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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고당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후회만 남는 거야” 주인공 ’선영’의 고모 ’금순’은 말한다.
집 나가 성공한 그녀는 가족과 절연한 사이지만 친오빠의 장례식장에 제일 먼저 도착했다. 연신 담배를 피우며 초라한 장례식장을 돌아보지만 이것이 ‘가짜 장례식’ 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금순에게 가족의 죽음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이었기에 가족은 후회만 남는 존재라고 말했던 것일까? 선영에게도 가족의 존재는 비극의 의미인 걸까?
영화 <고당도>는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부고 문자를 잘못 보내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자 하는 가족의 블랙코미디 극이다. 그들은 유일한 희망인 조카 ‘동호’의 의대 등록금을 위해 눈 감고 딱 한 번만 ‘가짜 장례식‘을 치르기로 한다. 돈 앞에 윤리와 양심, 그리고 찢어진 가족 관계는 잠시 접어두고 장례복을 어벤저스의 슈트처럼 입으며 똘똘 뭉치는 그들의 모습은 코믹하다가도 철저히 무너지고 깨지며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에 애틋해지기도 한 인상 깊은 영화였다.
지키지 않고 잃기 위한 미션
‘가짜 장례식‘은 진짜 장례식보다 복잡하고 팀워크가 필요한 과정이었다. 의료법 위반, 문서 위조, 사기 등 단어만 들어도 무거운 그림이 그려지는 설정이었으나 감독은 블랙코미디 특유의 기조를 잃지 않으면서 재치 있고 기발하게 극을 이끌어 갔다.
예를 들면 사망진단서 위조를 하는 장면에서 어두운 밤, 선영은 의사 사무실에서 몰래 범죄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극에 서스펜스를 주기 위해 다른 사람이 방으로 들어온다던가 복도에 어슬렁거리는 그림자를 넣는 등의 클리셰적인 연출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인쇄 설정을 바깥에 있는 공용 공간의 프린터로 설정하며 벌어지는 사건들이 기발하게 이어졌다. 또 영정사진이 없는 아버지의 사진 대신 아버지와 똑 닮은 선영의 사진을 AI를 활용하여 노인이 된 아버지로 변신시키는 장면 또한 인상 깊게 재미있었다.
두 장면 모두 우리가 일상에서 한 번쯤은 해본 실수이자 경험이기도 해서 공감이 많이 갔고 철두철미한 범죄 계획이지만 어딘가 헐렁한 그들의 모습에 인간미가 느껴졌다. 또 AI를 활용한 사진 씬은 의미적으로도 와닿았는데 아무리 밉고, 죽었으면 싶어도 결국에는 아버지와 똑 닮은 선영의 모습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함께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아버지와 닮은 자신이 싫다가도 결국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용하여 돈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닮아서 이 위기를 모면한다는 것이 가족이 주는 아이러니한 양면성 같지 아니한가.

너무나 달콤한 당신의 죽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라고 했던가 가짜 장례식 데뷔를 성공적으로 치른 이들은 더 큰일을 막기 위해 본격적으로 판을 키워 진짜 ‘가짜 장례식’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부의금이 쌓이면 쌓일수록 선영의 가족들은 원래 벌어져 있던 틈에 더 깊은 상처를 서로 내고 만다. 내가 받는 상처는 한번 울고 잊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다음 세대로 자신들의 불행이 이어지는 것은 막으려 했다. 해서 거짓말을 해서라도 어른들은 철없는 부고 장사를 하는 동안 동호를 다른 곳으로 옮겨 아이의 마음을 지키고 싶어 했지만 이미 동호는 모든 것을 습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아주 빠르게 실행하여 동호의 아빠이자 선영의 동생인 ‘일희’의 가짜 장례식을 준비한다.
일희의 가짜 장례식은 아버지 보다 더 간단했다. 손님은 오직 사채업자들, 일희는 늘 하던 데로 조용히 숨어 있을 것이 규칙이었다. 선영은 급한 대로 장례식장 휴게 공간에 일희를 넣고 문을 닫았다. 그 문이 닫힐 때 빛이 점점 사그라들고, 일희가 어둠 속으로 묻혀가는 것이 마치 관 뚜껑을 닫는듯한 장면처럼 보였다. 어두운 문 앞에 쪼그려 앉아 가족들이 사채업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소리를 듣는 일희의 모습은 과거의 선영이 아버지의 목숨을 저버리고자 했을 때 옷장 안에서 숨어있는 모습과 같아 보였다. 무릎을 안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표정의 두 사람은 어쩌면 그때 살고자 숨는 것이 아니고, 죽고자 마음먹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임종 위기 소식에 “돈 벌러 왔다” 던 뻔뻔한 일희의 모습은 자신의 가짜 장례식에선 온데간데없었다. 부모가 되면 자식이 자신과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모습에 후회를 많이 한다 했던가, 일희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똑같이 되려는 동호의 모습을 보며 결코 ‘나’의 죽음이 달콤할 수가 없다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동호가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며 선영과 동호의 엄마도 똑같이 깨달았을 것이다. 문제를 회피하는 악습이 가족의 희망이던 존재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 말이다.

얼마 전 기사에서 각 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봤다. ‘가족’, ‘건강’ 등 여러 답변이 많은 가운데 ‘돈’이 1위였던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다. 선택지는 이중 선택이 가능했었는데 이중 선택을 한 답변자도 많이 없었다고 한다. 이 설문에 대한 답을 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그 대답이 최선이냐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선 일희를 진짜 잃을 뻔한 사건이 지난 후 가족들은 감을 한입씩 돌려먹는다. 그리고 선영에게 달아?라고 묻자 선영은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달거나 쓰거나 그 어떤 맛이 나도 같은 감을 돌려먹는 ‘우리들’의 존재가 가족이기 이전에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지 진실되게 생각해 보는 영화 <고당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