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을 맞이한 정원가의 마음으로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을 보고 있다. 생명의 흔적은 희미하고, 흙은 딱딱하고, 눈은 그칠 줄을 모르지만 마음만은 들뜬다. 정원의 생명들은 지금 아래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며 즐길 수는 없지만 흙 아래로 깊이깊이 뻗어 나가는 뿌리를 상상할 수는 있다. 드디어 정원가의 시선으로 겨울을 맞이한다.
나는 원래 겨울을 싫어했다.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계절이라 늘 부담스러웠다. 12월이 오면 스스로 이뤄낸 것이 없음을 깨달았고, 1월엔 무엇이든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유독 21살에 맞이한 겨울은 견디기 힘들었다. 영화가 좋아서 영화과에 입학했는데, 창작이 아닌 노동을 하는 기분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몸이 힘들어도 마음만은 굳건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내게 유일한 의미였던 영화가 노동이 되어 버렸을 때, 삶의 의미도 흐릿해졌다. 꿈이 아닌 돈을 목적으로 일만 했던 시기에 나는 무엇을 심어도 무엇도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독립서점에서 ‘식물’에 관한 에세이집을 발견했다. 식집사의 노하우와 일상 이야기가 담긴 짤막한 글이었다. 읽는 동안 식물 키우기와 마음 보살피기의 상관관계를 떠올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 반가워서 식집사가 되어 보기로 했다. 식물 이름은 ‘율마’ 이름도, 생긴 것도 귀여워서 호기롭게 선택했는데 크기는 귀엽지 않았다. 예상보다 큰 율마를 보고, 생명의 책임감을 느껴버린 나는 식물일기까지 쓰기로 했다. 가볍게 시작한 식물 키우기는 힐링과 낭만, 감상의 즐거움보다는 분투의 즐거움을 선물했다. 일기장이 빼곡해지는 동안 생명을 다루는 일에 대한 경건함이 생겼다.
식물은 디테일이 중요하다. 필요한 물과 햇빛의 양이 상이해서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계절에 따라 적절한 토양 수분량도 다르다. 그래서 흙의 상태를 예민하게 체크하는 것이 좋다. 물론 물과 공기가 통과할 수 있도록 흙의 밀도를 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빛을 좋아하는 율마는 두배로 까다롭다. 집에 햇빛이 가장 환하게 들어오는 시간과 자리를 관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율마가 초보식집사가 키우기에 적합한 난이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식물일기까지 쓰며 키운 율마는 2023년 무더운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내 곁을 떠났다.

율마가 떠나며 남긴 것은 의외로 식물에 대한 애정이 아니었다. 식물을 키우며 매일매일 쓰던 일기였다. 내게 동력은 율마의 성장을 보는 것보다 두둑해지는 일기장을 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내 안의 작은 정원을 가꾸는 일과 비슷해서 일상을 정원가의 마음으로 살게 한다. 하루하루 성실히 관찰하고, 보살핀다. 가볍게 시작한 식물일기는 변화무쌍한 흙과 나를 사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노쇠하고 헐벗은 땅속에서 많은 씨앗들이 비밀스럽게 싹을 틔운다’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 카렐 차페크의 말이다. 나는 아직 겨울이라는 계절을 지나고 있다. 이뤄낸 것 없이 주변은 온통 눈밭이다. 하지만 이제는 겨울이 싫지 않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겨울은 자라나는 것을 멈춘 계절이 아니다. 오히려 발아할 때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끈질기게 생명력을 틔우고 있다. 소복이 쌓인 눈 아래로, 차갑고 딱딱한 흙을 뚫어 가며 단단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