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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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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마지막 날,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JTO)의 공연 ‘JTO plays Sheets of sound’를 보기 위해 성수 아트홀을 찾았다. 어떤 음악보다도 록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연말 역시 홍대에서 보내리라고 다짐했지만, 재즈의 유혹을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연말에는 재즈, 재즈 하면 연말 아닌가.


스포티파이에 따르면 11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즉 연말 시즌으로 갈수록 크리스마스 히트곡 스트리밍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여기엔 왬(Wham!)의 Last Christmas,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와 같은 팝송들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사실 크리스마스 하면 재즈가 먼저 떠오르는 게 정석이다. 대표적으로 Winter Wonderland(1934),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1943), 같은 곡들은 연말 시즌에 질리도록 듣는 재즈 넘버들이다. 하지만 리메이크 버전이 너무 많은 탓, 그리고 너무 자주 들어온 탓에 곡의 나이와 장르를 가늠하기 어려울 뿐이다.


재즈는 우리에게 친숙한 듯, 가장 낯선 음악이다. 한때는 재즈가 ‘팝’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로 모두에게 친숙했지만,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가 “무대에 서 있는 사람들만 신나있는 음악”이라고 말한 것처럼 쉽게 접근하기 힘든 장르이기도 하다. 굳이 적당한 표현을 찾자면 ‘고급 예술’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본래 재즈는 ‘춤추는‘ 음악이었다.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 중에서도, 1930년대 뉴욕에서 정립된 ‘스윙(Swing)’ 리듬이 재즈의 기본 문법으로 자리잡으면서 재즈는 전성기를 맞는다. 이른바 “투, 포”. 짝수 박자에 강세를 주면서 몸을 당겨내는 리듬감으로 마치 그네(swing)를 타는 것 같다는 뜻의 스윙 재즈는 주로 무도회에서 빅밴드에 의해 연주되었고, 당시 많은 사람들, 특히 백인들은 음악에 몸을 맡기고 ’스윙’을 즐겼다.


이처럼 대중적인 음악이었던 재즈가 유행과 멀어지게 된 것은 ‘비밥(Bebop)’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비밥은 스윙처럼 템포는 빨랐지만, 연주자들을 위한 음악에 가까웠다.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등 천재적인 뮤지션들이 등장해 기존의 재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빅밴드의 규모는 점점 작아졌고, 연주자들의 예측 불가능한 즉흥 연주 비중은 더욱 늘었다. 이렇게 재즈가 감상 중심의 실험적인 음악으로 변모하는 사이, 로큰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 등 일부 트래디셔널 팝 시대의 가수들은 인기를 어느정도 유지했지만,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로 대표되는 로큰롤이 음악시장을 지배하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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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파커(Charlie Parker,1920~1955). 미국의 전설적인 색소폰 연주자로 비밥 시대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한명이다.

 

 

공연 감상 이전에 지루한 음악사 이야기를 장황하게 펼친 이유는 첫째로 최정수 타이니 오케스터(JTO)가 ‘어려운’, ‘어려워진’ 재즈를 최대한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존 콜트레인의(John Coltrane) Impression 으로 시작해 총 6곡을 선보인 공연에서 지휘자 최정수는 모든 연주 시작 전, 음악사를 곁들인 곡 설명을 알기 쉽게 전달했다. 설명 도중 지휘자의 스마트폰 AI가 반응해 곡 설명을 대신하기도 한 재밌는 해프닝도 있었다. JTO는 세계적 재즈 무대 중 하나인 Nisville 2022에 헤드라이너로 오르는 등 정상급 재즈 오케스트라로 꼽힌다. 이런 연주자들이 홀 단위 공연에서 권위를 내려놓고 친절함을 택한 부분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나 역시 재즈는 아는 만큼 보이는 부분이 분명히 있고, 그런 측면들이 재즈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재즈의 역사를 훑어가면서, 빅밴드의 구성요소까지 세세히 소개해주는 지휘자를 적어도 난 처음 봤다. 연말 공연 특성상 가족 단위의 관객들을 신경 쓴 부분도 분명 있겠지만, 본래 대중음악이었던 재즈의 모습까지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토록 친절한 빅밴드라니, 흥미로운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


둘째로는 그 와중에 비밥의 정수를 보여줬다. 네 번째 곡이었던 찰리 파커의 Anthropology 부터는 연주자들 모두가 클래스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테너 색소폰 연주자 유명한, 플룻 연주자 김은미가 주고받는 환상적인 즉흥연주에 관객들 뿐 아니라 단원들도 혀를 내두르는 표정으로 감상했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록 클럽 문화에 익숙한 필자는 하마터면 자리에서 일어설 뻔했다. JTO는 관객들을 조련할 줄 아는 빅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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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O의 음악이 다른 빅밴드들과 차별화되는 점이라면, 오리지널 곡의 편곡이 아닌 ’재작곡‘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난다. JTO를 이끄는 작곡가 최정수는 본격적인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Sheets of Sound”라는 개념을 꺼내 보였다. 모던 재즈의 기틀을 다진 존 콜트레인이 처음 사용한 이 표현을 풀어쓰면 사운드의 레이어, 즉 밀도감을 의미한다고 한다. “Sheets of Sound”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데에는, 기존 재즈 앙상블의 연주 형식과는 다른 차원의 밀도감을 선사하겠다는 이들만의 포부가 담겨있다.


그런 의도가 가장 잘 담긴 곡은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한 JTO의 자작곡 퀘이사 였다. 작곡가 최정수가 칼 세이건의 베스트셀러 '코스모스'를 읽고 영감을 받아 완성한 퀘이사 는 셋 리스트에서 유독 현대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일반적인 재즈 앙상블에서 듣기 힘든 악기들의 톤(tone)이 인상적이었다. 모든 파트들의 소리에서 굵은 심지가 느껴졌으며, 앞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댐핑감이 상당했다. 일부 연주자들이 페달 이펙터를 사용하는 부분 또한 흥미로웠다. JTO가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성을 단번에 알 수 있었으며,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 에 가깝다는 감상이 들 정도로 앞서나간 재즈 곡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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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현대 재즈는 오리지널 스타일의 스윙, 비밥뿐 아니라 퓨전재즈, 컨템포러리 재즈 등 다양한 사조가 공존하며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크로스오버적인 경향성 또한 강하게 나타나는데 팝, 혹, 힙합, 레게 등과 결합되며 장르의 경계 자체를 허물기도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장 변화가 어려운 재즈 음악이라면 아무래도 빅밴드, 즉 라지 재즈 앙상블일 것이다. 리듬 섹션과 트럼펫, 트럼본, 색소폰, 플룻 등 관악기들이 포함된 빅밴드의 구성요건을 갖추면서 현대적인 아이디어를 고안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라지 재즈 앙상블에서 크로스오버적인 경향성이 가장 낮게 나타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빅밴드가 가진 틀 안에서의 실험을 거듭하는 JTO와 같은 팀이 있는 건 고무적이다. 특히 한국에서 말이다. 재즈는 대중음악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가장 오래된 음악 사조다. 하지만 ‘이해해야 하는 음악‘으로 변모한 시점부터, 대중들의 사랑이 가장 고픈 음악이기도 하다. 인디 신만큼이나 재즈 신에서의 등용문 또한 좁다. 사실 어떤 음악이든 많이 들어봐야 친해지기 마련이다. 차트에 있는 음악들이 다가 아니다. 재즈가 이런 매력이 있구나. 한국에 이런 음악을 하는 빅밴드가 있더라. 직접 느껴보면 알 수 있다.


필자는 JTO의 공연 덕에 지난해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음악과 함께하고, 공연장에서 보내기로 작정했다. 2026년의 여러분은 올해 어떤 음악과 친해질지 기대되지 않으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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