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SNS 게시물을 하나 보냈다.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선호하는 영화감독으로 소개팅 상대 성향 알아보는 법’이라는 글이었다. 단시간 안에 상대방에 대해 알기 위해 상대방에게 좋아하는 영화감독을 물어보면 그를 간파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봉준호를 좋아하면 이런 성향, 크리스토퍼 놀란을 좋아하면 저런 성향이라는 등을 농담삼아 풀어낸 글로 피식피식 웃으며 읽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마지막 줄을 읽었는데 정말 웃지 않을 수가 없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 주선자까지 차단”
처음엔 그저 웃긴 마음이 전부였다.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워낙 논란의 중심이 되고는 했던 감독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들을 굉장히 좋아하지만, 왜 저런 반응이 나오는지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는 금기시되었던 주제들과 함께 늘 굉장히 강렬한 내용들로 영화를 이끌어 가기 때문에 호불호가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는 감독이다. 몇 년 전 개봉했던 작품 ‘살인마 잭의 집’ 같은 경우도 영화제에서 보다가 토하며 나갔다는 사람도 있고, 연쇄살인마 주인공인 잭이 자신의 살인을 마치 예술적 행위에 비유하듯 설명해 나가는 내용에 거부감을 느낀 사람도 많았다. 나는 오히려 (물론 궤변이지만) 잭이 자신의 살인을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나가는 말들을 들으며 어떤 철학을 가져다 붙일지, 또 어떤 논리로 설명할지 그 자체를 재미있게 관전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이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듯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구구절절 대변해주려고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결말부에 잭은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OST 또한 Hit the road Jack 인 것을 보면 말이다(이 노래의 가사에는 잭에게 절대 돌아오지 말라는 내용이 나온다). 한마디로 나에게 이 영화가 ’영화는 영화로 봐‘라는 지점을 허물 정도의 불쾌감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영화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면 어떨까? 그건 더 이상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일까? 단적인 예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절대 보지 말아야 할 심연의 영화 등급’ 같은 짤이 있다. 상대적으로 윗단계에는 앞서 말했던 살인마 잭의 집 같은 영화들이 있는데, 아래 단계로 내려갈수록 정말 보기 힘들고 고어한 영화들이라고 한다. 나도 그런 지나치게 잔인한 영화들은 보지 못하는 편이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과연 어떤 영화이길래 표의 하단에 있는 것일까 궁금해 유튜브에서 리뷰를 찾아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꽤 많은 리뷰어들이 하는 말이 있었다. 이건 더 이상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슨 이미 특별히 스토리랄 것도 없고, 그저 누가누가 더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지 영상에 담는 것이 목적인 듯 보인다는 것이다. 이미 영화가 아닌 일명 ‘스너프 필름’의 수준으로 봐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의견을 들으며 나 또한 공감했다. 그저 무엇도 없이 오직 ‘고어를 넘어선 고어’만을 위한 영화라면 그것이 예술이라는 단어 아래에서 포장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재미있게 봤던 살인마 잭의 집도 누군가에게는 딱 그 정도 수준의 영화였을지도 모른다. 또 고어를 잘 즐기는 사람에게는 앞서 말한 표의 하단에 있는 영화들이 그저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영화일지도 모른다. 이를 보면 단순히 누군가가 불쾌감을 느꼈냐 아니냐는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이해 받을 수 있는 표현의 범위를 재단하는 기준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헤어질 결심’을 보며 불륜을 표현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불쾌감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실상 세상의 대다수의 예술 작품은 검열을 당해야 할 것이다. 어느 정도의 불쾌감을 주어서 작가의 의도가 완성되는 작품들도 많고 말이다.
그렇다고 ‘예술‘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 또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우리들은 도덕이든 법규든 정해진 룰이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이런 규칙에 심각한 해악을 끼칠 우려가 있는 표현들은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그 지점을 도대체 어떻게 잡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살해 당하는 내용이 영화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보자. 사실 정말 단순하게 보자면 저 내용 자체는 아동용 애니메이션부터 끔찍한 고어영화까지 모두 다 사용된다. 이런 단순한 기준으로는 절대 나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은 어떨까? 사실 이 또한 완벽하지는 않다. 주제의식 정도야 거칠게 말하자면 지어내기 나름이고, 꼭 무언가 느껴야만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모든 영화가 올바른 교훈을 주어야만 한다면 그건 마치 공산주의에서 찍어내는 선전용 작품이 떠오르기도 한다.
글을 쓰며 나 또한 계속 고민해봤지만 아직 명백한 답을 스스로도 찾아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로 정말 오래전부터 논쟁이 있어왔기에 내가 단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듯 싶었다. 과연 영화라는 이름으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어디까지 가능한 것이며 어디까지 내 취향이 아니더라고 눈 감아야 하는 것일까? 정말 어려운 질문이고 어쩌면 끝내 답이 내려지지 않을 질문이지만, 다 같이 고민해보고 싶은 지점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