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승님.
덕분에 저는 인생에 있어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정말이지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이 글을 적어 내려가는 마음이 꼭 러브레터를 쓰는 것과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온전히 몰입하여 안부를 묻고 감상을 쏟아내는 이 행위는 그 자체로 어떤 종류의 러브레터와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요, 저희 어디선가 마주쳤을지도 몰라요!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그리고 <하나 그리고 둘> 용산 시사회에 가셨죠?
특히 <하나 그리고 둘>은 저와 같은 L열에서 보셨다는 사실을 리뷰 글에서 읽었어요.
물론 서로를 알아보는 일은 없었겠지만, 상영관을 오가는 찰나의 순간에 짧게나마 눈이 마주쳤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세상의 문들은 아주 가느다란 틈을 두고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스쳐지나갔을 누군가의 궤적을 붙잡고 러브레터를 닮은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마주친 적 없는 이’에게 쓰던 글이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이’에게 건네는 안부로 바뀌는 마디마디마다 옅은 웃음이 배시시 새어나옵니다.
현승님의 글을 읽다 보면 "너는 정말 많이 사랑하는구나"라던 친구분의 말처럼, 현승님이 참 사랑이 많은 분이라는 게 느껴져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나를 울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에 사랑을 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충만한 용기가 있다고 믿어요. 설령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울리는 날이 온다고 해도, 사랑했던 그 대지를 닮은 태초의 기억만큼은 변하지 않을 테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겠지요. 그런 용기를 가진 현승님에게 앞으로도 오래도록, 새롭게 사랑할 것들이 자꾸만 생겨나기를 진심으로 바라요.
어느덧 2026년이네요. 숫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의 공기가 사뭇 달라진 것만 같아요. 현승님과 제가 같은 상영관, 같은 줄에 앉아 영화를 보던 그 시간들도 이제는 작년, 혹은 재작년의 일이라는 이름으로 멀어져 가겠죠? 하지만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 양양이 그랬듯, 우리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서로의 뒷모습을 아주 잠시나마 나누어 가졌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새해에는 무언가를 상실하기보다 기꺼이 발견하는 날들이 더 많기를, 우리가 영화관의 그 어둑한 복도에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쳤던 것처럼, 삶의 수많은 아름다움도 때로는 평범한 얼굴을 하고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갈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현승님처럼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 무수한 스침들 속에서도 기어이 반짝이는 궤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언젠가 다시 어느 상영관, 어느 열의 좌석에서 우리가 다시 나란히 앉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영영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산다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겠지요. 그러나 제가 쓴 문장들이 현승님께 도착했다는 사실이 2026년을 여는 아주 작은 선물이 되기를 개인적인 욕심을 담아 소망해 봅니다.
날이 많이 춥네요. 저는 벌써 올겨울 두 번째 감기에 걸렸습니다. 현승님은 부디 아프지 마시고 이 추운 계절을 부드럽게 건너가시길 바랄게요.
당신이 사랑하는 그 모든 대지 위에 평화와 안녕이 깃들기를!
마지막으로, 이건 요새 제가 자주 듣는 곡인데요.
오늘은 들으면서 현승님 생각이 났어요.
현승님께 어울리는 곡이라 추천하고 싶어요. 시간이 날 때 천천히 들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상은 드림
Ps.
안녕하세요 그린님!
이렇게 신기한 인연으로 만난 우리는 또 어떤 말들을 주고 받게 될까요?
그린님의 글도 얼른 만나보고 싶어요.
그럼 감기 조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