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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insight] 성공한 지구인은 고구마를 파먹지

버티는 지구인을 위한 직업론

by 장유진 에디터
2025.10.30 16:44

 

 

좋다 

「형용사」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하다.

 

직업

 「명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

 

생계 

「명사」 살림을 살아 나갈 방도. 또는 현재 살림을 살아가고 있는 형편.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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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백일장에 다녀왔다. 28일이 된 새벽 내내 글을 쓰면서도, 29일의 마로니에를 생각했다. 다들 어떤 목적으로 참가하려나. 막연한 궁금증도 들고, 약간 소속감을 느껴보고 싶기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미리 사전 신청을 하지 못했으니 일찍 9시에 가서 현장 신청을 해야겠다—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어난 시간은 오전 8시. 그 시간에 나가야 겨우 9시에 도착할까 말까니 그냥 내 속도대로 바지런히 준비했다.


나는 30일까지 ‘좋은 직업’이 무엇인지 기고를 약속해놓고서는, 29일의 발제문을 한참이나 궁금해했다. 열려져 있는 선물 더미보다 미스터리 박스 속이 더 궁금한 게 사람 마음 아니겠나?


더군다나 오래전부터 손에 쥐고 있던 ‘좋은 직업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한참 동안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매고 있지 않았나. 남 얘기는 잘하면서도, 막상 내 앞에 발제문을 턱— 하니 세워두면 이렇게 난감할 수가 없다. 내가 내 땅굴을 파려니… 지금 가장 필요한 질문이라 외면할 수도 없고, 이거 참. 번거롭다.

 

좋은 직업은 무엇일까? 사실 ‘좋은 직업’이라는 말 자체가 뭔지 모르겠다. ‘좋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뜻으로 ‘직업’ 앞에 붙는가? 직업은 또 정확히 무엇을 '직업'이라고 부르는가.


이렇게 어려울 땐 어쩌겠나. 하던 버릇대로 사전을 찾아가야지. ‘좋다’는 특정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이 보통 이상으로 마음에 드는 것이고,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계속 종사하는 것이구나.


나의 생계를 유지시켜주는, 적성 맞는 일이 보통 이상 수준으로 마음에 들 때, 그것이 좋은 직업이구나. 이렇게 보니 저 단어가 참 까다롭게만 보인다. 도대체 조건이 몇 가지인가?


그 성질이 보통 ‘이상’이어야 하고, ‘생계’도 유지시켜주고, 내 ‘능력’도 뒷받침되면서, 일정 기간 계속 종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당분간 좋은 직업을 손에 쥐긴 어려울 듯싶다. 왜냐고? 하고 싶은 것만 엄청 하니까!


내가 언제 안 그랬냐만은, 지금만큼 생동감 있으면서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는 상태는 처음이다. 우리들은 연약하여 ‘역할’이나 ‘소속’이 분명하지 않으면 반드시 언젠가는 마음 한 구석이 진동 모드로 돌입하지 않던가?


그 모드는 보통 흑색에 지직거리는 불안정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자존감을 꽤나 쉽게 깎아 먹는다.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보면, 그 쿰쿰한 것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던 것 같다. 뭐에 씌인 사람처럼 자꾸만 무언가를 찾아다녔다.

 

좋게 말하면 ‘몰입’, ‘몰두’였고, 나쁘게 말하면 곱게 미쳐 있을 수단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또 희한하게도 사람들이 봤을 때 사행성으로 보이지 않고,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것들만 잔뜩 건드려놔서 그런지 핀잔 섞인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다.

 

어쩜 분기별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생길까? 싶으면서도, 결국 어딘가로 정착하지 못해 끊임없이 이곳저곳 땅굴을 파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대학생 때 나는 일정 기간 휴학을 하거나 어학연수를 떠나는 대신 졸업 유예를 택했다. 그때 왠지 모르게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해 있어서, 흡입하듯 여러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렇게 입력과 출력 과정을 반복하다가, 미뤄뒀던 자격증을 지금 따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한참 뒤의 과업으로 남겨둔 거였는데. 그때 수강 가능한 커리큘럼에 있던 1년 치 과정을 바로 등록했다. 이거 봐라. 글쓰기나 직업이나, 되돌아보면 뭐든 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MBTI 검사를 하면 그렇게 허구한 날 J가 나오는데, 막상 중요한 순간에는 딱 그 시점의 홧김에 결정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학교도 그렇다. 학과는 어떻게 정했나? 그냥—덜 스트레스 받을 것 같은 곳으로 정했다.


복수전공은 왜 했나? 대학교까지 왔는데 학사 두 개 정도는 따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였다. 심도 있는 고민…? 친구 만나기 전에 지하철에서 맛집 찾는 걸 더 오래 한다. (세상에서 식당 찾는 게 제일 성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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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직업이란 건 미래보다 뇌가 젊은 오늘의 내가, 늙을 나를 위해 미리 택해주는 또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지 않은가. 계획이 없을 때 끝도 없이 나태해지는 인간을 중심에 묶어두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내 적성이나 능력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실 종사해야만 하는 처지여서 어쩔 수 없이 머무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상황과 곁에 있는 사람들에 따라 금세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때로는 끝구석으로 내몰린 선택지를 강요받기도 하고.


좋은 직업을 가져야만 하는가? 꼭 보통 이상이어야 하는가. 보통이 뭔데? 지금만큼 번잡한 시대는 ‘보통’의 기준도 남다르다. 직업이란 말괄량이 같아서, 내가 체력적으로 괜찮고 상황이 안정적이면 그 명함 하나가 참 기분 좋은데, 조금이라도 변동이 생기면 저 먼 곳에 던져버리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업이 없어도 곤란하다. 내 이름 말고 나를 칭할 자기소개 거리가 없는 것부터가 가만 못 견딜 요소가 아니던가? 그렇게 따지면, 내가 그동안 했던 취사선택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매우 스트레스 받을 것 같고 업무적으로 맞지 않을 것 같은 것들만 걸러가며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어차피 간절히 바라는 게 있어도, 막상 그 안에 들어가면 처음의 마음과 기대에 일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냥—이리저리 하나씩 따지기 시작하면 답도 없다. 마음에 안 드는 것들로 가득할 것이다. 왜냐고? 체력이 약하면 언제든 마음이 번잡스러워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내게 좋은 직업이란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나를 조용히 받쳐주는 도구 같다.

 

당장 나의 충동적인 선택들을 보조해줄 수 있거나, 내가 끝도 없이 무언가를 내뱉을 수 있게 거대한 칼과 방패가 되어줘야 한다. 결국 내 마음에 들어야 그게 좋은 직업인 것이다. 지갑을 적절히 채워주거나, 내가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걸 보여줄 이름표가 되어야 한다. 그 둘 중 하나도 못 해준다? 그럼 다시 고르면 된다.

 

한 번 사는 인생에 특정 직업을 이루지 못했다고 허송세월 흘리기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는 내 허리가 불쌍하다. 세상살이란, 각자가 속하고 싶은 작은 사회에서 하는 역할 놀이 아닌가? 문 하나만 열고 나와도 내 일에 아무도 관심 없다.


있는 사람들끼리의 재밋거리일 뿐이다. 뭐, 관심 있는 사람은 끝도 없이 많겠지만… 이것을 잃거나 얻지 못했다고 나를 무너뜨리기엔 할 일이 너무 많다. ‘좋은 직업’이라는 거대한 단어에 잡아먹히기엔 너와 내가 아깝다.


그냥—우리 인생 살이에 시기별로 적당한 역할 명칭만 붙여주면 된다. 이쯤 되니 그렇다. 좋은 직업이란 무엇이냐고? 그냥—나 하고 싶게 둬주는 것, 나를 괴롭히지 않는 일, 가만히 있으면 지루해질 오늘을 조금 더 몰입감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해야 할 때, 적당한 명칭이 되어줄 단어들의 조합. 어차피 다 흙으로 돌아갈 인생에 재미난 일들을 다양하게 겪으면 좋지 않은가?


다만, 선택지가 다양해도 너무 다양해서, 지금 당장 눈앞에서 겪어본 만큼만 선택을 하는 것 같다. 나만 해도 그렇다. 외향적인 모임에 참석해도 그렇게 얻는 게 없으니, 유튜브 세상에서 불현듯 재미난 것들을 발견해오지 않았던가.


스스로 좋은 요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일은 참 피곤하면서도, 사람을 생기 있게 만든다. 어, 생기? 그래. 좋은 직업은 사람에게 '당신은 살아 있다'는 그 ‘생동감’만 줘도 참 좋겠다.

 

종종 부모님이나 연장자 분들의 사진을 찍어드리면, 마음에 꼭 드는 사진이 아닌 이상 거의 늘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신다. 사람은 이상하게도, 자신의 가장 못난 부분부터 먼저 보지 않던가. 세월이 흘러 얼굴에 새겨진 길고 내려앉는 선들이, 그저 싫으신 것이다.

 

이전에는 없던 흔적이 생기면서 찾아오는 그 잠깐의 서글픔이 느껴질 때면, 그 시선이 괜스레 마음을 건드렸다. 모두 늙어가는데, 그 작은 것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구나. 나도 분명 그럴 텐데.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을까? 대단한 관리를 할 자신도 없는데. 나도 천천히 내려앉는 길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왠지 그럴 자신이 없어 마음이 자꾸 급해진다. 육신의 노화는 막을 수 없으니, 내가 속을 꽉꽉 채워 넣을 수 있는 재미난 것들을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하려 갖은 애를 쓴다.

 

어차피 나이 먹어봤자 속은 다 어린 아이라는 걸, 이제는 나도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 이 상태만 유지하며 세월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 쉽겠냐만…

 

결국 인생이란 버티기 게임 아니던가. 무엇을 하건 끝끝내 버텨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운이 따르면 그게 직업이 되기도 하고, 재미난 취미가 되기도 하겠지.


자잘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저냥 내가 아는 나만큼만. 그리고 내가 아는 것보다 조금 더 큰 나로 마주할 수만 있어도, 성공한 지구인으로서 ‘좋은 직업’을 가진 게 아닐까—?

 

라고 말하며 고구마를 숟가락으로 파먹는 중 (얌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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