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뻔뻔한 연민에 대하여 [도서/문학]

글 입력 2024.03.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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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없는 전쟁, 즉 1930년 에른스트 윙거가 관찰했듯이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을 쏘는 총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는 곧 사진을 찍는 행위인 것이다. (103p)

 

 

우리는 매일 아침 뉴스로, 지구 반대편에서 떨어지는 포탄을 본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 폐허가 된 도시를 본다. 언론인들은 '리얼리즘'이라는 명목으로 잔인하고 잔혹한 그 모든 풍경을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사람들은 이를 거리낌 없이 소비한다. 그렇다면 전쟁 사진이 가지는 효과는 과연 무엇일까? 왜 우리는 전쟁 사진을 소비할까?

 

 

 

1. 연민과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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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쟁 사진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가지며, 이 연민이 무언가 생산적인 행동을 유도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한 사진은 '객관적이고 믿을 만하기에',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할 수 있는 증거자료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연민'이라는 감정 자체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뻔뻔한 것인지, 안전한 곳에서 바라보는 타인의 고통이란 얼마나 관음증적인 것인지 깨닫게 만든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154p)

 

사진이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을 우리 눈앞에 가져온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느끼는 한, 사람들은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150p)

 

 

따라서 인간의 고통을 자극적으로 그리는 사진들은 본질적으로 포르노그래피와 다르지 않으며, 우리에게 대단한 교훈을 안겨주지도 못한다. 이러한 사진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며, 충격이 거듭될수록 우리는 더욱더 강도 높은 고통에 무뎌지게 된다.

 

 
캐나다의 공공보건 관계자들은 암에 걸린 폐나 발작으로 피가 뭉친 뇌와 같은 충격적인 사진을 곁들여 모든 담뱃갑에 경고문을 인쇄해 넣기로 결정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뒤에도 흡연자들이 그런 사진들에 계속 불편함을 느낄까? 충격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충격은 점점 엷어지는 것이다.
 

 

 

2. 사진의 모순


 

또한 사진은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주관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며,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얼마든 가공될 수 있다. 실제로 초창기 전쟁 사진들의 상당수는 연출된 사진이었으며, 이러한 사실은 사진이 가진 모순적인 특징을 정확히 지적한다.


 

사진 이미지도 그 자체로 일종의 모사라는 점에서, 당시에 일어난 어떤 일을 그저 투명하게만 보여줄 수는 없다. 사진 이미지도 누군가가 골라낸 이미지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84p)

 

 

 

3. 사진을 '찍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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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사진을 통해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고용된 배우가 아니다.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며, 친구이고, 인격을 지닌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한다'라는 착각으로 짧은 연민에 취한 뒤, 늘 그랬듯이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비록 적이 아닐지라도, 타자는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에 실린 유명한 사진에 찍힌 사람, 부상을 입은 채 목숨을 구걸해야만 할 운명에 처한 그 탈레반 병사에게도 아내와 자식, 부모와 형제자매가 있을 것이다. (113p)

 


우리는 이미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잔인하며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다. 굳이 자극적인 이미지로 보여주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이미지들을 본다고 해서 우리가 더 선량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사진들이 정말 우리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고 있기는 한 것일까? 오히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까?

 

 

"우리는 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화재 사건이나 충격적인 살인 사건을 다룬 신문 기사를 늘 읽곤 하는가?" 그의 답변에 따르면, ‘불행에 대한 사랑,’ 잔악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147p)

 

 

 

4. 마치며


 

이 책은 자극적인 이미지로 점철된 현대 사회를 비판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방법도 용인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연민과 자극의 한계를 제시한다. 때문에 저자가 <타인의 고통>을 통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보면 좋을 주제라고 생각한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154p)

 


[김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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