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울을 싫어한다. 해가 짧아 밤이 길고, 아무리 껴입어도 추위는 옷 사이로 파고든다. 거리의 파릇파릇함은 사라지고,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군 채 서 있다. 겨울이 있기에 봄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겨울은 늘 마음에서 가장 멀리 있는 계절이었다. 그래서 굳이 애정을 쏟기보단 그냥 지나가면 되는 계절처럼 항상 느껴졌다.
그런 내가 이번 겨울을 앞두고, 겨울을 조금 다르게 보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좋아해 보겠다는 결심이라기보다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흘려보내지는 말아보자는 정도였다. 그렇게 집어 든 책이 『겨울어 사전』이다. 이 책은 출판사 아침달에서 지난여름 출간한 『여름어 사전』에 이은 후속작으로, 계절을 단어로 나누어 바라보는 형식을 이어간다. 계절을 하나의 분위기나 감정으로 묶기보다, 그 안을 이루는 말들을 하나씩 불러낸다는 점에서 이 시리즈는 분명한 결을 가진다.
『겨울어 사전』에서 단어는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사전이지만 정확한 뜻은 가장 말미에 나온다. 대신 ‘긍휼’, ‘코트’, ‘눈’, ‘퇴근’, ‘담요’ 같은 단어들이 각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단어 하나가 누군가의 기억을 건드리고, 그 기억이 겨울이라는 계절을 다시 구성한다. 이 책이 겨울을 다루는 방식은, 계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겨울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록하는 쪽에 가깝다.
책에 실린 단어들을 찬찬히 보다 보면, 겨울이라는 계절이 얼마나 다양한 결로 쪼개질 수 있는지 드러난다. 어떤 단어들은 계절의 풍경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고, 어떤 단어들은 겨울에만 유독 또렷해지는 감정이나 관계를 불러온다. ‘눈사람’이나 ‘성탄’처럼 익숙한 겨울의 이미지가 있는가 하면, ‘퇴근’, ‘결국’, ‘고백’처럼 계절과 직접 연결되지 않아 보이는 단어들도 등장한다. 하지만 겨울이라는 조건 안에 놓였을 때, 이 단어들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긍휼]
자신을 살리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마다 번번이 자신을 지키는 사람들. 아픈 몸 으로 세상을 미워하다가도 결국에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그들에게 긍휼은 꼭 필요한 약이다. 밥을 먹고 산책하고 음악을 들으며 좋은 것 하나쯤은 주머니에 넣고 굴리며 겨울을 잘 건너기를.
- 30p 일부 발췌
같은 사전 형식을 공유하지만, 『겨울어 사전』에 담긴 단어들은 『여름어 사전』보다 훨씬 몸에 가까이 붙어 있는 느낌이다. 여름이 바깥으로 확장되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안쪽으로 접히는 계절이다. 활동은 줄어들고, 움직임보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겨울의 단어들은 풍경보다 피부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먼저 느낄 수 있다. 차가운 공기, 굳은 손, 빨리 어두워지는 시간 같은 것들이 단어의 바탕이 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겨울 단어들이 떠올랐다. 해가 지기 전 이미 어두워진 퇴근길, 주머니 속에서야 비로소 따뜻해지는 손. 겨울은 늘 감정으로 판단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계절이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기 이전에, 감각으로 각인된 시간에 가깝다.
이 사전이 흥미로운 이유는, 겨울을 특별한 계절로 만들려 애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겨울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도, 위로의 언어로 덮어두지도 않는다. 겨울은 여전히 춥고,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이 책은 그 사실을 전제로 삼는다. 대신 사람들이 그 계절을 어떻게 통과해 왔는지를, 어떤 말로 기억해 왔는지를 차분하게 쌓아 올린다. 그래서 읽는 동안 겨울이 따뜻해지지는 않지만, 막연하게 느껴지던 계절은 훨씬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겨울어 사전』을 읽으며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이름을 붙여본다’라는 감각이었다. 예전에는 겨울을 그저 싫은 계절로 뭉뚱그려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안에서 무엇이 특히 불편했는지, 어떤 장면이 반복해서 남아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그 시간을 분석하거나 미화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무심히 넘기지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여전히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해가 짧은 것도, 초록이 사라진 거리도 여전히 아쉽다. 하지만 『겨울어 사전』을 읽고 나서, 겨울을 대하는 방식은 분명 달라졌다. 견뎌야 할 시간으로 한꺼번에 밀어내기보단, 단어 단위로 나누어 바라보게 되었다. 싫어하는 계절이라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는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이 보여준다.
이 책은 겨울을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겨울을 조금 더 세밀하게 보내는 방법을 제안한다.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계절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면, 『겨울어 사전』은 충분히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