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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컴퓨터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MIDI(Musical Instrument Digital Interface)라고 하면 컴퓨터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전자음악을 떠올린다. 버튼을 눌러 여러 악기를 불러오고, 마우스를 클릭해 프로그램 안에 음을 찍어 넣으면 음악이 완성된다. 손쉽고 직관적이며 0과 1의 컴퓨터 언어로서 표현된다.

 

반면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을 떠올려보면 전통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음’이라는 인류의 오래된 약속 위에 소리의 높이, 길이, 세기를 기호로 표현한 종합적인 언어로 만든 전통적인 것이다. 게다가 악기의 재질과 나이는 혹은 연주자와 공연장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에 공연 시에 특정한 잔향이나 공간감은 디지털로는 쉽게 구현될 수 없을 듯하다.

 

이렇게 MIDI와 클래식 음악은 마치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 같으며, 이 두 세계는 쉽게 닿을 수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만약 이 둘을 융화시켜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시킨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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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1913)>은 초연 당시 난해하고 파격적이라는 이유로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리듬과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 전통적 음악 문법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아 오늘날에도 ‘연주하기 가장 어렵고 복잡한 곡’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곡이 주는 강렬한 에너지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혁신적으로 다가온다.

 

원시적인 난이도와 현대적인 기법이 충돌하며 극악의 난이도를 가진 곡을 MIDI라는 디지털 통신 언어로 재현한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송현주 교수의 < The Rite of Spring, Seoul Cybernetic Orchestra >이다. 이 작품은 약 10개월동안 100개 이상의 트랙을 쌓아가며 작업하며 클래식 음악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악기의 소리와 공연장의 잔향 및 공간감, 그리고 많은 악기군과 난이도 높은 연주법을 재현한 것이 특징이며, 쉽게 말해 컴퓨터 음악으로 구현한 봄의 제전이다.

 

 

 

 

필자 역시 MIDI를 이용해 음악을 재현해 본 경험이 있어, 이 작품이 굉장히 섬세하고 음악과 악기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요구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순한 마우스 클릭, 악보대로 건반을 누르는 것만으로는 구현이 어렵기에 원곡을 어떻게 정교하게 재현했는지, 나아가 컴퓨터 음악의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어떤 고민과 접근을 하였는지 포함해, 이 작업 전반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Q. 이번 작품을 MIDI로 구현하게 된 계기와, 수많은 클래식 곡 중에서도 특히 연주가 어렵기로 유명한 <봄의 제전>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사실 이 작업은 처음부터 *관현악법(orchestration) 연구를 위한 시도에서 시작됐습니다. <봄의 제전>은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곡이었고, 현대적인 관현악법을 연구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샘플러(sampler)를 이용해 어쿠스틱 악기의 소리를 디지털로 재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극한까지 구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존하는 영국 Glasshouse 공연장을 가상으로 모델링하고, 그 공간에서 디지털 오케스트라를 실연하는 것처럼 완성해보자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 목표였습니다.

 

*관현악법: 관현악법은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각 악기의 음색과 연주법, 조합(편성) 방식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작곡가의 의도를 표현하는 기술이다. 단순한 악기 배치가 아닌, 소리의 조화를 설계하는 이론적 토대이자 실질적 표현 방법이다.

**샘플러: 실제 악기 소리를 디지털로 기록하여 재현하는 장치

 

 

Q. 가상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실연하는 형태로 작업하는 것이 교수님께는 어떤 의미였나요?

 

A. 이 작업의 의미는 ‘실제 오케스트라보다 뛰어난 연주를 만들자’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를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환경(특히 인공지능)에서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입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은 인간의 요구와 결과물 사이가 단선적인 형태를 띄며 음악 제작에서도 인간 개입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더 주도적인 AI가 되기 위해서는 제작 과정 중간마다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과정을 분절하고 조정 가능한 구조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음악을 생산함에 있어 인공적으로 생산하는 과정의 여러 단계들을 발전시켜야 하며, 현재 기술수준에서 샘플러를 사용해 기존 악기를 사용한 연주를 생산, 재현하는 능력의 극한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Q. 총 세 개의 트랙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이셨던 파트가 있을까요?

 

A. 3번 트랙의 작업 과정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 트랙에서는 재현이라는 의미를 확장해보고자 했습니다. 단순히 샘플러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좁은 의미의 신시사이저와 기존 관현악단의 협연을 시도하는 형태로 구성했습니다. 일종의 transcription(편곡) 작업이자,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증강현실적 재현’일 것입니다. 다만 일정에 맞춰 완성도를 충분히 끌어올리지 못한 점은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현재 음원 발매 시스템은 이후 업데이트가 가능하기 때문에, 향후 완성도를 높여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Q. 이번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나 깊게 고민하신 지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A. 이번에 사용한 샘플러는 다양한 연주법(articulation)을 제공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도 연주에 가장 적절한 아티큘레이션을 선택하고 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실제 악기보다 더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지털과 인간의 감각이 만나는 접점을 얼마나 세밀하게 설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이번 미디 작업에서 어떤 DAW(Digital Audio Workstation)와 Plug-in, 소프트웨어 악기를 사용하셨나요?

 

A. 당연히 Logic Pro입니다. 이러한 작업이 가능한 DAW는 Logic과 Cubase 정도일 것입니다. 이 중에 Logic이 좀 더 MIDI 프로그래밍 기능이 우월하다고 판단하며, 내게 익숙한 면도 사용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크레딧에 언급했듯이 VSL(Vienna Symphonic Library)의 제품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소프트웨어 악기는 현재 시점으로는 단종과정에 들어간 (2024년 10월에 단종 과정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 Vienna Instrument를 사용했고, Reverb도 VSL의 MIR Pro 3D을 사용했습니다.

 

 

Q. 이번 작업에 대략 몇 개의 트랙이 사용 되었는지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A. 100개 이상의 트랙을 사용했습니다. 실제 사용하고 있는 악기의 수는 그 이하지만 악기 연주법 (예를 들어 약음기를 사용하는 경우) 그리고 효율적인 재현을 위해 한 악기를 두 개 이상의 트랙으로 나눠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업기간은 대략 10개월 정도인데 그 시간에 이 작업만 전념한 것은 아니고 여유 시간에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예상보다 긴 시간이 소요 되었습니다.

 

 

Q. MIDI 환경에서 작업하시며 느끼신 표현상의 한계나, 반대로 가능성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A. 표현상의 한계는 앞서 언급한 아티큘레이션의 제약이 가장 큽니다. 실제 악기의 미세한 뉘앙스까지 완벽하게 재현하기에는 기술적인 한계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MIDI는 실제 연주로는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연주를 구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앞으로 발전된 AI분야에서는 연주를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작업물을 업로드 하여 세상에 내놨을 때의 심경이 어떠셨나요?


A. 연주를 MIDI와 샘플러를 비롯한 전자악기를 사용하여 재현하는 작업에 많은 실력있는 음악가들이 참여하여 작업 성과물이 축적되고, 이를 바탕으로 이러한 재현 방법이 체계화되어 이 방법론을 사용한 AI 음악 생산 방식이 발전함으로써 보다 인간적이고 소통가능한 AI 음악 생산 체계가 성립할 수 있는 미약한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신시사이저와 기존 악기 간의 다양한 방식의 결합이라는 음악적 의미로 평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이 작품은 기존 MIDI 기술로만 구현하기엔 큰 실험적인 모험 정신이 필요한 작업이다. 클래식 음악의 디테일한 공연장의 울림부터 샘플러만을 이용한 일반 관현악법에서 보기 어려운 조합의 연주법까지,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을 보인 것이 특징이다. 이는 디지털과 인간 사이의 점접을 조절하며 가상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재연한 것으로 도전적이고 의미 있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현시대 AI의 공장형 음악 생성에 대한 하나의 반문을 예술적으로 던질 수 있을 듯하다.

 

MIDI 라는 도구는 단순한 ‘컴퓨터 음악 제작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악기에 대한 이해와 섬세한 조율을 요구하기에 현대의 새로운 ‘악기’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전자음악 또한 인간의 감각과 기술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화시켜 진정한 예술적 결과물로 완성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MIDI 프로그래밍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개입 속에서 오히려 ‘불가능한 음악’을 선보일 수 있다는 통찰을 제공한다.


앞으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인간의 섬세한 개입을 기반으로, 예술적 가치를 더욱 깊이 있게 재현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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