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손꼽히는 고전들은 시대를 초월한 삶의 지혜를 품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역시 19세기 초기 저 먼 영국의 땅에서 태어났지만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얼핏 단순한 로맨스 작품으로 보일 수 있는 소설이지만 커뮤니케이션학 이론으로 해석한다면 이 책도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들을 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첫 번째로 주목할 만한 것은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부조화 이론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신념 체계와 현실 사이의 불일치를 견디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던 정보와 현실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기존 신념을 뒷받침하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확증 편향 현상을 보인다.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세상에 잘못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엘리자베스 베넷이 바로 이러한 인지부조화의 전형적인 예시를 보여준다.
다아시에 대한 그녀의 첫인상은 그의 오만함과 무례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후 다아시의 진정한 품성과 선행에 대한 증언들이 쏟아져도, 엘리자베스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히려 위컴이라는 매력적인 장교가 전하는 다아시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만을 맹목적으로 신뢰한다. 그래야지만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다아시의 편지를 읽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편견을 깨닫는 순간은, 인지 부조화가 깨지며 고통을 겪었으나 올바른 진실로 나아가는 해방의 장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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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은 카츠와 라자스펠드가 제시한 2단계 흐름 이론이다. 미디어가 강력하다는 이전의 이론과 다르게 해당 이론은 대중이 미디어가 직접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자신이 신뢰하는 오피니언 리더를 통해 걸러진 정보를 더욱 강력하게 수용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자신이 존경하거나 친밀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그의 의견에 더 강한 신뢰를 보인다. 『오만과 편견』의 인물들은 “내가 아는 사람이 ~라고 했는데”라는 말의 전형적인 예시다.
제인 베넷은 동생 엘리자베스의 조언에 크게 의존하며, 빙리 역시 친구 다아시의 의견에 좌우되어 제인과의 관계를 포기하기도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베넷 가문의 막내딸들이 보이는 행동 패턴이다. 리디아와 키티는 서로를 오피니언 리더로 삼아 경솔한 판단과 행동을 반복하며, 이는 결국 리디아의 파멸적인 도주로 이어진다. 오스틴은 이미 200년 전에 인간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개인이 여론 형성에 미치는 결정적 역할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엘리후 카츠가 발전시킨 이용과 충족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이용과 충족 이론은 수용자를 수동적 존재가 아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미디어를 선택하고 이용하는 주체로 본다. 작중 인물 중에서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은 이 모델의 사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주기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저택 로징스 파크로 초대하거나 직접 방문하는데, 이는 단순한 사교 활동이 아니다. 모든 활동의 목적은 이러한 만남을 통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하고, 타인의 찬사와 복종을 통해 자존감을 충족시키려는 것에 있다. 그녀가 끊임없이 조언을 늘어놓고 타인의 삶에 간섭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영부인이 기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영부인의 무례한 질문들에 재치 있게 응수하고, 부당한 요구에는 단호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한다. 이용과 충족 이론이 지적하듯, 미디어가 항상 이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며, 충족에 실패할 경우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엘리자베스와의 대화에서 당혹감과 분노를 느끼는 영부인의 모습은 사용자가 기대하던 목적을 충족하지 못해 발생하는 다른 결과의 전형적인 예시다.
인간은 소통하며 살아간다. 이 간단한 명제는 몇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오만과 편견』을 인간의 사랑을 다룬 단순한 작품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 시선을 조금만 다르게 하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교재로 활용할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학 이론을 빌려 읽는 『오만과 편견』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편견에서 자유로운가? 우리가 신뢰하는 정보의 출처는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 그리고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