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다’는 것은 주로 ‘모른다’는 말이 성립할 때 이루어진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계속해서 소통에 대해 배운다는 것은, 인간은 언제나 소통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쌓일 수록 그것의 부재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의사소통의 이론, 적용할 수 있는 스킬도 좋지만 이번에는 소통의 단절이 불러일으킨 쓸쓸함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다.

소설 <감겨진 눈 아래에>(2019, 황금가지)는 일곱명의 작가가 각자의 개성을 담아낸 일곱개의 여성서사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소설집이다. 책의 뒷 페이지에는 ‘더없이 참담한 세계를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라!’ 라는 문구로 책의 주제를 강조한다. 귀를 기울여 들으라는 문구 답게 일곱개의 단편 모두 사건의 발단에 의사소통의 문제점이 자리한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 세가지를 다뤄보려한다.
첫 번째 이야기, <황금 비파>_정도경
책 표지 상단의 눈 그림 다음으로 가장 눈에 띄는 비파 그림. 그 그림의 출처가 바로 첫 번째 소설, 정도경 작가의 황금비파이다. 호수를 건너던 배, 갑자기 몰아친 폭풍우로 배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갑자기 돌변한 사람들은 신에게 바칠 제물을 찾기 시작한다. 지목된 제물은 비파를 가지고 홀로 승선한 여성. 사람들은 그녀의 비파 연주소리가 호수의 신을 화나게 했다며 호수에 던져버리기로 한다. 배 위의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목숨을 도둑맞은 것이다. 의사소통의 장애 요인에 인지 심리적 요인과 물리적 요인이 있다. 사람들은 안정적 상황에서는 그녀의 비파 소리를 칭찬했으나 위기상황이 닥치자 함부로 판단하고 극단적 결정을 내린다. 그들의 감정상태가 불안정해지고 환경이 위협적으로 바뀌자 의사소통에 잡음이 발생한 것이다. 이성적 판단이 불가능해지고 선동에 휩쓸리기 쉬워지면서 여성과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는 여성의 아픈 희생이었다.
신은 없었다. 순식간에 호수로 밀려난 여성은 호수의 괴물을 마주하고 황금 비파를 연주하라 강요받는다. 명주 실에 비해 단단한 황금 실은 여성의 손가락 살점을 망가뜨렸고 괴물은 그녀를 괴롭혔다. 우여곡절 끝에 여자는 직접 괴물을 죽이고 호수 밖으로 살아나오지만 그녀는 환영받지 못한다. 모두 황금 비파를 노리거나, 여자의 몸을 노리거나, 둘다 노렸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멸시받던 그녀는 빠져나오고자 발버둥쳤던 호수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온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경청의 부재와 무관심 속에서 그녀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손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록 간절히 원했던 육지로의 복귀는 소통의 단절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렇듯 엄청난 희생과 엄청난 노력도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특히 이야기 속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 사건의 피해자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겉만 번지르르한 듣기가 아니라 마음을 다한 진심어린 듣기로, 정성스레.
두 번째 이야기, <망선요>_김인정
책의 두 번째 단편으로 등장하는 김인정 작가의 망선요는 소설의 대부분이 대화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망선요는 허난설헌의 시 제목이기도 하다. 과거의 인물인 허난설헌이 이야기한 낙원과 대척점에 서 있는 현대의 모녀가 느끼는 슬픔과 불행은 시대를 역행한 듯 아리다. 후배의 부탁을 받고 공부방에 봉사를 하러 다니는 여성(딸)은 공부 방 옆집에 살고 있는 어린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려준다. 단순히 그 아이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 아이에게 자신의 어린시절을 투영시켜 대화를 이어나간다. 대화를 이어 나가는 도중 어머니는 딸이 소녀의 이야기를 하다가 과거 학대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 꺼내자 계속해서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한다. TV 좀 켜보라느니, 리모컨이 고장났다느니, 아버지한테 전화하라느니, 딸의 논지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한다. 말을 자꾸만 돌리던 어머니의 말에 개의치 않고 딸은 계속해서 소녀의 이야기와 자신의 기억에 대해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이야기에 경청하는 태도를 어겨가며 자신들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것이 결코 정상적이고 올바른 의사소통 방식이라 할 수 없지만 그 단절에서 오는 답답함이 소설의 주제를 더욱 강조한다. 누가 모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 이유에는 사회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동시에 존재한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연고도 없는 곳에 남편을 따라 살게 되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더해 남편은 폭력적이었고 아이는 어려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땅한 상대가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곳에 대화가 단절된 채 홀로 고립된 환경에서, 어머니는 딸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다. 꿈 속에서 모든 압박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낙원을 경험하고 잠에서 깬 어머니는 화장실에 숨어있다 나와 호기심에 밤 칼을 집어 든 어린 딸을 보게 된다. 순간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눈 앞에 있다는 듯 경멸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본 어머니와 그 눈빛을 알아챈 어린 딸. 모녀는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럽다. 절대 지우지 못할 상처를 서로에게 받았고 서로를 원망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살아왔다. 교류의 단절, 대화의 단절, 그리고 아내와 남편 간의 소통의 부재로 그들은 평생을 안고 살아갈 상처를 서로에게 입혔다.
세 번째 이야기, <감겨진 눈 아래에>_전혜진
소설집의 표제작으로 가장 긴 분량을 자랑하는 전혜진 작가의 감겨진 눈 아래에는 부정적 단면이 극대화 된 가상사회를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진정한 성별의 평등이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는 미래 세계에서 유일하게 퇴보한 국가로 대한민국이 등장한다. 과거부터 존재했던 남존여비 사상을 극대화시켜 여성을 등급화하고 평가하여 남성의 부속물 또는 성욕을 해소하고 아이를 생산하는 기계 쯤으로 치부하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사회라는 설정이다. 한국계 프랑스인인 여성 엠네스티 인턴 세실은 여성 인권에 대해 조사를 하기 위해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부모님의 나라였던 한국으로 떠난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보안관에게 끌려가 수치스러운 검사를 받고 최저 등급인 3등급을 받은 채 의문의 장소에 끌려간다. 끔찍한 곳에서 세실은 의지할 수 있는 친구 재경을 만나게 된다. 재경은 그 시대 속에서 페미니스트로서 꿋꿋이 자유를 외치다가 수감된 3등급 여성으로, 그녀와의 대화는 세실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치유였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절망과 좌절 충격의 감정을 느꼈던 그녀가 왜 재경과의 대화에서는 희망과 치유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을까? 그녀와 재경은 여성 인권이라는 공통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지식도 해박했다. 세실의 말을 끊고 무시하던 타인들과 달리 재경은 그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녀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이 느껴지도록 대화를 나눌 줄 알았다. 한국인의 핏줄이 있긴 하나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세실에게는 머나먼 한국 땅에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대화가 단절된 채 학대받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재경은 그녀의 상황을 알아주고 그녀가 할 줄 아는 영어를 써가며 대화를 시도했다. 의사소통의 올바른 방법과 경청하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두 사람은 후에도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위의 세가지 이야기를 통해 소통의 단절이 한 사람에게 혹은 그 사회에 얼마나 큰 재앙인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황금 비파>의 뱃사람들처럼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망선요>의 어머니처럼 고립되고 우울한 감정에 제 몸 조차 겨누기 힘들 때, <감겨진 눈 아래에>의 한국처럼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완전히 끊고 특정 집단에 대한 학대와 착취를 죄책감없이 행하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때, 나를 제대로 돌보고 주변 사람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소통의 단절로 인해 외로워하는 사람이 없도록, 무관심으로 인해 고립되는 사람이 없도록 노력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함부로 이해했다 할 수도 없으며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다. 서로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달라 각자의 생각과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들어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강요하지 말고 실망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사람 그 자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