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TV 프로그램에서 집에서 버섯을 키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평범한 아파트 방 한 칸에 어둡고 축축한 안개 같은 것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었고, 방에는 나무토막이 가득 차 있었다. 작은 나무토막 사이사이로 버섯들이 크고 작게 붙어있어 초등학생이었던 내 눈엔 버섯이 약간 징그럽게 느껴졌고, 버섯이 나무에 기생하는 존재로 생각되어 그때부터 느타리버섯같이 생긴 버섯은 기피하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엔 그저 샤부샤부에 들어가는 맛 좋고 몸에 좋은 ‘식품’으로서만 여겨졌는데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을 읽고 나니 그들이 나무나 땅에 기생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존재감을 뿌리내린 ‘정복자’로서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을 넘기자마자 화려한 색감에 눈이 부시다. 무려 14개의 별색을 사용해 버섯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별색 인쇄’는 4도 인쇄(CMYK)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색을 별도로 만들어 금색, 은색 등 특수한 색을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하는 인쇄라고 한다. 마치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흑백 화면이 컬러로 전환되던 순간처럼, 갈색의 책을 펼쳤을 때 마주하는 화려한 버섯의 세상에 압도되고 만다. 버섯은 갈색이라는 편견을 깨려는 작가의 의도가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와닿은 것 같다. 그리고 첫 장에는 ‘버섯 독립선언문’이 아름답게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다른 과학 책들과는 다르게 버섯이 버섯이야기를 잡지 형식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귀여운 동물이나 요정 등을 등장시켜 친절하게 설명하는 기존 책들과는 아주 다르게 버섯 당사자가 자신들의 세계에 대해 말해준다는 점이 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꽤나 흥미로운 접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어릴 적 유행하던 외국 형식의 과학 잡지를 자주 접하던 어른이라면 반갑게 이 책을 마주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굉장히 친절하면서 강한 어조로 자신의 세계를 안내한다. 이렇게 자존감 높은 버섯은 처음이라 상당히 그들의 태도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오래도록 문화와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이집트 역사가를 만난 느낌이랄까?
버섯은 계속해서 외친다. 자신들은 식물이 아니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균류로서 오래도록 존재하고 있고 자신들이 원하고 환경이 허락한다면 아주 커다랗게 자랄 수 있는 절대적 생명체로서 지구에 살아왔으니 자신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들의 강한 외침 덕에 책을 통해 버섯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풀렸다. 버섯은 나무나 땅속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닌 물속, 솔방울, 다른 버섯, 심지어 배설물에서도 자랄 수 있다 한다. 또 개미의 뇌를 조종해 자살로 이르게끔 하여 자신의 포자를 퍼트리는 무시무시한 버섯도 있고, 낮에는 보이지 않고 밤에만 밝게 빛나는 신비한 버섯도 있다.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땅과 나무에 피어난 작은 존재로 보이지만, 실제론 숲 아래 거대한 곰팡이 균사의 그물망을 펼쳐놓고 숲에 사는 모든 생명체들, 즉 나무와 식물 그리고 동물을 잇는 매개체로서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곰팡이의 균사는 나무뿌리가 닿는 범위보다 훨씬 넓은 땅에서 영양분이 녹아있는 물을 모아 나무에 전달하고, 나무는 목마름을 해결하며 자신의 잎과 껍질과 열매를 버섯과 동물에게 나눠준다. 그리고 동물의 배설물을 통해 또 다른 곳에서 곰팡이의 균사는 새로운 땅을 개척하고 수백만 년 동안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며 공존해왔다.
버섯의 공존 능력은 땅 위에 존재하는 인간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환경적으로 생태계에 어떤 이점을 가져다주고 있는가? 플라스틱 시대를 만들며 기후 위기에 놓인 지금, 우리는 그들이 구조해낸 완벽한 생태계에 공존하고 있는가? 약육강식을 강조하며 그저 인간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해서 파괴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균류가 발견된 현대 사회에 버섯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이 책은 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인간들에게 생각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주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 챕터 속 ‘문화의 창’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숲은 누구에게나 넉넉하단다. 그걸 기억해라”
할아버지가 내게 말씀하셨다.
“다만 오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아. 우리는 기쁨을 찾으로 숲으로 가는 거야.”
버섯을 말리던 종이 위에서 발견됐다는 이 문구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숲과 인간의 공존의 의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버섯보다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균류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버섯들의 독립 선언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 환경문제뿐만 아니라 인간들끼리도 공존의 의미를 잃어가는 요즘 시대에 생각의 변화구를 던지는 뜻깊은 도서 <미코, 버섯의 모든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