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러니까 2016년 지구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가. 개인적으로는 ‘응답하라 1988’과 ‘태양의 후예’, ‘구르미 그린 달빛’과 같은 국민 드라마가 한국을 휩쓸고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 흥행의 연쇄적인 여파로 멜론 탑 100 차트 또한 드라마 OST가 줄줄이 점령하고 있었다. 더불어 월드 스타 블랙핑크가 연예계에 첫발을 디딘 역사적인 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블랙핑크는 데뷔곡인 ‘붐바야’로도 심상치 않은 아우라를 보여준 바 있었다.
또 지금은 없으면 서운한 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다. 기껏해야 5~6년은 된 줄 알았던 넷플릭스가 벌써 서비스 10년 차라니, 믿기지 않는 시간의 속도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뿐만 아니라 Youtube의 활성화에 따라 크리에이터 시장도 더 급성장하고 있었다. 1세대에서 2세대로 이어지는 크리에이터 흐름에 따라 콘텐츠 분야도 다양화되며 더욱 넓고 다양한 세계를 랜선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한국의 문화 콘텐츠 산업이 뒤바뀌기 시작한 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즐거운 이야기만 하기엔 2016년은 한국 국민들에게 꽤 가슴 시린 한 해이기도 했다. 아슬아슬한 사회 분위기가 이어지더니 연말에 들어서는 촛불과 추모가 끊이지 않았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차별과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2016년은 그런 한 해였다.
그래서 더욱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 있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살기 좋은 세상이란 무엇인지 보여준 귀여운 경찰 토끼와 능글맞은 갱생 여우. 그렇기에 달리 말하자면 2016년은 주토피아의 해이기도 했다.
용감한 경찰 토끼와 능글맞은 사기꾼 여우, 사실은...

9년 전. 이 ‘주토피아’의 등장은 디즈니 작품 중에서 ‘겨울왕국’이나 ‘인사이드아웃’만큼의 파급력을 불러오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하며 탄탄한 팬층을 쌓는 데 성공했다. 외려 디즈니 인생작으로 ‘주토피아’를 꼽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 뒤에는 팬층만큼이나 탄탄한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 캐릭터의 외관이다. ‘주토피아’ 속 동물들은 ‘변태적일’ 정도로 묘사가 뛰어났다. 보송보송한 털의 질감과 촉촉한 코, 이리저리 휘날리는 꼬리나 늘어진 귀. 이 모든 요소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와 어우러져 현실적인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데포르메로 탄생했다.
이뿐만 아니라 디즈니는 각 동물의 습성까지 이용해 스토리와 개연성을 만들어 냈다. 아주 대표적인 예시가 작품 속에서 닉에게 팝시클로 사기를 당하는 ‘나그네쥐’들의 모습이다. 이 동물은 ‘레밍’이라고도 불리는데 우두머리만 보고 따라가는 습성 덕에 쉽게 다치거나 죽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이런 효과를 ‘레밍 효과’라고 부른다. 덕분에 닉의 순조로운 사기 행위는 억지스럽지 않은 연출이 되었다.
이러한 설정들은 작품 내에서 적재적소에 쓰이며 완벽하게 우화의 역할을 이행하도록 만들어졌다. 그저 보기에만 귀엽고 듣기 좋은 스토리가 아니라, 인간의 생활상을 빗대어 담아낼 수 있다는 거다. 여기에 완성도 높은 세계관이 더해지자 ‘주토피아’는 오롯한 또 하나의 문명이 되었다.
‘주토피아’는 이 세계관을 기반으로 가장 디즈니다운 방식으로 가장 사회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는 시리즈가 되었다. 원작이 존재하던 다른 시리즈들을 제외하고 보았을 때, ‘주토피아’는 타 작품에 비해 한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보다 이들 사이에 엮인 사회의 시선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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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메세지에 걸맞게 작품 속 캐릭터들은 무조건적인 선이나 악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주인공인 주디는 자신의 목표와 인정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타인의 판단을 무시할 때가 있고, 닉은 좋지 않은 성장 환경으로 인해 사기 행각을 일삼고 있었지만 결국 주토피아의 정의를 위해 힘쓰게 된다. 이런 입체적인 설정은 동물의 모습을 한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인간성을 부여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그런 이들이 편견과 차별을 깨고 서로 화합하여 이상적인 길과 사회구조를 만드는 것. 이런 ‘주토피아’의 교훈은 다양성이 당연해진 이 시대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더불어 이러한 사회를 이상향이라는 뜻의 유토피아에 직관적으로 빗대어 현대 사회의 합리성과 모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그 속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희망을 던진다. 결국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최초의 토끼 경찰이란 꿈은 이루어졌고, 편견 어린 시선에서 벗어난 여우도 이 사회를 지탱하는 민중의 지팡이가 되는 데 성공한다. ‘주토피아’의 의의와 인기에는 이만한 이유와 메세지가 내포되어 있었다.
주토피아 2, 그래서 뭘 더 얘기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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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주토피아’가 9년이 지난 2025년에서야 드디어 시즌 2로 돌아왔다. 작중 배경은 겨우 일주일 차이지만 주토피아 밖에서는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만의 유토피아를 찾아갈 듯, 또 잃어버릴 듯하며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 ‘주토피아’는 또 어떤 메세지를 던지고 싶어서 우리에게 찾아왔을까.
이야기는 주토피아 건립 100주년 파티에서부터 시작된다. 서 내에서 좌충우돌 천방지축 콤비로 확실하게 자리 잡은 닉과 주디는 어김없이 이번에도 막무가내로 수사에 진입한다. 그 과정에서 둘은 기후장벽 발명으로 유명한 링슬리 가문에서 배제된 링슬리인 ‘포버트’와 아예 주토피아 내부에서 배제된 종족, 파충류인 뱀 ‘게리’를 만나게 된다. 그러고는 주토피아의 역사를 뒤바꿀만한 사건에 본격적으로 엮이게 된다.
전작의 에피소드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주하게 되는 차별과 역차별을 다루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주토피아’의 역사적인 문제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시선이나 배려, 포용과는 심도가 다른 문제다. ‘주토피아 2’는 여기서부터 사회 풍토나 개개인의 문제에서 나아가 구조적인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다루고자 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게리는 그 역사에 의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본 동물이다. 게리의 종족인 파충류는 지금의 주토피아가 있을 수 있었던 핵심 요소인 기후 장벽을 발명했음에도 과거 다른 동물을 죽였다는 거짓 죄목으로 인해 종족 자체가 터를 버리고 떠나야 했다. 몇몇 파충류는 습지 마켓에 모습을 숨기며 모여 살고 있었지만 이조차도 금세 닉과 주디의 수사 및 뒤따라온 경찰에 의해 금세 파탄 나고 만다. 이 모습은 아예 사회 구조적으로 배제된 약자 집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작의 닉과 주디가 맞서야 했던 사회적인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누명으로 인해 아예 그 사회에서 배제되어 작은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다.
![[크기변환]화면 캡처 2025-12-31 223513.pn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31223922_vpxwqirf.png)
이들은 등장만으로도 사회를 경직하게 만들고, 경계하게 만든다. 게리가 그저 연회장에 모습만 드러냈을 때, 그를 본 동물들이 어떠했는가. 초식 육식 할 것 없이 경악하며 혼비백산하며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 장면을 보면 단숨에 파충류들이 어떤 처지에 처해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게리는 종족을 위해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고자 연회장에 침입하여 증거물을 갖고 달아난다.
이후 기득권인 링슬리 가문의 땅 안에 가려져 있던 원주민인 파충류의 땅을 되찾고, 그 영광을 되찾는 과정은 아주 사회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게리의 목소리에 누군가 귀를 기울여주었고, 이런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진실을 마주한 동료들이 이들을 도왔으며, 이렇게 이어진 사회적인 메세지를 무시하지 못한 시장이 파충류를 억압했던 부조리한 권력에 맞서며 강력한 연대의 고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렇게 이번 이야기는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 지나버린 과오의 역사를 어떻게 복구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결국 시즌 1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두 작품을 동시에 놓고 보자면 확실히 시즌 2는 더욱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 사회가 유토피아가 되기 위해서는 탄탄하면서도 깨끗한 정치, 역사, 권력 구조가 이루어져야 함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즌 1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그러나 우리가 유토피아를 꿈꾼다면 무조건 알아두고 실천해야 할 다음 스텝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유토피아를 향한 여정, 주토피아는 왜 시즌 3를 예고했을까
현재 ‘주토피아 2’는 개봉과 동시에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94%, 박스오피스 1위를 찍으며 팬들의 기대감만큼이나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새해를 앞두고 있는 지금은 7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전작 관객수인 471만 명을 한참이나 앞섰다. 엄청난 기세다.
![[크기변환]화면 캡처 2025-12-31 223548.pn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31224115_ugmeecgn.png)
그럼, 이 영화를 본 관람객들은 어떤 감상을 느꼈을까. 이 영화를 본 관람객 대다수는 메인 스토리보다 닉과 주디의 관계 진전에 집중했을 것이다. 둘도 없는 파트너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털어놓지 못했던 솔직한 마음을 왈칵 뒤엎어 보여주며 진정한 파트너가 되는 순간에는 모두가 벅찬 감동을 받았을 테다. 아니나 다를까, 개봉 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건 게리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구조적 배제나 종족 간 화합이 아니라 이 둘의 관계가 ‘우정’ 혹은 ‘사랑’이냐는 논쟁이었다.
그럴 줄 알았던 건지 디즈니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대담하게 다음 편을 예고했다. 쿠키 영상 막바지에 떨어진 어떤 새의 깃털이 그 증거다.
솔직히 영화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이대로 시리즈가 끝나면 아쉽겠다는 생각을 꽤 했는데, 속편 예고를 보자마자 막대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렇게 매력적인 세계관과 캐릭터, 그리고 전 세계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는데, 여기서 끝내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원래 사람은 한 번에 안 변한다. 그러면 세계는 어떻겠는가. 주기적으로 이런 메세지를 받아야 조금씩이나마 화합을 향해 다가서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라도 속편을 원하고 있던 찰나였기에 더 반가웠다.
과연 ‘주토피아’는 이다음 우리에게 어떤 유토피아를 보여줄까. 그 스크린 속의 새들은 어떤 모습,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어떤 이면을 비춰낼까.
한편으로는 이런 사회문제를 이렇게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우리 세대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이제부터다. 1편에서 개인의 편견을 깼고, 2편에서 구조의 거짓을 드러냈다면, 3편에서 보여줄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 현실은 그 메시지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주토피아 3’을 기다리며, 우리는 그 답을 함께 찾아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