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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가 발간한 <기부트렌드 2026>을 덮으며, 이 책을 쓴 저자들과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 모금가, 그리고 연구자들에게 어떤 리뷰가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 고민했다.


본서는 7가지 핵심 트렌드—AI가 대체할 수 없는 기부의 감정, 시급성에 반응하는 적시 기부, 기술을 넘어 가치를 빚는 사람 등—를 통해 기부 생태계의 청사진을 수준급으로 그려냈다. AI 및 빅테크 기술이 모든 것을 대체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욱 선명해진 ‘인간다움’과 ‘진정성’의 가치를 중심으로 기부 행위를 분석한 점이 인상적이다.


본인의 기부경험은 평균보다는 웃돈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과 함께 정기적인 금품 후원을 지속해왔고(현재는 중단했지만), 아름다운 가게나 당근마켓 나눔을 적극 활용한다. 무엇보다 머리카락과 난자 같은 신체 조직을 기부한 이색적인 이력도 있다. 그런 내가 현재 기부를 중단한 이유는 과정과 완결에서의 '불투명함' 때문이다. 정확히는 기부처가 기부자와 기부 물품을 대하는 태도와 시스템에 대한 실망이다. 책에서도 기부자들이 어떤 동기로, 어떤 결과를 위해 기부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은 다소 빈약하게 느껴졌다.



 

1. 기부의 재정의: 가장 인간적인 행위


 

책은 기부를 [가장 인간적인 행위]라고 정의하며, 기부를 움직이는 감정과 동기가 인간만이 갖는 특별함이라고 말한다. 그 동기를 가치 소비 시대의 도래, 심리적 ROI, 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효과 등으로 설명한다. 그렇다면 독자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청사진이 기부자의 실제 동기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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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노원구청 공식 블로그, [소아암 친구들을 위한모발 기부방법]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자.

 

나와 내 사촌동생은 최근 머리카락을 기부했다. 25cm 이상의 길이를 유지하기 위해 1년간 파마나 염색 등 약품 가공을 최대한 멀리하며 애지중지 길렀다. 정성껏 잘라 택배를 보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 머리카락이 실제 가발 제작에 쓰였는지, 분류 과정에서 버려졌는지 알 길이 없다. 도착-분류-가공-완성-유통이라는 기부의 여정 중 내 기부물이 어디쯤 있는지,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수의 영역'에 남겨진 것이다.


택배 상자 하나도 실시간 추적이 가능한 시대에, 기부자의 '알 권리'는 기부라는 거룩한 명분 아래 철저히 소외된다. 이러한 간과가 기부 조직에 대한 불신을 만들고, 장기기증 기피와 같은 사회적 폐해로 이어진다. 내 몸에서 떨어진 신체 조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가치를 창출했는지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은 기부자의 당연한 권리다.

 

 

 

2. 동정의 시대에서 ‘스토리두잉(Storydoing)’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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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네스코한국 위원회

 

 

어린 시절, TV 광고 속 기부는 전형적이었다. 유색인종 아이들과 굵은 서체의 ARS 번호는 우리의 동정심을 겨냥했다. 그러나 유튜브와 OTT의 시대가 도래하자 기부는 연대와 나눔, 후원과 투자 등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재난 현장의 버스 대절, 선결제, 연예인 팬덤의 물품 기부, 당근마켓의 나눔 버튼이 그 증거다.


물론 구세군 종소리와 광화문 한복판의 기부 온도계는 여전하지만, 최근의 기부는 래퍼 이영지의 [경찰과 도둑] 콘텐츠 후원 사례처럼 진화했다. 기부자가 콘텐츠의 주인공이 되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소비한다. 이제 기부는 단순히 불쌍한 이를 돕는 시혜적 행위가 아니다. 독립된 개인이 또 다른 개인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주체적인 연대 행위다.


책은 기부자의 욕망이 뾰족하고 고도화되었음을 언급한다. 기부자가 자신의 임팩트를 직접 확인하고 감시하고 싶어 한다는 점도 짚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화되려면, 기부가 아주 사적인 욕망의 실현임을 인정해야 한다. '기부'라는 착한 어감이 행위의 유일한 시발점이 되던 시대는 끝났다. 기부는 나의 가치관을 증명하고 만족을 얻으려는 지극히 고차원적인 욕구의 발현이다.


 


3. 남은 과제들: 투명성을 넘어선 ‘통합 임팩트 플랫폼’


 

그렇다고 기부자 개개인의 모든 변덕스러운 욕구를 들어준다면 그것을 공적인 기부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이 파편화된 상태로 시스템이 유지 된다면, 꾸준히 기부를 하고자 하는 단단한 기부층을 얻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난 아래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소셜 임팩트 통합 플랫폼’ 개설을 조심스레 요구하고 싶다.

 

 

• 큐레이션 :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기부자에게 뾰족하고 정교한 기부처를 제안하여 사적 욕망과 사회적 필요를 매칭해야 한다.

 

• 실시간 연결 : 재난 상황에서 개인-기업-단체-현장을 매끄럽고 빠르게 연결하는 집합적 관리 주체가 되어야 한다.

 

• 가이드라인 : AI 등 신기술 도입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세우고, 사회적 가치 페스타와 같은 꾸준한 교류 및 소통의 장을 개최해 건강한 생태계를 조성한다.

 

 

기부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기부자 본인의 가치관을 증명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다. 기부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호혜성’의 발현이자, 현대인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스토리두잉’이 되었다.

 

<기부트렌드 2026>이 제시하는 미래는 결국 기술을 도구 삼아 어떻게 더 인간다워질 것인가에 달려 있다. 비영리 기관들이 기부자의 욕망을 존중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해 그 욕망을 구체적인 사회적 임팩트로 전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기부의 혁명은 시작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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