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예은님.
현승이에요. 얼굴을 마주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글을 쓰고 읽는 행위는 사람 마음을 풀어두고는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무턱대고 반가운 인사를 전하게 되니까요. 예은님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한 해의 끝을 달려가는 이맘때는, 시기를 핑계로 이런저런 인사에 마음을 담아 보내기 좋잖아요. 너무 뻔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요. 크리스마스는 잘 보냈는지, 각자만의 템포로 연말은 잘 지내고 있는지. 또 새해를 잘 보내라는 인사도 더해서요. 할 수 있다면 직접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여럿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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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당연한 얘기겠지만) 예은님의 글을 오가며 열심히 읽었어요. 한낱 열정적인 독자에 그치겠지만, 이리저리 글을 뜯어가며 글쓴이에게 아주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는 안온한 착각을 하기도 하면서요. 제가 늘어놓을 말들이 커다란 착각의 조각이 될까 걱정이 되는 마음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진짜 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셔요.
예은님의 이름이 올라간 글들을 이리저리 스크롤 해보다가, 어쩌면 제가 예은님에게 타인이기에 재빠르고 단순하게 내릴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해 버렸어요. 그러니까, 영화를 꽤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제 멋대로 내려버린 이 판단을 떠올리자마자 뭐라고 중얼거려버렸어요. 아, 멋있다. 하고요.
그건 취향에 대한 단순한 평가이기보다는, 열정적인 마음을 가진 이의 옆모습을 발견해 버린 듯한 순간이었어요. 저는 너무 빨리 많은 것들을 사랑해 버리곤 하지만, 특히 누군가와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볼 때 그 사람에게 빠져버리는 이상 현상을 자주 겪곤 하거든요. 예은님이 <극장의 시간들>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을 때요. 열여덟 여름, 영화의 순간을 나눠주셨을 때요. 명확한 단어로 표현하지 않아도, 그건 아주 선명한 애정의 순간이었어요.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그리고 그걸 꾸준히 사랑해 온 사람의 옆모습이요. 그런 건 너무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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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쓸 땐 이것저것 고민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상대에 대한 이야기와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의 비율로 담아내야 할지, 그들의 이야기만 하거나 나의 이야기만 하고 있진 않나?를 생각하면서요. 저는 편지가 두 사람 분량의 호흡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 적어냈던 자기소개와 비슷한지도 몰라요.
자기소개 하니까 말인데요, 제가 몇 개의 우연과도 같은 공통점을 찾아냈어요. 저와 예은님 사이에서요. 하나는 바로 ‘자기소개를 어려워한다는’ 점이에요. 억지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놀랐는걸요. 예은님의 자기소개는 이렇게 시작하더라고요. “나를 소개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저는 어떻게 시작했었냐면요. “저를 소개하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놀라운 우연 아닌가요!
예은님이 좋아하는 것들을 이것저것 나열한 자기소개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어요. 공감하기도, 궁금하기도 했고요. 제가 좋아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무턱대고 떠올리며 괜히 상상해 보기도 했어요. 자기소개는 저희 둘에게 항상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그 글을 읽고 예은님에게 향하는 한 발짝을 뗀 기분이 들었으니, 그건 정말 멋진 자기소개였다고 할 수 있겠죠.

다른 공통점 하나는요, 저도 필명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늘여놓고 보니 그다지 독특한 공통점은 아니네요. 저는 이번 해와 지난해를 ‘현’이라는 필명으로 살았었어요. 저를 따뜻하게 맞아준 집단에서는 각자가 각자의 이름을 새롭게 만드는 전통이 있었고, 그래서 다들 활동명을 가지고 있었죠. 저는 그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다시 짓는 방식엔 무척이나 그 사람들이 묻어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예은님이 루루님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무척이나 예은님스럽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는 만난 적도 없지만 제 안에서 어느새 생겨난 친밀감이 그렇게 저를 생각하게 했답니다.
글에서만은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은 루루님. 저는 제 이름 현승에서 ‘현’을 따와 ‘현’이라는 필명을 제게 붙여주었어요. 이유는 꽤 거창한데요. 저는 이름 한자를 고개 현을 쓰거든요. 저는 이게 항상 궁금했어요. 보통 ‘현’이라는 글자를 가진 사람들은 밝은 현을 쓰곤 하거든요. 그러다가 제 나름의 결론을 내려버린 거죠. 저는 항상 삶의 고개 같은, 고점과 저점을 잘 포착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제 이름의 고개는, 제가 그 모든 고개를 사랑하려고 그런 게 아닐까, 하고요.
그러니 저는 이 이름에 꽤 많은 애정을 쏟게 되어요. 루루님도 그렇겠죠? 스스로 짓게 된 이름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나 애정 같은 걸 계속 떠올리게 만드잖아요. 그래서 예은님이 루루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렇게도 반가웠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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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글을 나누게 될까요? 예은님께 보내기 위한 편지를 준비하며 저는 또 다른 세계를 유영할 수 있어 기뻤어요. 저는 부끄럽지만 꼭 전하고 싶은 안부 인사를 마지막으로 편지를 마무리할까 해요. 할 수 있다면 직접 전할 수 있으면 더 좋을 것도 같지만요.
예은님,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2025년을 보내는 마음가짐은 또 어떠실지요. 그리고 조금 이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s. 예은님에게도 항상 평안이 함께하기를.
현승 드림
안녕하세요, 상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반가워요!
마찬가지로 우린 만난 적이 없지만, 또 되게 잘 맞지 않을까 하는 착각 같은 기대가 생겨요.
상은님의 편지를 저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