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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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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어쩔수가 없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 없다’를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 만수는 극 초반, “다 이루었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두 아이, 넓은 집, 대형견 두 마리. 그 모습이 만수의 이상적인 삶인 듯 했다.

 

그러나 만수가 그 삶을 지키기 위해 감행하는 행위들은 잔혹하다. 그에게 살해 당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졌다. 그럼에도 만수는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그들을 제거한다. 이상적인 삶을 지탱하는 조건이 타인을 파괴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어쩔수가 없다’ 속 경찰들은 이상할 만큼 무능하다. 치밀한 계획 범죄도 아닌데 만수의 살인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사회 속 자행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닮았다. 직접 살인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끝으로 내몰 수 있는 아주 작은 행위는 반복되곤 한다. 그건 경찰이 손쉽게 가려낼 수 없는 일이다. 증거는 쉽게 묻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 간다. 그렇게 만수는 자기 자리를 보전하게 된다.

 

영화가 끝난 뒤 묘한 울컥함을 느꼈다. 만수가 목숨 걸고 지킨 회사의 자리가 그에게 언제까지 의미있게 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한 편으로는 얼마나 일에 애정을 가져야, 또 초반의 삶이 얼마나 이상적이게 느껴져야 저렇게까지 행동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약간의 부러움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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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이후 자연스럽게 내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덧 10월이 다가오고, 2025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지금 내 삶도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나는 나를 자주 돌아본다. 나는 잘 살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자주 꺼내게 된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시작할 때, 나는 음악의 즐거움을 글로 나누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 근 5년 간 그 목표를 위해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나는 다른 일들을 좀 더 중점으로 생각하고 다루고 있었다.

 

그 외에도 퇴근 후 피아노를 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집에 도착하면 몸도 마음도 지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심지어 근 2년간 해왔던 피아노 레슨도 이번 주 모종의 이유로 마무리되면서, 근근히 붙잡고 있던 마음 조차 끊겨 버리고 말았다. 나는 늘 눈이 반짝이는 사람을 좋아한다. 어떤 사소한 것이든 아끼고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게 있는,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 무언가에 집중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눈을 빛내는 사람. 그건 나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일이었는데, 최근에 나는 그렇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꼈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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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동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꽤 오래 지속한 것들엔 공통점이 있었다. 글쓰기, 독서, 러닝, 피아노. 세 활동을 이어주는 건 바로 끈기였다. 아주 조금씩 발전하며, 때로는 퇴보하기도 하지만 결국 공들인 만큼 깊게 자리하는 활동들. 시간이 지나도 일부가 되어 어설프게나마 나를 이루게 되는 것들. 고루한 삶이라 평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늘 그런 정직한 시간들을 아끼고 좋아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했다.

 

러닝은 생각을 환기해주고, 피아노는 잡념을 덮어버리며, 글쓰기는 둘을 통해 정돈된 생각을 남긴다. 최근 작곡을 배우던 때가 떠올랐다. 나는 화성학이나 곡을 만드는 일보다도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사의 흐름에 더 흥미를 느꼈다. 예를 들어, 드뷔시와 라벨의 차이라던가 (드뷔시는 좀 더 이미지적인 작곡 방식을, 라벨은 구조적인 작곡 방식을 위주로 곡을 만들었는데, 프랑스 작곡가인 두 사람의 곡은 듣기에 어딘가 유사하게 느껴지면서도 명백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생애를 따라가면서 음악을 이해하는 일이 내게 큰 즐거움이었다.

 

그 즐거움을 이어가면서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대학원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언젠가부터 음악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품고 있었는데, 최근 입시를 준비하는 지인과 대화를 나누며, 내가 해온 일들이 그 준비와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독일어 자격증, 피아노 연습, 그리고 글쓰기 그 모든 것이 어쩌면 그 공부를 위해 준비된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공부는 내게 온전히 남아 또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준비할 시기가 되었다. 곧 맞이할 1년 간의 여정을 끝내고 새로운 목표를 위해 나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 생각을 이을수 있는 꾸준함과 끈기가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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