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크기변환]포스터.jpg

 

 

알래스카로 훌쩍 떠난 엄마의 빈집에 오래도록 소식 없던 두 형제가 오랜만에 마주 앉아 있다. 나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은 언제나 궁금하고 때로는 부렵기 마련이듯, 반듯한 삶을 살아온 '오스틴'과 사막을 떠돌아다닌 '리'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과 호기심이 동시에 흐른다. 그리고 이 작은 부엌에서 시작된 재회는 서로가 가진 삶의 결핍과 욕망을 끌어올리며 어느새 파국을 향해 파도처럼 밀려가기 시작한다.

 

 


부엌에 스며든 사막의 그림자


 

연극 <트루웨스트>는 미국 현대극의 대표 작가 샘 셰퍼드가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충돌을 부엌이라는 일상적 공간 안에서 펼쳐 보인다.


어머니의 집을 배경으로 정제된 삶을 살아온 동생 ‘오스틴’과 떠돌이 생활을 이어온 형 ‘리’가 우연한 재회를 통해 서로의 삶을 침범하고 뒤흔들며 두 인물의 정체성은 점차 뒤바뀌고 경계는 흐려진다.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된 균열은 타자기와 토스터 같은 일상의 오브제들을 파괴하는 격렬한 충돌로 번지고 결국 ‘정상적인 삶’이라는 믿음 자체가 얼마나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품은 두 형제가 어머니의 집이라는 일상적 공간 안에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고 정체성과 역할이 뒤섞여 버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초반의 부엌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안정성을 상징하지만 ‘리’가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 공간은 점차 긴장과 불안으로 뒤틀린다. 문명적이고 안정적인 인물로 보이던 ‘오스틴’은 서서히 통제를 잃어 가면서 토스터와 타자기를 난폭하게 다루고 ‘리’는 오히려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듯 작가적 행위를 흉내 내며 두 인물의 성향이 교차한다.

 

 

 

황야와 부엌이 맞닿는 지점에서


 

이러한 역전의 과정은 작품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사막과 서부적 이미지가 겹쳐 보이게 만들어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마치 광활한 황야처럼 느껴지는 분위기를 만든다. 무대에는 이 대비를 강화하기 위해 ‘가정’과 ‘사막적 감각’을 병치하여 나타내었고 일상적 사물들이 점차 흩어지고 파괴되면서 공간 그 자체가 정체성 붕괴의 상징으로 확장된다.

 

특히 후반부 형제가 술에 취해 부엌 전체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장면은 가족이라는 가장 안전해야 할 단위가 얼마나 쉽게 균열될 수 있는지를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코미디와 비극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는데 가벼운 농담이나 사소한 몸짓에서 시작된 갈등이 곧 폭력과 파국으로 이어지는 방식은 “웃음 뒤에 도사린 불안함”으로 자주 언급되며 작품의 긴장감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

 

결국 <트루웨스트>의 무대는 일상이 서서히 잠식되고 가정적 질서가 해체되며 형제라는 관계의 본질이 드러나는 장면들로 이어지며 이는 미국적 신화의 잔상과 현대적 가족 서사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강력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크기변환]트웨2.jpg

 

 

 

식빵과 욕망의 폭주


 

오스틴이 술에 취해 동네의 집들을 돌며 토스터를 훔쳐 오는 후반부 장면은 이 연극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다. 토스터는 원래 편리한 현대의 도구를 상징했으나 훔친 물건이 되는 순간 억눌러 있던 욕망과 파괴적 충동이 표면화되는 징표가 된다.

 

오스틴은 이 토스터들을 이용해 수많은 식빵을 쉴 새 없이 구워내고 부엌을 온통 식빵 조각으로 뒤덮는다. 이는 지적인 창조 에너지를 소비하는 오스틴이 비정상적이고 무의미한 생산성을 반복하는 '빵 굽는 기계'로 전락했음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줄지어 놓인 토스터와 산처럼 쌓인 식빵은 오스틴이 더 이상 기존의 가치 체계에 머물 수 없음을 선언하는 문턱의 이미지로 작동한다. 특히 마지막에 '리'가 '오스틴'이 쌓아 올린 식빵을 모두 던져버리는 장면은 그 이미지가 기존 문명적 틀에서부터 부서지는 순간임을 상징한다. 식빵을 체계적으로 쌓아 올리던 행위가 한순간 뒤집혀 버림으로써 '가치'라고 믿었던 아이콘들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강조한다.



[크기변환]트웨1.jpg

 

 

 

시대를 넘어 유효한 이야기


 

1980년대 미국이라는 시간적·문화적 배경은 우리에게 다소 낯설 수 있지만 <트루웨스트>가 드러내는 균열과 충돌의 본질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까지 유효하게 작동한다. 성공과 실패, 가족이라는 안전망과 그 내부에서 발생하는 폭력까지 셰퍼드가 포착한 인간의 본질은 시대나 국가의 경계를 넘어 반복되는 보편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언제든 통제 밖으로 흐를 수 있는 욕망과 충동을 품은 채 살아가며 관계와 환경에 따라 정체성이 뒤바뀌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1980년대 미국의 형제 이야기는 현재의 우리에게 불편한 성찰을 요구한다.

 

작품은 결국 시대를 초월해 인간 내면의 균열을 비추는 거울로 남으며 우리도 어쩌면 두 형제가 헤매던 그 경계 위를 매일 걸어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파국과 광란이 뒤섞인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정겹고 따뜻한 순간들이 스며드는 이유는 서로를 닮고 싶어하면서도 넘지 못하는 간극을 품은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 안에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press.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