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소설의 주인공들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에마’ 등 제인 오스틴의 고전 로맨스 속 인물들은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논리적으로 움직인다. 이들의 행동 이면에는 어떤 선호, 선택, 그리고 전략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게임이론가, 제인 오스틴’은 이 흥미로운 질문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자 마이클 S. 최는 오스틴 소설 속 인물들의 선택을 ‘게임이론’이라는 렌즈로 분석하며, 200년 전 작가가 얼마나 정교하게 인간관계를 그려냈는지를 파헤친다.
오스틴의 소설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그 안에는 연인들 사이에 주고받는 밀당, 사회적 위신과 계급 간 격차를 넘어서고, 집안 어른의 반대를 둘러싼 연인들 사이의 고도의 전략과 협력이 숨어 있다.
- 출판사 '후마니타스' 제공
사랑과 계급, 명예와 권력 등에 둘러싸인 오스틴 소설의 주인공들. 오스틴은 단순한 연인관계의 감정적 이야기가 아닌, 당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어떻게 상호작용 해 가는지를 섬세하게 그리는 재주가 뛰어나다. 이 책은 고전문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가 오스틴 소설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풀어낸다.
'게임이론'이란?
‘게임이론가, 제인 오스틴’은 오스틴의 문학을 사랑했던 독자들에게는 자신이 왜 그 소설에 끌렸는지를 분석적으로 되짚을 기회를 주고, 오스틴을 잘 몰랐던 독자에겐 작품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프레임을 제공한다. 특히 책의 초반부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게임이론’의 기초를 이해하면, 오스틴의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분석할 수 있다.
우선 ‘게임이론’이란 간단히 말해 여러 이해관계자가 결정을 내리는 ‘전략적 상황’에 대한 분석 이론이다. 게임 상황이라는 타자 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각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와 선택이 이루어진다. 이때 이 목적은 ‘보수 극대화’, 즉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전략적 사고’는 오스틴이 강조하는 ‘통찰력’에 해당한다. 즉, ‘어떤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고려한다는 것’이다. (본문 p.13) 나의 선택과 상대방의 선택이 보수라는 결과에 서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 사고에서는 타인의 선호와 선택을 읽을 줄 아는 역량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게임이론에서는 개인의 ‘선호’와 ‘선택’이 핵심 개념이다. 개인은 여러 선택지 중 자신의 선호 체계에 따라 보수가 더 크다고 판단되는 쪽을 선택하고, 이는 행동으로 이어진다.
* 게임이론이란?
→ 여러 이해관계자가 결정을 내리는 '전략적 상황'에 대한 분석 이론
* 핵심 개념
- '선호(Preference)' : 어떤 결과를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개인의 기준
- '보수(Payoff)' : 선택의 결과로 얻게 되는 이익(선호를 '수치화'한 것)
- '전략(Strategy)' :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의 규칙이나 계획
오스틴의 소설에는 이러한 전략적 사고에 능한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이 등장한다. 대개 그의 작품 속 여주인공들은 상당한 전략적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리며 전략적 사고 능력을 키워간다.
여기서 ‘전략적 사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기심’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오스틴 역시 작품 속에서 두 개념을 구분한다. 예컨대 작품 ‘이성과 감성’의 패니 대시우드는 루시 스틸과의 관계를 이용해 엘리너와 동생 에드워드를 떼어놓으려 한다. (본문 p.267) 이처럼 이기심은 있지만, 전략적 사고 능력이 부족한 캐릭터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사고란 도덕적 기준이나 의도와는 분리된 개념이다.
▲ '이성과 감성' 스틸컷
이렇게 자칫 어려울 수 있는 게임이론의 기초를, 저자는 책의 1장부터 4장에 거쳐 다양한 설화와 오스틴 소설의 사례로 설명한다. 5장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오스틴의 문학 작품을 게임이론으로 면밀히 분석하고, 오스틴의 의도와 혁신을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 사고와 구별되거나 반대되는 개념을 정의하며, 오스틴 소설을 바탕으로 하나의 이론을 정리해 나간다.
'오만과 편견' 속 인물들
책의 초반부에서 게임이론의 기초 개념을 정립하면, ‘오만과 편견’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오스틴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의 두 주인공은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이미 상당한 전략적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모든 상황을 완전히 이성적으로 처신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전략적 사고에 능한 인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엘리자베스는 종종 감정적 변화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자신이 처한 상황과 타인의 생각을 빠르게 파악한다. 즉, ‘전략적 사고’란 감정의 부재 상태인 이성적 상태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 두 번째로 흥미로운 지점은, 게임이론이 ‘약자들의 무기’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저자는 특히 사회적으로 피억압 집단에 속해있는 경우, 전략사고의 중요도가 높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게임이론은 특히 종속 집단들, 피억압 집단들 사이에서 발전한다. 이들의 삶은 특정 상황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전략적 선택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중략) 지배층은 이들만큼 게임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엔,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 '게임이론가, 제인 오스틴' p.15
기존에는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 주로 인물들의 성격 차이나 경제적 배경의 격차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엘리자베스가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 통찰에 능한 건 사실이지만 한발 더 나아가서,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게임이론의 관점에서도 바라볼 수 있다.
당대에는 ‘한정 상속’이라는 제도로 인해, 딸만 있는 베넷 가의 재산이 모조리 사촌 콜린스에게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공교롭게도 엘리자베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부잣집 남자 다아시와 이어지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이러한 관계의 구조 속에서 보면 피억압 집단에 가깝다. 즉, 전략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선택에 다아시보다 더 큰 리스크를 지는 구조이다.
따라서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에게 ‘편견’을 갖는 건 사실이나, 이 ‘편견’의 기원이 ‘전략적 사고’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엘리자베스를 둘러싼 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 보인다. 다만 저자가 말한 대로 엘리자베스는 원체 ‘전략적 사고’ 능력이 뛰어나다 보니, 약간의 굴곡은 있어도 나름 자신의 방법으로 상황을 헤쳐 나간다.
▲ '오만과 편견' 스틸컷
엘리자베스의 뛰어난 전략적 사고 능력은 그의 언니 제인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상황을 빠르게 읽고 전략을 수정할 줄 아는 인물이다. 반면 언니 제인은 타인의 행동을 그다지 의심하지 않는다. 이 대조는 전략적 사고의 유무가 각 캐릭터의 선택과 행동의 차이를 만드는지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오만과 편견’은 전략적 사고의 서막에 불과하다. 이 책에는 ‘오만과 편견’ 외에도 흥미로운 인간군상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에마’의 주인공 에마 우드하우스는 전략적 사고 능력이 지나치게 발달한 인물로, 그로 인해 오히려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인다. 거기에 전략적 사고가 전혀 불가능한, 바꿔 말하면 전략적 사고를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무개념’한 인물들에 대한 해석도 들어있다. 제인 오스틴의 타 작품들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보면, '오만과 편견'의 인간 군상과 인물들의 전략적 사고 방식은 오히려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다.
더불어 이 책은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을 친절히 설명한다. 책의 초반부는 다양한 도표와 설화적 사례를 통해 게임이론의 개념을 독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특히 5장에서는 6개 작품의 대략적인 줄거리와 캐릭터 특징을 설명하며, 오스틴의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문학, 깊이 있는 연구의 필요성
‘게임이론가, 제인 오스틴’은 문학이 단순한 감성의 산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문학은 인간의 심리와 관계, 욕망의 구조를 가장 밀도 있게 다뤄온 분야이고, ‘게임이론’은 그 복잡한 관계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시도는 개인과 사회가 더욱 복잡해진 지금, 게임이론이라는 분석 틀을 통해 고전 문학 속 인간 군상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한다. 문학은 더 이상 특정 학문 안에서만 소비될 수 없다. 우리의 삶이 복잡해질수록, 문학 역시 학제적 접근을 통해 더 깊이 이해되어야 한다.
고전 문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시대적 배경은 다를지라도,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는 여전히 우리가 겪는 인간관계의 본질이 녹아 있다. 요즘 우리는 연애 예능을 보며 사랑 속에서 ‘전략’을 읽고, MBTI나 각종 심리 테스트를 통해 개인과 타인의 경향성을 분석한다. ‘전략’은 더 이상 경제학 교과서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관계 속에서 전략을 짜며 살아간다. 그런 점에서, 200년 전 로맨스 소설 속 인물들이 보여준 전략적 사고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게임이론가, 제인 오스틴’은 고전문학을 통해 인간관계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들여다보는 시도이자, 개인의 사고방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고전을 낯설게 읽고 싶다면, 혹은 연애와 관계의 본질을 색다른 관점에서 살펴보고 싶다면, 이 책은 지금 이 시기에 꼭 필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