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흔히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이고, 그럼에도 분명 일어나기 때문에 기적이다. 기적의 기준은 도대체 뭘까? 사람마다 기적의 기준치와 가치가 다를 것이라 예상된다. 수만 분의 1 확률로 복권 당첨이 되는 것도 기적이고 죽다 살아나는 것도 기적이고 그렇기에 내일이 있다는 것,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 누군가는 기적이라 한다. 어떤 이에게 기적은 일생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지만 다른 이에게는 매일이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주어진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살고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 여기는 건 머리로는 알기 쉬워도 일상에 치이다 보면 그런 마음을 살려두기가 쉽지 않다. 매일을 기적처럼 여겨도 고단한 일은 존재하고 그걸 해결하는 건 순전히 인생을 짊어진 자신의 몫이다. 그렇게 해결할 일 몇 개만 쌓여도 우리는 엄청난 기적을 바라게 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기적을 바라기보단 매 순간 기적을 만들어낸다. 하루에도 10번 이상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이 드라마가 긴 인생의 고약함을 알아도 매번 자신 있게 “출산은 기적이다”라고 말하고 마는 그 길을 단숨에 따라가 봤다. 그들이 내뱉는 생명에 관한 지론에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뿌리 같은 우뚝한 힘이 있어서 2일 만에 정주행할 수밖에 없었다.
페르소나 종합 의료센터, “혼자가 아니야.”
사실 출산에 대해 굉장히 무지한 편이었다. 지하철에 임산부 배려 좌석이 있고 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산부인과 이야기를 다루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저출생 문제도 접하지만 그건 모두 개인으로서 간접적으로 맞닿는 것일 뿐, 그래서 아기가 정확히 어떻게 태어나는지 솔직히 잘 몰랐다. 양수가 터져 진통이 시작되면 제왕절개는 배를 가르는 수술이고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모체가 소리를 지르고 힘을 주어서 낳는 건 자연분만이라는 정도만 알았지, 어떤 때에 어떤 시술 방식을 선택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출산의 기적을 다루는 ‘코우노도리’ 드라마를 보면서 모든 생명은 정말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아기뿐만 아니라 부모의 배경이나 마음가짐도 모두 다르고 그렇기에 갖고 태어날 수 있는 질병이나 위험도 다양하게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로 인해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를 의도할 수도 있고 긴급 상황 시에는 의도한 결과대로 아기를 낳을 수 없음도, 그리고 무엇보다 한 생명이 태어날 때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생명이 관여함까지 장면이 거듭되며 모두 느끼고 나면 내 눈물샘은 고칠 틈 없이 고장나버렸다.
한 생명이 엄마 배 속에서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할까? 우선 엄마와 아빠는 당연하다. 분만에 있어 페르소나 종합 의료 센터의 인력만 봐도 셀 수 없이 중요한 사람들의 손이 닿아 있다. 자연분만이 가능한 경우에는 조산사가 아이를 받을 수 있지만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전에는 자연분만이 어려울 시에 살릴 수 없던 아기들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페르소나 종합 의료센터는 ‘코우노도리’ 드라마 속 여러 진료과가 협력하는 의료기관인데 일본의 주산기 센터를 모델로 잡았다고 한다. 환자 검진과 더불어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받을 수 없는 경우 수술을 진행하는 산부인과와 그 옆을 항상 지키는 조산사, 수술 후 태어난 아기를 맞이하는 신생아과, 수술 시 임신부의 고통을 덜어주는 마취과,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환자의 목숨에 대처하는 구급과, 아기를 낳은 후 이어지는 부모와 아기의 삶을 도와주는 사회 복지사, 이 외에도 환자들을 위해 페르소나에서 자리를 지키는 무수한 인력들이 존재한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공들이고 대비의 대비를 하고 마음 놓을 틈 없는 페르소나 안 선생님들을 보면 주어진 삶을 기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게 오히려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드라마 속에는 다양한 환자가 나오지만 그 환자들을 맞이하는 선생님들 또한 인간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준다. 늘 최대의 노력은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고 그게 최악의 경우 실수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생명을 다루는 일에 있어 ‘실수한다’는 것은 ‘다음에 더 잘해야지’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영영 극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환자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그 어마어마한 책임감과 압박감 속에서 그들은 매일 환자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아기가 태어나 자라기까지 그 누구도 예측하고 장담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최선의 확답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자꾸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의사도 사람인데, 기계조차 실수를 하는데, 혹 그 실수에 꼬일 수밖에 없었던 환자들의 삶은 무얼까 하고. 안타깝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을까, 하고.
실수를 운운하는 과정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건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치의도, 엄마도, 아기도, 의료센터의 모든 선생님도. 의사는 처음이어서, 엄마는 처음이어서, 아기는 처음이어서, 이번 생은 처음이라서 할 수 있는 마땅한 실수들이 이들에게도 적용될 뿐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서로가 있기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기는 엄마 혼자 낳는 것이 아니므로 아빠도 필요하고 산부인과 의사도, 조산사도, 신생아과도, 마취과도, 구명과도, 간호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선생님들 또한 혼자 생명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 혹여 주치의였어도, 판단이 틀렸어도 믿고 의지할 팀원들이 있다. 하지만 말로는 쉬워도 실수로 인해 그 개인이 짊어진 죄책감과 무력감은 스스로 극복해내기 전까지 치료가 되지 않을 터라, 그 마음을 안고 또 다른 생명을 대하는 선생님들이 대단하기만 하다. 아무리 힘든 마음의 짐을 지고 있어도 생명이 태어나면 그들은 어김없이 웃으며 외쳐야 한다.
“축하해.”,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마워.”
출산 전후, 아기를 키우는 건 선생님이 아니야.
조산, 전치태반, 태반 조기 박리, 양수 색전증, 자간전증, 불육증, 자궁 적출, 저산소성 허혈성 뇌병증, 신생아 패혈증...
출산 전후에 임산부나 태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위험 가능성이 이렇게도 많은지 처음 알았다. 의료용어라 낯설었지만 어떤 증상이 출산에 있어 무슨 결괏값을 낼 수 있는지 마음 졸이며 지켜보는 것 또한 고역이었다. 내 몸도 아니고 내 아기가 아닌데도 자연히 느껴지는 안타까움의 형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서 할 수 있는 일는 가장 확실한 표현법은 눈물로 쏟아내기 뿐이었다. 부모와 죽음에 관해서는 한없이 눈물이 허약한 내가, 부모와 생명의 탄생에 있어서도 이렇게 눈물량이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 제왕절개 시 나타날 수 있는 산후 출혈량이 1000ml를 넘으면 이상 출혈, 또는 대량 출혈이라고 하는데, 내 눈물량은 그 출혈량을 훨씬 넘었지 싶다. 언급한 신호는 내가 아는 신호의 빙산의 일각일 뿐일 테다. 이렇게도 다양한 위험 속에서 태어난 아기는 기적이라고 밖에는 칭할 말이 없구나.
출산에 있어서 아기를 낳는 것은 도착점이 아니다. 출산은 시작점이다. 출산 후에는 적지 않은 엄마들이 ‘산후 우울증’을 겪는다. 본인이 산후 우울증인 걸 몰라서 심한 경우 삶을 중단하는 선택에 이르기도 한다.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다. 한 생명을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나, 아기는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만 빼고 다들 잘만 키우는 것 같아서 스스로 더 몰아부치고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는 나머지 인정하기도 힘든 산후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어느 쪽이 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솔직히 산후 우울증에 걸리지 않기가 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배 아파 낳았어도 아직 부모가 된 것이 실감 나지 않을 수 있고 대가 없는 무조건적 사랑을 줘야만 한다는 게 억울할 수도 있다. 당연한 거다. 그제까지 살아온 본인으로서 삶보다 앞으로 누군가의 엄마로서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왠지 분한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는 본인에게 실망할 수 있다. 그러니 뭐가 됐든 마주해야 한다. 태아를 위해서, 산모 자신을 위해서.
산후에 엄마들이 겪을 수 있는 게 있는가 하면, 산전에도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앓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유산이 이에 해당한다. 분명 배 속 아이는 발도 차고 어엿하게 살아있다고 주장하는데, 초음파상 심장박동이 보이지 않아 아이를 낳기도 전에 마음 정리를 해야 할 수밖에 없는 부모님들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심장이 뛰지 않는 아이를 잘 낳게 해주는 것밖에 없어 유산은 산모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깊은 상처를 낸다.
원인이 불분명한 유산과 달리 특정 이유로 임신 중절을 결심하는 부모도 있다. ‘산전검사’, 출산하기 전에 염색체 검사를 통해 아이가 특정 증상을 갖고 태어나는지 아닌지를 미리 알아볼 수 있는 검사이다. 검사 결과 ‘양성’이면 부모들은 고민한다. 이 아이가 태어난 이후를 말이다. 낳는 것뿐만 아니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출산은 도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이니까. 그리고 키우는 건 의료센터 선생님들이 아닌 부모다.
산전검사로 미리 생명을 선별하는 건 여전히 받아들여지기 힘들지만 키워나감에 있어 부모가 부딪힐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면 중절을 선택하는 부모들을 마냥 비판할 순 없다. 그럼 이때, 아무리 작고 연약하더라도 생명을 살려야 하는 의무를 가진 선생님들을 임신 중절을 놓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부모를 말려야 하나, 하지만 그건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다. 부모가 아닌 선생 본인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위일 수 있다. 그럼 고민 없이 부모의 선택에 따라야 하나. 생명의 존엄성을 중요시하는 의사로서 가치관을 두고 분명 흔들릴 것이다.
연수의 ; 선전 검사도 그렇고 왜 생명을 선별하는걸까요? 이대로 산전 검사가 보급되고 당연시 된다면 의사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코우노도리 ;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몰라. 생명은 귀중해. 아기의 탄생은 기적이야. 목숨은 평등하니까 선별하면 안된다는 건 맞아. 근데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목숨을 선별한다는 말에 다들 너무 얽매여서 그 부모와 가족들의 상황까지는 보지 못해. 모든 생명은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태어나. 키우는 건 그 가족들이야. 중절을 선택하는 가족들도 있지. 마음이 무거워져.
하지만 고민의 고민을 거듭해 그런 선택을 내리고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거야. 그 요청을 뿌리칠 순 없어. 검사를 받아도 받지 않아도 낳아도 낳지 않아도 그 어떤 선택도 틀리지 않았어. 아니, 틀렸다고 여기지 않게 산부인과로서 가족들과 함께 생명을 마주하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믿기에 여기 이렇게 있는 거야.
- [코우노도리] 시즌2 10화, '산전검사, 가족을 이룬다는 건'

“고마워 모든 생명아.”, “이 세상에 온 걸 축하해!”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눈물을 흘려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 눈물의 근원이 어딘지, 그 이유는 정확히 뭔지 알 수 없지만 의도는 모두 같았다. 눈물을 흘릴 때마다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었던 게 있다. 코우노도리 선생도 쉬지 않고 진심으로 되뇌었던 말, “고마워 모든 생명아.”
태어나도 태어나지 않아도 잠깐이라도 이 세상에 존재했던 그 꿈틀거림에 자연히 감사하게 됐다. 그 작은 몸으로 얼마나 애써서 힘을 냈는지 그런 걸 생각하면 내 존재도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져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에 대견해진다. 그저 살아주기만을 바라는 ‘코우노도리’ 속 다정한 인물들처럼 모두가 본인이 지닌 생명을 그렇게 대해준다면, 그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하지 않은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