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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떨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떨어질 이들을 위한 환상동화 - 더 폴: 디렉터스 컷 [영화]

아주 오랜 옛날, LA에서

by 김그린 에디터
2025.12.06 12:54

 

 

‘The Fall’, 즉 추락은 수많은 비극의 전초이자 상징으로 활용된다. 예기치 못한 사고, 승승장구하던 이의 몰락, 별안간 들이닥치는 역경. 그러나 이 유구한 상징을 뒤집고 추락의 끝에서 다시 생명력을 되찾는 삶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 있다. 18년 만에 리마스터링되어 재개봉한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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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지극히 당연하게도, 영화의 막을 여는 것은 하나의 ‘추락’이다. 고풍스러운 음악이 깔린 가운데 교량 위에서 무언가를 수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물에 빠진 말을 건져올리는 장면 등 사고가 일어났음을 예상케 하는 일련의 흑백 이미지가 화면 위를 스쳐 지나간다. 이 최초의 추락은 주인공 ‘로이’의 것이다. 스턴트맨으로 촬영에 임하다 다리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 로이는 LA의 한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오렌지 농장에서 오렌지를 따다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된 소녀 알렉산드리아를 만난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를 앉혀 놓고 세상의 끝에서 만난 다섯 사람의 서사시를 풀어 놓는다.


이야기를 듣는 소녀 알렉산드리아의 세계에서 현실과 환상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그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시작한다. 로이가 만들고 알렉산드리아가 바꾸어 나가는 이 이야기는 마침내 바깥의 현실로 손을 뻗고, 이야기의 손길이 닿을 때 로이와 알렉산드리아 두 사람의 현실은 변하게 된다 - 예정되어 있던 추락은 일어나지 않고, 예정에 없었던 추락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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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모든 이야기는 추락이라는 하나의 실로 꼼꼼히 엮여 있다. 로이와 알렉산드리아는 서로 다른 추락에 의해 등이 떠밀려 하나의 병원으로 모여든 두 사람이다. 로이는 최초의 추락이 자신에게 남긴 상흔을 극복할 방법으로 ‘더 큰 추락’을 택하려 하고, ‘더 큰 추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알렉산드리아에게 동화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는 ‘더 큰 추락’을 원하는 로이의 부탁을 들어 주려다 높은 사다리 위에서 떨어지게 되고, 알렉산드리아의 이 추락은 끝내 로이가 ‘더 큰 추락’을 택하지 못하게끔 막는 역할을 한다.


추락을 막는 소녀. 추락이라는 실을 풀어내는 소녀. 알렉산드리아는 사실 그 이름에서부터 이미 자신의 역할을 암시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의 원형은 알렉산드로스 -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 주었던 첫 번째 이야기에 등장한 대왕 알렉산더의 이름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 누구도 풀 수 없다 알려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 풀어낸 사람이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왕이 그러했듯, 알렉산드리아도 ‘매듭을 푸는 자’이다.

 

이야기 속 다섯 명의 사람들이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돌연 나타나 단단히 묶인 매듭을 풀어 주는 소녀. 로이가 씻어낼 수 없는 슬픔에 잠기는 바람에 로이의 이야기 속 인물들이 덩달아 함께 죽어나갈 때, 이야기 속 주인공을 구해내고 마침내는 이야기 바깥의 로이까지 구해내는 소녀. 전설 속 대왕의 이름, 그리고 이야기 속 인물들을 구해내는 역할이 마이너리티의 총체인 작은 이민자 소녀에게 부여되었다는 점이 영화의 서사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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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의 이야기 안에서건, 그 바깥에서건, 영화 속 인물들은 하염없이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그 떨어짐은 모두 비극적인 추락이다. 매듭을 푸는 소녀 알렉산드리아가 모든 이야기를 바꾸어낸 이후, 로이는 그 모든 비극적 추락의 시초가 된 자신의 첫 번째 추락을 필름 속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다.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어쩌면 삶을 영영 끝장낼 뻔했던 그 최초의 추락은 필름 속에서 단 2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짧게 편집되어 지나간다.

 

최초의 추락을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버린 소녀 알렉산드리아는 그 뒤로도 로이가 스턴트맨으로 나온 필름을 거듭 돌려 본다. 필름 속 로이가 ‘떨어지고, 일어나고, 떨어지고, 일어나고, 또 떨어진다’ 라고 말하며. 알렉산드리아의 말은 ‘Fall’ 이라는 단어로 끝났지만, 알렉산드리아 덕에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그 떨어짐 뒤에는 다시 일어남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어남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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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 개봉했을 2008년 당시 약 2만 8천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타셈 싱 감독은 토론토 영화제에서 영화를 공개한 직후 비판을 받아 비평가들이 힐난한 장면을 편집했으나, 리마스터링을 진행하며 세간의 시선에 맞추어 잘라내고 편집했던 요소들을 다시 원래대로 바꾸었다고 밝혔다. 작품 초반에 등장하여 영화 전반의 동화 같은 분위기를 살려 주는 ‘Once Upon a Time in LA’라는 문구도 그렇게 사라졌다 되찾은 요소 중 하나다.

 

제작비 투자를 구하기 어려워 사방으로 발품을 팔고, 알렉산드리아 역할을 맡을 아이를 8년간 찾아 헤매고, 개봉 직후에는 절반이 넘는 비평가들로부터 공격당하며 큰 화제가 되지 못하고 잊혀졌던 영화는 약 18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상 빛을 보며 10만 명의 관객을 모으고 세계 각지의 찬사를 받는 작품이 되었다. <더 폴: 디렉터스 컷>은 그 자체로 ‘떨어지고, 일어나고, 떨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작품인 셈이다.

 

그리하여 알렉산드리아로부터 로이에게로, 더 나아가 화면 너머의 관객에게로 전해지는 문장은 한층 강력해진다. 떨어짐 뒤에는 언제나 일어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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