 포위하고 끝내 허공에 옭아매는 순간. 챕터가 끝이 났다.
공연 시간 70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대한 독립을 진심으로 염원하던 안중근 의사의 시간과 감정이 발레 안무로 화해 여기 펼져진다. 낯선 동작들을 마주하는 내내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고민했다.
하나하나 낱낱이 눈에 담고 싶은데, 저 손짓 하나조차 무용의 언어일 텐데, 넓은 무대를 온전히 담기엔 인간의 시야는 너무 좁았다. 몇 번쯤 다시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영상을 촬영할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이 불쑥불쑥 솟구쳤다.
이번 공연은 발레를 처음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발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대사도 가사도 없이 오로지 무용만으로 상황과 사건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희미한 걱정이 무색할 만큼 아름답고 선연했다.
그동안 활자로만 보았던 안중근 의사의 삶을 이렇게 섬세한 방식으로 마주볼 수 있다니. 역사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창작 발레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음에 또 발레 공연을 보러 오는 날이 생길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성큼 내게 다가오듯 선명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