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많은 콘서트와 페스티벌의 무대가 서울이 아닌 영종도로 옮겨가고 있다. 공항과 숙소가 바로 옆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일까?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아는 국내 최정상 밴드와 이제 막 뜨기 시작하는 루키들, 그리고 코어 팬이 많은 일본밴드의 무대까지, 국내에서 주목받는 밴드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번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 2025>는 다양한 무대와 넓은 부지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가기까지 꽤 고민했다. 하루 숙박을 하지 않는 이상, 차가 없는 수도권 거주민에겐 가는 길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음이라. 그럼에도 이 페스티벌을 가기로 마음먹었던 이유는 라인업에서 보이는 자신과 섬세함 때문이었다. 홍대 음악의 성지로서, 또 다양한 밴드들의 시작 무대가 되어 준 롤링홀이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만큼 페스티벌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록 음악에 미쳐있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내게, '롤링홀'은 꿈의 공간이자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였고, 그들의 새로운 도약을 함께하고 싶었다.
행사 첫날, 날씨가 맑지 않아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비는 한 번 내리지 않았고 날은 선선하기만 했다. 처음으로 본 무대는 '너드커넥션'이었다. 분명 야외무대인데도 건물 벽으로 양옆과 무대 정면이 막혀 있어, 아늑하면서도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그들의 무대에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BREEZE STAGE'라는 명이 참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고 할까.
내게 이번 페스티벌의 가장 큰 발견은 바로 이들이었다. '좋은 밤 좋은 꿈'이라는 노래 단 하나만 알던 나는, 그들이 이름 따라 조용하고 맑은 음악에 특화된 줄 알았기 때문인데, 정작 그들이 보여준 것은 사이키델릭하면서도 지극히 '록'적인 열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보통 밴드를 시작하는 이들은 록을 좋아하고, 음악에 몰두해 있으니 오히려 취향과는 반대로 소위 말하는 너드가 된다. 그런 너드들이 모여 만든 밴드라면, 당연히 음악만큼은 정반대여야겠지!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예상치 못한 음악에 기분 좋게 놀란 이들의 얼굴이 여유로웠다. (늦게 온 우리에게) 첫 문을 열기 좋은 무대였다.
장소에 압도된 무대 또한 있었다. 바로 'CHROMA STAGE'다. 건물 내부에서 진행하는 데다, 줄을 세워 입장을 하기에 공연장의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성인만 들어갈 수 있어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던 나는, 같은 시간대 궁금했던 다른 밴드의 무대를 포기하면서까지 이 공연장을 보리라 마음먹었다.
인파가 몰려 공연이 시작하고도 10분이 더 지나 들어간 무대는 예상치 못한 공간이었다. 오히려 펍이나 클럽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할까? 본래 좀 더 프라이빗한 공연장으로 쓰이는 듯했다. 마치 '존 윅'같은 영화에서 마피아 보스를 만나기 위해 은밀히 찾아 들어가야 하는 곳처럼 말이다.
여타 페스티벌에서 볼 수 없었던 공연장의 모습에 나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뛰었다. 마치 우리끼리만 즐기자고 암묵적으로 약속한 듯한 소속감이 드는 공간이었다. 공간이 뻥 뚫려있고, 음악이 건물을 넘어서까지 들려, 모두를 위한 공연장인 야외무대와는 달랐다.
내가 방문했던 시간대에는 '아디오스오디오'가 무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 만나보는 밴드였는데, 평소 해외 음악을 주로 들어 이런 밴드가 있다는 걸 지금까지 몰랐던 게 후회스러울 만큼 에너지 가득한 무대였다. 특히나 보컬의 카리스마가 대단했는데, 어두운 공간감과 맞물려 여러 사람을 홀릴 것만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미 그들의 골수팬들이 꽤 자리를 잡고 있었고, 관객과 밴드의 소통이 친근해지자 페스티벌 같지 않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밴드의 특성과 어울리는 장소의 선정이 생각보다 중요하단 걸 덕분에 깨닫게 됐다.
시간마다 각 무대에서 열정 가득한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LUCY'는 내 생각보다 훨씬 발랄하고 재치 있는 무대를 꾸몄고, '이승윤'은 관객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혼자인 게 믿기지 않을 에너지를 곳곳에 뿌렸다. '어반자카파'가 보여주는 노련함은 다른 무대를 보기 위해 급히 발을 돌리던 사람들의 어깨를 붙잡았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또 배가 고픈 줄 모르고 음악을 즐기면서 나는 한편 이렇게 쾌적한 페스티벌이 또 있을까 했다. 덥지 않은 가을 날씨에 편안한 동선, 이벤트존과 포토 부스를 통한 즐거움까지.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 화장실은 아주 큰 덤이다. 몇 년 전, 송도에서 열렸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갔다가 만신창이가 되어 코로나까지 걸려 온 나로선, 너무나도 몸과 마음이 편한 페스티벌이었다. 따로 갔던 지인의 말에 의하면 토요일의 인파가 일요일보단 적었다고 하나, 늦게 갔더라도 내게는 너무나도 괜찮은 페스티벌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헤드라이너는 국내 그 누구도 그 자리를 위협할 수 없을 밴드, 'YB'가 맡았다. 세월을 무시한 완벽한 무대를 보고 있자니 거의 무서울 지경이었다. 무대를 잘하기로 소문난 'Xdinary Heroes'도 윤도현의 카리스마 앞에선 아직 풋풋한 청년들이기만 했다.
모두가 아는 그 노래, 앵콜곡으로 '흰수염고래'를 열창하면서 슬슬 자리를 정리했다. 아쉬운 마음에 무대 끄트머리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 도저히 자리를 뜰 수 없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숨 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우린 서로 이렇게 아쉬워하는걸...." 이 음악의 전주를 그 누가 지나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피로했지만 잠에 들지 못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몸과 지쳤던 마음이 음악으로 한 번에 정리되는 경험은 콘서트와 페스티벌을 계속해서 가게 만드는 마법이다. 30주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알짜배기 무대가 가득했던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 2025>. 2026년에도 돌아오기를, 그때엔 더욱 날개를 달고 돌아오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