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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K-Creatives, 페컴(Peckham)에 모이다


 

2025년 9월의 두번째 주말(9/13~14), 예술가와 힙스터들의 허브로 각광받고 있는 런던 남부 페컴(Peckham)의 Unit 08에서 이색적인 마켓 “마켓루트(Market root) vol.5”가 열렸다. 런던 기반의 다양한 한인 브랜드의 공예품, 의류, 주류와 디저트를 한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한인 사업체와 연계한 할인쿠폰, 선착순 무료 랜덤뽑기, 아티스트 요요진(YOYOJIN)의 라이브 페인팅, 워크샵 등으로 입장료 3파운드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즐길거리가 현장의 방문객들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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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루트 현장. 실내에서 진행되어 날씨로 인한 변수를 최소화한 기획자들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출처: 직접 촬영

 

 

마켓루트는 2명의 디자이너가 13팀의 한인 브랜드를 모아 시작했다. 지난 4회부터 현지의 다국적 참가자들과도 함께하며 지속적으로 규모를 키워오고 있다. ‘마켓’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한인 비즈니스와 창작자들을 알리고 교류의 장을 만들고 있는 마켓루트의 기획자 양수진님과 김현주님을 만나보도록 하자.




마켓루트(Market Root)의 시작 - 두 디자이너가 내린 뿌리


 

안녕하세요! 마켓루트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현주 - 안녕하세요, 저는 마켓루트를 공동 운영하고 있는 김현주라고 합니다. 원래는 한국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을 하다가 2020년도 10월쯤에 런던으로 넘어오게 됐어요. 석사 과정을 했었고, 오리엔테이션 때 이 친구(양수진님)를 만났어요. 알고 지낸 지는 5년째예요.


마켓루트는 24년 7월부터 시작해서 지금 1년이 조금 넘은 어린 마켓이에요. 지금은 패션 디자인보다는 같이 호불(Hobul)이라는 소프트 액세서리 브랜드와 마켓루트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양수진 - 저는 양수진이라고 합니다. 저도 영국에 온 지는 5년 정도 됐어요. 한국에서 공간 디자인 학사를 하고, 여기서는 인테리어 디자인 석사를 공부하고 나서 현재는 호불과 마켓루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켓루트는 저희가 호불을 운영하면서 시작을 하게 됐어요. 짧게 소개하자면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의 디자이너 창작자들을 위한 오프라인 마켓 플랫폼입니다.

 

 

기존 런던에 있는 마켓들에 참여하며, 공간/마케팅/참가 과정 등에서 진입 장벽을 느껴 직접 마켓루트를 기획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어떤 상황들로 인해 마켓루트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나요? 


김현주 - 저희가 호불을 운영하면서 현지에 있는 다양한 마켓을 나가게 됐어요. 팝업이나 정기적으로 운영하는 마켓 여러 곳을 나갔는데, 대부분 참가 신청이 통과되고 나면 이후로는 별다른 소통이 없었어요. 그냥 일정에 맞게 찾아가면 되는 시스템이더라고요. 셀러들을 위한 지원이나 자세한 안내 같은 것들이 없는 상태에서 자기 능력껏 물건을 파는 거예요.


마케팅으로 모객을 하거나 셀러들을 띄워주는 등의 노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서, 셀러들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시간이 되면 집에 가는 마켓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날씨가 안 좋다거나 다른 일로 손님이 없으면 그냥 그날은 손님이 없는 채로 끝나는 거고요. 큰 마켓들은 나가보면 주최 측 얼굴 보기도 힘들어서 누가 주최하는지도 모르는 상황들도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더 나은 마켓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켓루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양수진 - 호불을 운영할 때 온라인으로는 저희를 알리기에 한정적인 부분이 많았어요.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절실해지면서 마켓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피드백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그때 오프라인 판매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런던의 여러 마켓에 나가려고 했는데, 정말 유명한 마켓은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어요. 작은 마켓이나 팝업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모으는 데에 있어서 마케팅적인 부분이 좀 아쉬웠고, 저희가 그런 것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셀러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가 여기서 디자인을 공부했으니까 분명히 주위에 활동하는 한인 분들이 많을 텐데, 마켓에 나가면 한국분들이 물건을 파는 경우가 진짜 없더라고요. 우리가 한국인 친화적인 마켓을 열면 그분들이 좀 더 드러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첫 마켓루트는 13인의 디자이너분들과 시작하셨다고 했는데요, 5번의 확장을 거듭하면서 유명 인플루언서들도 다녀가는 유명 마켓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규모를 확장하셨나요?


양수진 - 시작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두 배씩 커지자는 목표가 있었어요. 1회는 작지만 2회는 더 다양한 셀러와 두 배 이상의 방문객들을. 이런 식으로 마켓을 키우자는 생각으로 회차를 거듭했습니다.



포스터도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한글로 적혀있는 ‘자라나는 우리들, 뿌리를 두고서’라는 카피는 무언가를 이뤄보고자 런던에서 삶을 시작하는 수많은 사람의 다짐이 담겨있는 것 같더라구요. 어떤 의미를 담은 카피인가요?


김현주 - 평소에 마켓을 운영하면서 회의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이름을 어떻게 정하고 어떤 컨셉으로 마켓을 이끌어가는 게 좋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처럼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뿌리가 있으면 의지가 되는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루트(root)’라는 키워드가 만들어졌어요. 이 키워드가 지닌 의미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어서 ‘자라나는 우리들, 뿌리를 두고서’라는 카피를 쓰게 되었습니다.


양수진 - ‘뿌리’라는 것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한다는 해석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 외국에는 다양한 형태로 사시는 분들이 존재해요. 이민자로서, 혹은 다른 배경으로 한국인과 영국인의 정체성을 모두 가진 분들도 있어요. 그래서 그 형태가 뭐가 되었든 뿌리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각자의 뿌리를 지키면서 같이 자라나자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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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루트 5회 포스터. 공식 인스타그램 @market.root에 방문하면 모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포스터 속 캐릭터는 이름이 있다. 파란 친구는 Moo, 뾰족한 친구는 Rootie, T 모양은 Temi다.

출처: 마켓루트 공식 소셜미디어




‘이것’이 다르다, 마켓루트의 협업과 홍보 



기존의 마켓 참가 경험이 지금의 마켓루트를 만든 것 같은데요. 마켓루트는 다른 마켓들과 어떤 차별화를 이루고 있나요?


김현주 - 일단 저희는 많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얼리버드 판매를 하고 있어요. 최소한의 방문객을 사전에 확보 하는거죠. 사전에 티켓이 판매된 현황으로 현장의 인구도 예측할 수 있고요. 그리고 계속해 왔던 또 다른 마케팅은 혜택을 제공하는 거예요. 저희와 제휴를 맺은 업체들, 셀러들과 연계해서 고객들에게 무료 체험이나 할인 쿠폰, 시음 이벤트를 제공하는 거예요. 서로가 윈윈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게요.


양수진 - 마켓루트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보를 교류하고, 친해지고, 협력하는 커뮤니티를 제공하고 있어요.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서 참가자끼리 인생 친구가 되거나 서로 협력할 수 있는 장을 만드려고 노력하고 있죠. 그게 차별화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마켓루트에 방문했더니, 디자인 상품부터 F&B, 워크샵까지 정말 다양한 셀러들이 계셨어요. 한 셀러분께 마켓루트에 참여하신 경로를 여쭤봤더니 두 분께서 직접 컨택과 홍보를 하셨다고 하던데요, 컨택 대상에 대한 기준이 있으셨나요?


양수진 - 사실 런던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창작자분들이 생각보다는 많지 않아요. 그래서 찾는 대로 모두 컨택을 드렸어요. 그리고 마켓루트에는 이전에 마켓 참여 경험이 없으셨던 셀러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컨택을 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보다는) 그분들이 마켓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함께 방법을 찾는 노력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김현주 - 기존에 다른 플랫폼에서 상품을 판매해 본 적이 있으신 분들은 협업이 쉬운 편이에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시는 분이라든가, 경험적인 아이템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마켓화가 어렵죠. 그렇지만 그분들도 작업을 하시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장에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분들의 콘텐츠를 마켓에 맞게 선보일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함께 아이디어를 많이 나누고 있습니다.


에디터님이 다녀가신 리아산방도 처음 참여했을 때는 2시간만 사전 예약된 워크샵을 진행하고 가는 방식이었어요. 그런데 너무 아쉬운 거예요. 이분이 주는 콘텐츠가 너무 재미있고 잘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길게 체류해서 워크인 워크샵을 열어보는 것은 어떠냐고 저희가 제안을 드렸어요. 이런 식으로 참여 형태를 함께 바꿔 나가는 것도 저희만의 마케팅 방식입니다. 장소를 제공하고 참여비만 받는 것보다 더 좋을 것 같은 방식을 권유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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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형 에디터가 다녀간 리아산방(leasanbang)의 한국화 워크샵. 

출처: 직접 촬영

 

 

양수진 - 컨택에 있어서 정해진 기준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한국인 창작자들을 알리고, 그분들이 수익을 조금이라도 낼 수 있도록 돕는 게 저희 목표이기 때문에 컨택을 할 때 그런 쪽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해외 창작자들도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실제로 현장에서 외국인 셀러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은 어떤 경로로 협업하게 되었나요?


김현주 - 3회까지는 모든 참가자가 한국분들이셨어요. 그런데 저희가 매회 행사 종료 후 진행했던 만족도 조사에서 고객층이 다양해지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신 분들이 계셨어요. 매번 다른 장소에서 행사를 운영하는 방식은 계속 시도를 해봤는데, 셀러들을 국제적으로 확장하면 그분들의 네트워크로 고객층을 다양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셀러들에게도 국제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이 커지면 더 좋을 것 같아서 4회 때부터 다양한 국적의 셀러들을 모집했어요.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수진 - 처음에는 한국 창작자들의 마켓이라는 컨셉을 가져가려고 했는데, 한국 셀러들만으로 규모를 확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셀러분들 사정에 따라 매회 참가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그런 측면에서도 외국 셀러분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외국 셀러분들의 모집은 여러 경로가 있었어요. 광고를 통해서 연락이 오기도 했고, 이전에 저희 마켓에 손님으로 왔던 셀러가 참여 의사를 보인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호불을 운영했을 때 납품했던 편집샵이 있었는데, 같은 편집샵의 입점 브랜드에 연락해서 마켓루트 참여를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에는 다양한 분야의 셀러들도 있었지만 예술가의 라이브 페인팅이나 공예품 설치도 볼 수 있었어요. 공예품은 행사 후에 구매할 수 있도록 기획하신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마켓’이라는 플랫폼에서 어떻게 이러한 협업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게 됐나요?


김현주 - 그건 옆에 있는 이 친구의 뇌에서 나옵니다.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더라고요. 그리고 저희가 셀러분들에게 제안하는 만큼 그분들이 아이디어를 내주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라이브 페인팅과 인터렉티브 아트를 해주셨던 요요진님같은 경우는 저희가 스레드에 올린 글을 보고 연락을 주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미팅을 하면서 어떤 공간에서 무엇을 할지 아이디어를 발전시켰죠. 


공예품 전시도 비슷한 맥락으로 아이디어가 나왔던 것 같아요. 사실 보셨던 설치는 여러 셀러분들의 작품을 모아서 만들었어요. 가구 위에 놓인 보자기는 다른 셀러분의 작품이에요. 참가 신청을 마감하고 나서 각자 자기소개를 할 때 다른 셀러분들과 협업 의사를 보이는 셀러분들을 저희가 연결해 드렸는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설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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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 EAST X EAST의 가구 설치. 중고가구를 재조합한 오브제다.

출처: 직접 촬영 

 

 

양수진 - 차별화라는 부분에 있어서 예전부터 마켓에 예술 요소를 많이 가져오고 싶었어요. 1회 때 아티스트 분들도 참가하셨는데, 판매 중심 마켓이라고 생각하고 온 방문객분들은 아티스트 분들의 작업에 많이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고요. 이후로는 셀러들 위주로 많이 모집했었지만, 항상 아티스트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특히 그분들을 알리려면 저희 마켓에서 어떻게 보여드려야 할지 미팅을 가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요요진님 같은 경우는 판매 수익은 없지만 큰 벽면에 라이브 페인팅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볼 수 있도록 했어요. 그리고 에디터님이 본 인터렉티브 아트는 제가 제안해서 둘째 날에 즉흥적으로 가져오신 거예요. 6년 전에 한국에서 그분의 전시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관객 참여형 작품들이 많았어요. 첫날 작가님과 이야기하다가 그런 작품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집에 쓸 만한 장비가 있다고 하셔서 일요일에 설치하신 거예요.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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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요요진(YOYOJIN)이 라이브 페인팅을 하고 있다. 

출처: 마켓루트 공식 소셜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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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요요진(YOYOJIN)의 관객참여형 작품. 즉석에서 사진을 찍고 이미지의 알고리즘을 분석하여 가상의 국가를 생성한다. 국기의 이미지, 헌법, 국가를 들을 수 있는 QR 코드가 출력된다.

출처: 직접 촬영



마켓루트는 지난 3월 Netil Market과 협업을, 그리고 오는 9월 Wapping Docklands Market과도 협업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 창작자들뿐만 아니라 타 마켓과 협업하시는 모습도 흥미로웠는데요, 어떠한 과정이 있었나요?


양수진 - 사실 Netil 마켓 안에 저희 호불 매장이 있어요. 그 마켓이 지역에서는 많이 사랑도 받고 음식도 유명한데, 홍보가 잘 안되었기도 하고 대부분 음식을 먹으러 오는 편이라 상품을 파는 저희로서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이제는 저희가 마켓을 직접 운영하고 있고 마케팅 측면에서의 역량도 있으니 함께 열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저희 참가자들에게는 로컬 마켓에서 물건을 팔면서 지역민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그쪽에서는 새 고객층을 얻는 상생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현주 - Wapping Docklands Market도 비슷한 느낌으로 진행이 됐어요. 여기가 와핑(Wapping)*이라는 지역에 히든 스팟 같은 곳인데, 마찬가지로 지역민들한테 많은 사랑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 마켓의 마케팅팀에서 일을 하는 친구가 제안을 해줬어요. 이 마켓이 푸드마켓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데, 공예품을 만드는 셀러들과 협업하고 싶어한다구요. 그래서 영국 현지의 푸드 마켓과 저희 창작자들의 새로운 상생 효과를 기대하면서 콜라보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런던 중심지 동부 타워브릿지와 런던 탑 인근에 위치한 지역이다.




마켓루트의 현장 이야기



이제 방문객들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다양한 영국 현지인들도 마켓루트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이분들은 주로 어떤 경로로, 어떤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셨나요?


김현주 - 다양했던 것 같아요. 워크인 고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캐릭터가 그려진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곳곳에 붙여놨어요. 왜냐하면 페컴이 요즘 문화예술이나 디자인으로 뜨고 있는 동네라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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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장소에 부착된 마켓루트 홍보 포스터.

출처: 마켓루트 공식 소셜미디어

 

 

그리고 재방문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회차를 거듭하면서 저희도 그분들을 알아보게 되거든요. 아무래도 저희 마켓만의 차별화된 디저트, 주류, 디자인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당연히 인스타 광고를 보고 오시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게 점점 팬(?)이 되신 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양수진 - 우선 이번에는 현지인 분들의 워크인이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광고를 했을 때 ‘코리안 크리에이티브(Korean Creatives)’라는 키워드에 새로움을 느껴서 오신 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컨셉은 ‘코리안’이면서 런던의 힙한 디자인 마켓의 분위기를 가진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신 분들도 계시고요. 그리고 요즘 한국 자체가 한국의 문화나 동양적인 감성과 별개로 트렌디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보니 말 그대로 한국 마켓이 궁금한 분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마켓루트를 운영하시면서 소통하신 현지인이나 한국인 방문객들로부터 가장 반응이 좋았던 부분이 있을까요?


양수진 - 저희가 매번 마켓이 끝나고 나면 만족도 조사를 해요. 지금까지 좋았던 부분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것은 다양하고 유니크한 셀러와 아이템이었어요. 저희도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큐레이션을 해서 다양한 아이템을 보는 재미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번에는 한식에 대한 요청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한식 셀러분도 모시게 되었는데, 이 부분도 좋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습니다.



마켓루트는 랜덤뽑기/선착순 이벤트/한인 비즈니스 할인 쿠폰 등 3파운드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다양한 혜택을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현재 방문객들의 경험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고 계신 부분이 있을까요?


양수진 - ‘3파운드가 아깝지 않게’에 정말 중점을 맞췄던 것 같아요. 사실 런던에는 입장료를 내는 마켓이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비용을 내도 아무 혜택이 없어요. 그래서 마켓에 와서 구매한 물건이 없더라도 즐거운 경험을 하고 가실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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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뽑기로 얻은 DRAGO의 약과(좌)와 런던의 한인 식당 및 카페의 할인쿠폰(우). 약과는 마지막 남은 선착순 랜덤뽑기로 운좋게 얻었다. 럭키-!

출처: 직접 촬영



마켓루트와 함께하는 셀러분들, 그리고 방문객들과 소통하면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김현주 - 순간순간 보람찼던 일들이 많아요. 행사가 끝나면 ‘수고했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게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인사말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장문의 편지와 함께 스토리를 공유하고 저희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앞서 저희를 통해서 마켓 참여를 갓 시작하신 분들이 많다고 했는데, 엄청난 성과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소식을 공유해 주실 때 엄청 보람차죠. 재입고 요청이 들어왔다거나, 신규 대량 주문을 받았다거나, 콜라보를 하게 되었다거나요. 


양수진 - 셀러들뿐만 아니라 한국인 방문객들도 이런 행사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하죠. 특히 “마켓루트 덕분에”, 이 말을 들을 때 너무 좋아요.



그렇다면 이런 활동을 해외에서 이어오는 것만의 즐거움이 있나요?


김현주 - 마켓루트가 다양한 사람들하고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장이 됐잖아요? 해외에서는 나이나 배경을 초월해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국내였으면 20살, 30살 차이 나는 분들하고 터놓고 인생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각보다 적잖아요. 여기서는 같은 셀러로 만나서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 즐거운 것 같습니다.


양수진 - 해외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이곳에서 한국과 관련된 이벤트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저희만의 진정성과 스토리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게 해외 활동만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자라날 마켓루트



이제 마지막 질문 두 가지만 더 드려볼게요. 앞서 마켓루트를 거듭하며 두 배씩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는데, 앞으로의 확장 방향은 어떻게 되나요?


김현주 - 가장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가장 어려운 앞으로의 과제기도 하고요. 단기적인 목표는 다음 6, 7, 8회를 순조롭게 진행하는 겁니다. 그리고 지치지 않으면서 운영하는 것도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잘 여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요.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목표는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양수진 - 초심을 잃지 않는 것? 이곳에서 한국인 창작자들을 어떻게 더 잘 알릴 수 있을까? 그게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작든, 크든,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김현주 - 비교하지 않고 비교당하지 않고 그냥 초심 그대로 방향을 유지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초반에 너무 즐기면서 했었으니까. 그게 계속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차근차근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창작자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많은 우연이 겹쳐야겠지만, 제 글을 보고 마켓루트에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생기길 바라면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런던에서 호불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디자이너로서, 마켓루트라는 플랫폼으로 한인 창작자들을 이어준 기획자로서 영국이나 유럽 진출을 희망하는 한국인 창작자분들께 조언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 것 같나요?


김현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단기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길 바라요. 가령 해외를 나가서 어떤 브랜드에서 활동해야 한다든가, 어떤 성과를 내야 한다든가. 그렇지 않으면 한국을 떠난 것이 의미가 없다고 섣불리 판단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는데, 길게 보시는 게 좋아요.


저희가 요즘 가지는 마인드셋 중 하나가 "실패를 인사이트로 여기자”입니다. 당연히 저희도 실패한 적 있죠. 한국에서 외국으로 넘어왔으니 초반에는 힘들고 원하는 대로 안 되는 일밖에 없는 게 너무 당연한데, 그렇다고 해서 마주하는 모든 실패가 엉망인 것은 아니잖아요? 엉망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오시면 좋지 않을까 해요. 


영국 출신인 한인 디자이너들 있잖아요. 처음부터 그분들처럼 된다는 생각보다는, 그분들도 첫 시작은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면서 활동을 이어가다 보면 지금의 멋없는 본인이 멋있어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양수진- “마켓루트에 참가하라”


농담 반 진담 반입니다(웃음). 저는 계속 도전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와서 사는 것 자체가 용기 있는 결정이고, 이미 너무 멋있는 행동이기 때문에 기죽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스스로 외국인이라는 한계에 가두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살다보면 우울해지거나 힘든 순간들도 많이 찾아올수도 있어요. 이런 마켓루트같은, 꼭 마켓루트가 아니더라도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같이 도전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아요. 




마켓루트가 보여주는 ‘상생’의 가치



얼리버드 티켓 판매를 통한 고객 사전 확보, 풍부한 입장 혜택, 각 셀러들과의 지속적인 미팅을 통한 맞춤형 마켓화 전략, 아티스트 협업, 디자이너 브랜드부터 먹거리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셀러들. 마켓루트는 ‘K-크리에이티브’라는 키워드뿐만 아니라 두 기획자의 마켓 참여 경험이 축적된 차별화된 운영 전략으로 런던의 다국적 고객과 현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원동력은 두 기획자가 중요시하는 ‘상생’의 가치에서 나온다. 비교하지 않고 비교당하지 않으며 한인 창작자들을 알리고 협업과 소통의 장을 만든다는 목표로 협업 셀러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들이 강조하는 ‘상생’의 가치가 더 깊은 뿌리를 내려 런던에 살고 있는, 혹은 앞으로 런던에서 살게 될 많은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커뮤니티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유학이나 워킹 홀리데이로 영국 진출을 희망하는 신진 창작자들은 마켓루트에 문을 두드려보자. 그리고 마켓루트에 참가하라. 타지에서 고독한 여정을 함께 할 귀중한 인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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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루트 입구 홍보물.

출처: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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