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제인 오스틴의 설득

누굴 위한 설득인가?
글 입력 2022.07.21 22:4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220718_001814469.jpg

 
 
“죄송합니다. 당신 자리죠.” 앤은 바로 단호하게 부인하며 뒤로 물러섰지만, 그는 한사코 다시 앉기를 마다했다. 앤은 이런 표정과 말투는 더는 바라지 않았다. 그의 차가운 공손함, 과하게 격식 차린 우아함이야말로 최악이었다.
 

<설득> 중 108쪽

 

 

<설득(1817)>은 <오만과 편견(1813)>으로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주인공 앤 엘리엇이 설득(PERSUASION)하기 위해 걸린 8년의 시간이라 말하고 싶다.

 

설득은 출판사 윌북에서 첫사랑 컬렉션으로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함께 구성됐으며 올해 넷플릭스에서 7월 15일자로 영화가 공개됐다.

 

작가의 작품 중 영화와 소설로 접한 작품이 <오과 편견(1813)(2006, 키이라 나이틀리, 매튜 맥파든 주연)>이 유일해서 새 작품을 감상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이번에 나온 영화까지 하여 원작과 비교해 보고 싶었다. 또 깔끔하게 떨어지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준남작가의 차녀, 앤 엘리엇


 

주인공은 앤 엘리엇이다. 고전문학이 그러하듯 TMI가 난무한 오프닝에서 몇십 페이지가 지나야 찾을 수 있었다.

 

앤은 생각이 깊지만 존재감 없는 아가씨였다. 앤은 허영심 가득한 준남작 월터 엘리엇을 아버지로 두었으며 세 자매 중 차녀로, 자기애로 옹골찬 장녀 엘리자베스와 자기 연민에 빠진 투덜이 삼녀 메리 사이 중 유일하게 제정신을 유지한 자식이다.

 

불행하게도 생각의 깊이가 다르니 발언권의 영향이 없어 아버지와 언니에게 곧잘 무시당하는 안타까운 입장이다. 그런 앤을 유일하게 믿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레이디 러셀 부인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의 친구이자 아버지의 든든한 조언자이다. 어린 시절부터 앤의 진가를 알고 아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책과 시를 사랑하고, 연주에 조예가 깊은 앤은 사교 파티에서 주목받고 춤 신청을 받는 것보단 연주자로 피아노를 치는 것을 선호해 이목을 끄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기소개에 가문의 몇째라는 수식어가 더욱이 빠지지 않는다. 그 탓에 외모지상주의에 심취한 아버지와 자기애로 똘똘 뭉친 언니가 치여 아픈 동생을 간호하기 위하여 유서 깊은 켈린치 홀에서 시골 어퍼크로스로 떠난다. 그리고 8년 전 레이디 러셀의 설득으로 놓친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을 만난다.

 

십 대 후반의 앤 엘리엇은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약혼한다. 그러나 웬트워스는 당시 아무것도 없는 해군으로 신분도 고귀하지 않으니 허영심 많은 앤의 아버지, 월터 경의 눈에 찰리가 만무하며, 빛나는 눈을 가졌으나 거침없고 무모하니 레이디 러셀이 앤의 남편감으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약혼을 부정당하고 결국 레이디 러셀의 설득에 넘어간 어린 앤은 이십 대 후반이 되어, 감정의 물살이 파도처럼 밀려와 잠식되기 시작했다.

 

켈린치 홀에서 바스로 가족이 떠나기 시작하면서 하필 세입자가 해군 크러프트 제독이었고, 그의 부인이 프레더릭의 누이이기 때문이었다. 싫든 좋든 어떻게 한 번은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막냇동생 메리의 병간호 목적으로 기회 좋게 떠난 어퍼크로스에서 그를 만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후의 일을 누가 의심할 수 있을까? 두 젊은이가 결혼하기로 일단 마음을 먹으면,

가난하든, 무모하든, 서로에게 결국 정말 위안이 될 가망이 없다하더라도, 불굴의 의지로 어떠한 저항이라도 이겨내는 법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면 도덕상으로는 나쁠지 몰라도, 이것이 진실이라 생각한다.

 

<설득>중 372쪽

 

 

 

누굴 위한 설득인가?


 

주인공 앤은 차분하다. 관계를 대처할 줄 알며, 신분에 맞는 생각과 품위를 가졌고 이를 온화하게 표현할 줄 안다. 조곤조곤한 말씨와 깊은 생각으로 빚어진 눈동자의 깊이가 단지 아버지와 언니 엘리자베스의 눈에는 차지 않았을 뿐, 소설을 이끌어가는 앤은 비록 사교적인 인물은 아니나 누구와 있든 편안함을 제공한다.

 

생각이 깊은 앤은 당시 시대적 상황이 여자와 남자에게 각자 가해지는 차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는 왜 여자의 행복이 결혼으로 귀결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기 위해 가슴 아픈 첫사랑 이후로 만남을 더는 갖지 않았다.

 

반면에 웬트워스 대령은 부와 명예가 모자라 파혼당한 차별과 아픔을 딛고 금의환향한다. 그는 육지로 올라와 신부를 찾고자 한다. 그들의 행복은 과연 결혼인가? 소설 속 인물들은 성별을 가릴 것 없이 결혼에 대한 관습적이고 물질적인 편견으로부터 의문을 품으면서도 사로잡혀있다. 앤은 계속 자기 자신에게 질문한다. 과연 자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고 싶고, 그와 어떤 결말을 원하는가?

 

책의 제목이 <설득>이듯 이 소설은 관습에 동조하는 설득과 부당한 설득을 이겨내고자 하는 앤의 주체성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녀는 충돌하는 생각 사이에서 재회한 웬트워스에게 그 과정을 앤의 방식대로 보여주고 풀어간다. 부와 명예를 획득하여 완벽한 신랑감으로 돌아온 그를 보며 앤은 호기심이 들기도 하고, 지난날 설득당한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프레더릭과의 관계를 시작부터 재정립한다. 스스로에 대한 설득의 끝이 보이면서 소설은 결말을 향한다.

 

여기서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과연 앤은 그와 다시 사랑에 빠질 것인가? 그렇다면 그와의 결혼이 부당한 설득에 굴복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겨낸 것인지, 그녀가 보낸 8년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무엇이 옳은지 아직도 모르겠다.


 

 

<설득>의 소설과 영화


 

영화 <설득>은 설득하는 앤의 내적 갈등을 전달하기 위해 제4의 벽을 뚫는 연출을 택했다. 관객에게 직접 해설하며 문학의 무게를 낮추고 대중에게 발랄하게 다가간다. 4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105분의 영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볍게 하지 않았나 싶다.

 

제인 오스틴의 ‘결혼’에 대한 시대적 고민이 투영된 앤 엘리엇의 무게를 그대로 살리고자 앤에게 집중된 서사가 아쉽게도 책이 표현하고자 하는 앤의 내적 갈등을 모두 담지 못했다. 영화 <오만과 편견>과 같은 분위기를 가졌으나 분위기가 더 밝다. 굳이 결을 찾자면, 같은 OTT 서비스인 브리저튼과 가까운 느낌? 참, 메리 엘리엇의 배우가 찰떡같이 역할을 소화하더라.

 

고전 문학의 매력을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무조건 소설을 추천한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았는데 앤이 자신과의 설득 이후 찾아낸 완벽한 행복을 보며 다시 한번 행복에 대한 나의 기준을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영화는 사랑의 달콤함을, 그리고 소설은 사랑의 이면이 핵심인데, 소설은 시대에 떠밀려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택한 앤 엘리엇의 판단과 결정의 과정을 텍스트로 접하고 독자가 곱씹어 보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덤으로 무례함에 신중히 대처하는 앤의 노련함을 엿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소설 <설득>은 관습에 맞서는 개개인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한 사람의 사랑을 소재로 삼은 윌북의 첫사랑 컬렉션 중 하나다.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 중의 한 부분으로 사랑의 실패가 결과가 아닌 인생의 그래프 중 한 지점임을 느낄 수 있다.

 

 


20220626175107_xxfnpetc.jpg

 


[이서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