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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한참을 체류하다, 나의 무의식 내지는 알고리즘에 이끌려 몇 편의 영화를 보게 됐다. 먼저 올해 10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변성현 감독의 블랙코미디, ‘굿뉴스’. 이 영화는 일본 극좌파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돼 북한으로 향할 위기에 놓인 일본 여객기를 구출하려는 우리나라 중앙정보부와 관제사 서고명(홍경)의 비밀 작전을 다룬다. 그리고 2005년에 개봉한 ‘플라이트 플랜(Flightplan)’. 갑작스레 사망한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뉴욕행 비행기에 탄 카일(조디 포스터)이 비행기 안에서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릴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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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와 ‘플라이트 플랜’은 이십 년의 시간 차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장르도, 극 중 배경인 국가와 시대도 완전히 다른 영화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다는 것이다. 나는 기내 사건을 다룬 영화에 흥미를 느끼는 편이다. 공중의 비행기는 지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폐쇄성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폐쇄성은 ‘플라이트 플랜’과 같은 스릴러 장르에선 높은 긴장감을 조성하고, ‘굿뉴스’와 같이 통신 하이재킹을 소재로 한 코미디 장르에선 지상과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데서 오는 우스꽝스러움을 낳는다.

 

 

 

‘진짜' 공로자에는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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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속 한국과 미국, 일본 각국의 이해관계는 웨스 앤더슨의 미장센을 연상케 하는 연출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있다. 일본은 자국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한국에서 해결해 주는 모양새가 탐탁지 않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사이좋게 지내면 그만이다. 한국 중앙정보부의 고위직들은 미국엔 잘 보이고, 일본엔 생색을 내기 위해 납치된 일본 여객기의 민간인들을 구출하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각국의 이해관계 눈치 싸움에서 시작됐던 여객기 구출 사건은 처음부터 ‘진짜 공을 세운 사람’이 누가 될지에는 관심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며 골치 아픈 문제가 잘 해결되면 그만일 뿐,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정치에서 진실과 거짓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던 것이다.


중앙정보부장 박상현(류승범)은 여객기 구출 작전의 적임자로 엘리트 공군 관제사인 서고명(홍경)을 선발한다. 물론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를 거절할 수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 서고명은 이번 작전을 성공시켜 출세를 하고 싶다는 욕망에 부푼 가슴을 안고 작전에 합류하게 된다.

 

 

 

여객기 구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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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명의 활약 아래 한국 관제소를 북한의 평양 관제소로 속여 여객기를 김포 공항으로 유도하는 데 성공한 중앙정보부는 김포 공항을 평양 공항으로 둔갑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여객기 안 납치범들은 이곳이 평양이 아님을 금세 알아챈다. 무장 납치범들은 여객기에서 내리지 않겠다며 협상 마감 시간까지 자신들을 북한으로 보내주지 않는다면, 폭탄을 터뜨려 민간인 승객들과 함께 자폭하겠다고 협박한다.


이후 한국과 일본은 여객기를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는 의견과 협상을 해서라도 민간인을 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결국 서고명은 등 떠밀리듯 여객기로 가 납치범들과 만나게 되지만 협상에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납치범들이 예고한 협상 마감 시간을 몇 분 남겨두지 않은 시점, 아무개(설경구)의 발상으로 여객기 내 무고한 승객 백여 명과, 김포 공항에 와 있던 일본의 운수 정무차관 한 명을 교환하는 것으로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다.

 

 

 

진실과 거짓은 한 끗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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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의 소동이 지나간 후, 해당 일본 여객기 납치 및 구출 사건을 언론에서 어떻게 조명할 것인지를 두고 각국 간에 복잡한 이야기가 오간 듯싶다. 결론은 한국이 북한과 각을 세우면 미국이 불편해하니 이번 여객기 구출 사건에서 한국의 개입은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것. 결국 일본 운수 정무차관과 두 여객기 기장은 승객 백여 명을 구출한 영웅이 되었고, 서고명은 여객기 구출 과정에서 속된 말로 ‘개고생’을 했지만 공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영화 ‘굿뉴스’는 트루먼 셰이디라는 아무개가 만들어낸 가상 인물의 명언으로 시작하고 끝맺으며 수미상관적인 구조를 띤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 트루먼 셰이디

 

 

출세에 대한 욕망에 가슴이 부풀어 작전에 참여한 서고명 중위가 나중에는 민간인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헌신적으로 사건 해결에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객기가 납치됐을 때 납치범들을 달래며 임기응변을 발휘하며 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은 두 여객기 기장의 공도 사실이고, 무고한 민간인 백여 명을 대신해 자진하여 인질이 된 일본의 운수 정무차관의 공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과 다르게 ‘진실’은 그것을 어떤 시선에서 구성하느냐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아쉽지만 서고명은 이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비단 ‘굿뉴스’ 속 정치적 수싸움뿐만 아니더라도, 내 편인 줄 알았던 진실이 등을 돌려 배신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진실이 달의 뒷면에 있다고 앞면이 거짓인 것은 아니기에, 억울하다고 마냥 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결국 진실은 상황에 맞춰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나에게 의미 있으면 되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실상과 망상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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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가 진실과 거짓의 한 끗 차이를 보여주는 영화였다면 기내 사건을 다룬 또 다른 영화 ‘플라이트 플랜’은 실상과 망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스릴러 영화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카일(조디 포스터)은 남편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남편의 관을 싣고 딸 줄리아와 함께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한다. 그러나 카일이 잠든 사이 줄리아는 사라지고, 기내 모든 장소를 뒤져도 딸이 없자 카일은 누군가가 딸을 납치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비행기 기장과 승무원, 승객들은 딸이 납치된 것 같다는 카일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비행기에 탑승한 줄리아를 목격한 사람도 없었고, 탑승객 명단을 확인한 결과 줄리아의 이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편의 시신이 있던 영안실로부터 딸 줄리아 역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 기내 직원들은 카일이 남편과 딸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으로 망상에 빠진 것이라 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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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도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카일의 주장이 사실일지 아닐지 헷갈렸다. 카일이 딸과 함께 비행기에 오르던 상황이 너무도 분명하고 생생해서, 딸의 실종은 카일의 망상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모든 증거가 줄리아는 비행기에 탑승한 적이 없다는 정황을 가리키자, 카일이 남편과 딸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아 정말 망상에 빠진 것이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카일의 딸이 납치된 것은 결국 사실이었다. 심지어 납치범의 정체는 카일에게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던 객실 내 사복 경찰이었다. 납치범은 기장을 속여 거액의 돈을 자신의 비밀 계좌로 입금하게 만든 뒤, 이를 카일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해 납치 자작극을 벌인 것이었다.

 

 


느리게 걸어오는 진실을 기다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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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연약하다. 딸이 납치됐다는 카일의 말은 사실이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녀는 망상증 환자로 오해받게 된다. 줄리아의 이름은 납치범의 조작으로 탑승객 명단에서 누락돼 있었으며, 남편을 부검한 영안실 관계자는 납치범에게 매수되어 줄리아가 사망했다는 거짓말을 했고, 그렇게 큰 비행기 안에서 여섯 살짜리 아이를 봤다는 목격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딸이 위험하다는 엄마의 촉은 ‘사실’이라는 무기가 없다는 이유로 망상으로 전락할 뿐이다.


잘 생각해 보면 비단 ‘플라이트 플랜’ 속 긴박한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진실이 연약해지는 순간들이 많다. ‘설마 그랬겠어?’, ‘너무 피해망상적인 거 아냐?’, ‘증거는 있어?’… 세상에는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타인으로부터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피해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왜 자신이 피해를 입어야만 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증명할 ‘사실’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 사이, 이들은 ‘진실’에 다다르기도 전에 지쳐간다.


'사실'이 담긴 증거는 법적 효력을 갖기에 '진실'을 찾아갈 중요한 단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누군가가 진실로 향하고 있을 때, 사실이 늦게 도착하고 있다는 이유로 섣부르게 진실을 매도한다면 우리는 진실을 마주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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