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 렌고쿠 쿄쥬로를 쓰러뜨린 최강의 혈귀 중 한 명, 아카자. 이번 영화는 우리로 하여금 그의 과거를 직접 마주하게 했다. 누구보다 강함을 추구했지만, 누구보다 연약한 마음을 지녔던 비운의 혈귀. 이제 나는 그의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 보려 한다.
아카자가 가장 자주 내뱉는 말은 두 가지다. “혈귀가 되어라” 그리고 “나는 약한 자가 싫다.” 이 말들은 단순한 버릇이 아니라, 그의 인간 시절이 남긴 깊은 상처의 메아리다.
“혈귀가 되어라!”라는 외침은 사실 “우리 도장에 들어 와라!”는 케이조의 권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케이조는 병든 아버지를 위해 매번 절도를 저질렀던 하쿠지(아카자의 인간 시절 이름)를 거두어 준 은인이었다. 이곳에서 하쿠지는 케이조의 딸, 코유키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훗날 그의 영원한 사랑이 된다.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자란 하쿠지에게 아픈 코유키를 간호하는 일은 결코 낯설지 않았다. 그는 늘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아픈 사람은 늘 미안하다고 말한다. 가장 힘든 건 본인일 텐데도.”라는 따뜻한 말을 건네며 다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코유키는 그런 하쿠지에게 마음을 열었다. 불꽃놀이를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함께 보자고 말하는 그의 곁에서, 코유키는 처음으로 미래를 꿈꾸었다.
코유키의 청혼으로 두 사람은 혼인하게 되었으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도장을 시기한 사무라이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케이조와 코유키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아버지의 묘를 찾아갔다 돌아온 하쿠지는 이미 모든 것이 무너진 뒤였다. 사랑하는 이들을 누구 하나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그를 절망의 심연으로 끌어내렸다.
하쿠지가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가족이었다. 혼자 싸우는 삶이 아니라, 따뜻하게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였다. 그러나 세상은 끝내 그에게 평온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쩌면 혈귀란 존재는, 인간에게 깊은 상처를 입은 자들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독으로 목숨을 빼앗은 사무라이들을 보며, 하쿠지는 “나는 약한 자가 싫다”는 신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 말은 훗날 혈귀가 된 이후에도 그를 지배하게 된다. 분노에 휩싸여 사무라이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위에 도장의 흰 도복을 피로 물들인 그는, 삶의 의미를 완전히 잃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무잔을 만나, 저항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혈귀가 된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에게 남은 것은 사랑을 지워낸 공허한 감정뿐이었다.
그의 혈귀술은 눈꽃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코유키의 이름 속 ‘유키(雪, 눈)’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의식 깊은 곳에서조차 그는 연인을 향한 기억을 붙잡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말버릇과 술식은 결국 잃어버린 사랑을 더듬는 흔적이었다.
기억을 모두 되찾은 아카자는 마지막에 스스로 소멸을 택한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코유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붙잡고 지옥의 길마저 함께 걸어간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사랑은 때로 너무 강렬해서, 도리어 쉽게 잊히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떠올리기만 해도 견디기 힘들기에, 차라리 가슴 깊이 묻어 두고 살아가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카자가 품었던 사랑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떠올리는 순간 너무 아파, 끝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
그의 사랑은 비극이었으나, 동시에 가장 뜨거운 구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