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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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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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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왜 그런 때 있지 않은가. 겪을 때는 크게 감흥이 없다가도 그 뒤에 계속 곱씹게 되는. 짐 자무쉬의 신작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가 딱 그런 영화다.


시시콜콜한 가족 이야기군, 생각하며 편하게 앉아서 지켜보다가 영화관 밖으로 나오면서부터 지독한 곱씹기가 시작되었다. 덜컹거리는 1호선을 타고 가면서 몇몇 장면을 떠올리곤 픽픽 웃음을 터뜨렸고, 이야기의 끝에 감도는 씁쓸한 애틋함을 주섬주섬 주워섬겼다. 그러고는 나 왜 이러고 있나 의아해졌다.


영화는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파트. 세 단편을 붙여놓은 옴니버스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각 파트마다 겹치는 요소들이 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들, “밥이 삼촌이다.”라는 대사,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는 롤렉스 시계, 그리고 건배. 이 낯선 세 가족을 연결 짓는 매듭 같아 보이면서도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맥거핀 같아, 등장하면 해석의 의지보다도 웃음이 먼저 나는 요소들이다. 삶에 의도 없이, 어처구니없이 반복되는 우연들이 왜 그렇지 않나.


 

 

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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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를 보자. 남매가 아버지가 사는 시골 오두막에 방문하는 간단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아내를 떠나보낸 전력이 있고, 아들은 이혼을 했고, 딸은 아이를 키우고 있다. 오로지 방문, 안부 인사를 나누는 게 목적인 것처럼 인사를 주고받은 후 이들의 대화는 갈피를 잃고 시선은 생기를 잃는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에서 흔하게 나오는 서먹서먹의 바이브가 웃기면서도 처연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뭔가를 해주려 하지만 결국 남매들이 가야겠다고 발뺌을 하면서 이 헤프닝은 끝이 난다. 남매들이 떠나고 밝혀지는 아버지의 현재 삶의 반전은 놀라우면서도 끄덕거리게 만든다. 각자에겐 다 각자의 삶이 있는 거다. 그러라고 인생이 긴 게 아니겠는가.


 

 

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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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설정은 마더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파더는 ‘파더 VS 남매’ 구도이지만 마더는 ‘마더 VS 언니 VS 여동생’ 삼자 구도라는 점. 마더의 집 테이블에 화려하게 간식을 차려놓고 티타임을 가지지만, 포크와 나이프, 손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음식은 손도 안 댄 것처럼 변화가 없어 보인다. 언니는 대화 도중 잠시 화장실에 가서 정신을 가다듬고, 그 사이 여동생은 마더에게 시시한 농담을 한다. 이상하게도 세 사람의 대화를 보면서 영화에는 나오지도 않는 그들의 몇십 년 전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똑 부러지는 장녀, 장난기 많은 동생. 그런 식으로 서로 상극이지만 하나같이 엄마의 사랑을 바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시간의 장벽은 서로를 서먹하게 만들기 마련인데, 어떤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장벽을 통과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시스터 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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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파트인 시스터 브라더는 따로 떼어 봐도 인상적일 정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자식들이 부모의 집에 찾아가는 시작 부분의 구도는 여전한데, 이들은 곧바로 집에 가지 않고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쌍둥이인 그들의 마치 텔레파시가 통하는 듯한 끈끈한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자연스레 이들의 ‘상황’을 알게 된다. 이들은 부모가 영영 사라진 빈집에 가고 있는 것이다.


그걸 알아챈 순간부터 이 영화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 이 영화는 시간이 흘러 어색해지고 데면데면해진, 그래서 난감한 가족 관계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이 흩어놓는 가족들의 이야기, 꽤 오래 함께였다가 이젠 홀로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가족이 모이는 집은 남겨진 자들이 모이는 시간의 만찬 장소이자 공허의 자리다. 다 같이 모인 집에선 자식이 바랐을 부모의 정정함, 부모가 바랐을 자식들의 대성과 안정, 안착이 교차하지만, 하나의 점에 불과할 정도로 이들이 서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짧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돌아갈 타이밍을 안다. 알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집 밖으로 나온다. 그즈음 우리는 질문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제는 뭘 할 수 있을까?


시간은 우리를 막연한 질문에 몰아넣는다. 마지막에 남매가 찾아간, 부모의 짐이 잔뜩 들어있는 창고처럼. 어디 하나 건드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그러나 당장 그 질문에 답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린 다시 흩어져 살아가며 몇몇 추억과 함께 그 질문을 곱씹을 것이다. 다시 모이는 날까지. 그날까지 서로가 안녕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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