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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이 음악들, 사실 그림에서 시작됐어요 [문화 전반]

명화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음악들

by 황아영 에디터
2025.07.21 18:42

 

 

미술과 음악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대화를 이어왔다.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의 콘서트를 감상한 뒤 음악의 추상적 본질을 화폭에 담았고, 마티스는 바흐의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색채의 리듬을 그렸다. 반대로 보쉬의 회화 <쾌락의 정원>은 Cradle of Filth의 곡 ‘Right Wing of the Garden Triptych’와 레드벨벳의 ‘Feel My Rhythm’ 뮤직비디오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본 글은 미술작품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음악을 알아보고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탐색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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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nold Bocklin(1827-1901), Isle of the Dead, Painting, 150×80cm, 1883

 

 

 

죽음을 그린 회화와 이를 승화시킨 음악


 

Arnold Böcklin, Isle of the Dead, 1883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아놀드 뵈클린의 이 마카브르(Macabre) 작품은 채도가 낮고 빛의 대비가 거의 없어 황량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늘을 가득 메운 먹구름과 바위틈 사이에 있는 핏빛 식물은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만든다. 중앙에는 밝은 암벽과 대비를 이루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화면 너머까지 무한히 이어지는 공간감을 형성해, 관객에게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암묵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암시하는 존재는 흰 수의를 입은 인물이다. 그는 관을 배에 실은 채 섬으로 향하고 있는데, 장례를 집전하는 인물로 보이지만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다. 이 장면을 마주한 관객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관 속 인물은 누구이며, 왜 죽음의 섬으로 향하고 있는가? 그는 어떤 죄를 지었는가, 혹은 부당한 죽음을 맞은 것인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이 섬은 단순한 안식처가 아니라, 죄와 죽음의 형벌이 내려지는 공간으로 읽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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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i Rachmaninoff,Isle of the Dead, Op.29 앨범 커버, Russian National Orchestra

 

 

Sergei Rachmaninoff, Isle of the Dead, Op.29, 1909

 

러시아의 작곡가 라흐마니노프는 위 작품을 감상한 뒤, 1909년 같은 제목의 교향시 ‘Isle of the Dead, Op. 29’를 발표했다. 그는 그림 속 인물을 하프의 선율로, 잔잔한 물결을 첼로의 낮은음으로, 그리고 배의 움직임을 플루트의 소리로 표현했다. 곡의 전반부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경직된 리듬이 이어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플루트가 중심이 되어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정조를 자아낸다. 이러한 전개는 마치 죽음을 향해 나아가던 영혼이 끝내 승화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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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 Kahlo(1907-1954), What the Water Gave Me, Oil on canvas, 91×70.5cm, 1938

 

 

 

내면을 감도는 물의 감각적 연결


 

Frida Kahlo, What the Water Gave Me, 1938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로, 이 작품은 욕조에 누운 자신의 다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내면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칼로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이후 수차례의 수술을 견디며 육체적 고통과 함께 살아야 했다.

 

화면 전체를 채운 욕조의 물은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과 무의식이 흐르는 공간이자, 아늑하고 안전한 내면의 피난처이다. 칼로는 조용한 물 위에 자신의 감정과 기억, 고통과 열망을 천천히 떠올린다. 물 위에는 해골, 불타는 화산, 피 흘리는 조개껍질 등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이 떠다니며 무의식 깊은 곳의 고통과 공포를 은유한다. 오른쪽 다리에는 철사에 긁힌 듯 피가 흐르고, 깨진 조개껍질에서는 물이 새어 나온다. 욕조 한편, 화산 옆에 놓인 해골은 작가와 같은 자세로 누워 있으며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듯한 불안과 두려움을 드러낸다. 나무 위의 새는 하늘을 응시한 채 정적인 자세로 생의 기운보다는 침묵과 정지를 상징한다.

 

화면 중앙, 물에 반쯤 잠긴 여성은 목에 줄이 감겨 생명력 없는 인형처럼 보이지만, 그 줄을 따라가 보면 곡예를 하듯 줄을 타는 발레리나와 곤충이 등장한다. 이는 고통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칼로의 끈질긴 의지를 상징한다. 붉은 페디큐어와 격렬하게 분출하는 화산도 그녀 내면 깊은 곳의 열정과 살고자 하는 욕망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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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the Water Gave Me 뮤직비디오 캡처 (사진=florencemachine 유튜브)

 

 

Florence + the Machine, What the Water Gave Me, 2011

 

이 곡을 만든 플로렌스는 “이 노래는 물을 위한 노래이며, 모든 형태와 모든 신체에 존재하는 물에 관한 것”이라며,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가사 속 “To where the water was / That's what the water gave me … Lay me down / Be the overflow”라는 구절은 물속에 잠긴 신체와 감정을 상징하며, 음향효과 또한 물속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뮤직비디오에서는 하늘빛 배경 위에 반사된 듯한 영상 효과를 활용해 원작을 재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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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nshō Shūbun(1414-1463), Ten Oxherding Pictures, ten circular paintings mounted as a handscroll, 32×181.5cm, late fifteenth century

 

 


동양 여백의 미를 캐나다 감성으로


 

Tenshō Shūbun, Ten Oxherding Pictures, 15세기

 

한국에서 ‘십우도’로 알려진 이 작품은,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선 스님의 여정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열 가지 단계로 비유한 15세기 일본의 회화이다. 이야기는 결국 빈손으로 시장에 돌아가 중생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이는 진정한 깨달음이 세속과 단절이 아닌 세상과 다시 만나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동양화의 형식미를 따르면서도 여백의 미가 유독 두드러지는데, 특히 여덟 번째 그림에서 절정에 이른다. 화면에는 단지 점처럼 작은 발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간결함은 오히려 존재와 무(無)의 철학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 장면은 결국 사람과 소가 서로를 잊는 순간이 곧 깨달음이라는 동양적 사유를 담겨있다.

 

초반부의 그림들에서는 잡히지 않으려는 소와 이를 쫓는 스님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서사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마지막에 이르러 스님은 소를 놓치고 동네로 돌아오지만, 이는 단순히 깨달음의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 많은 해설에서는 스님이 중생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을 ‘깨달음을 완성한 자의 회귀’로 해석한다. 그러나 표정이나 서사 구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시선에 따라 그 결말은 행복일 수도, 쓸쓸함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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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ad of the Absent Mare 뮤직비디오 (사진=Valestap 유튜브 캡쳐)

 

 

Leonard Cohen, Ballad of the Absent Mare, 1979

 

Leonard는 십우도를 감상한 뒤 소가 마을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마치 카우보이가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의 곡 ‘Ballad of the Absent Mare’에는 “Who went galloping past / Or she'll make a break / For the high plateau … And they're gone like the smoke”와 같은 가사가 등장하는데, 이는 달리는 말의 형상을 떠올리게 한다.

 

뮤직비디오 또한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드넓은 하늘과 초원을 배경으로, 말을 탄 인물이 등장해 원작의 정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And he leans on her neck, And he whispers low, Whither thou goest I will go”라는 가사에서는 말 위에 기대어 속삭이는 장면이 사랑하는 여성을 말에, 그리고 자신을 그 뒤를 따르는 존재로 투영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스님과 소의 관계를 연상케 하며,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과 갈망, 그리고 결국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의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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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Desiderio(1955-), Sleep, oil on canvas, 52 x 252 inches, 2008

 

 

 

명작에서 탄생한 명곡,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


 

명작을 영감으로 탄생한 음악은 아름답고 감동적인 명곡을 낳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빈센트의 작품 ‘Sleep’과 이를 차용한 칸예 웨스트의 뮤직비디오 ‘Famous’가 대표적인 사례다.


Vincent Desiderio, Sleep, 2008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빈센트의 ‘Sleep’은 나체의 인물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가로로 길게 펼쳐진 화면 구성은 잭슨 폴록의 추상화에 대한 오마주이다. 작가는 암에 걸려 불면증으로 고생했는데, 이 작품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잠을 자는 수면에 대한 이상적인 갈망을 그렸다고 추측된다.

 

이불을 대충 덮은 채 햇살 아래 잠든 인물들의 모습에서는 에로틱함보다 포근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흐른다. 섬세한 붓질로 살결과 천의 질감을 부드럽게 표현했다. 나체인 남녀가 등장하지만, 성적 대상화보다는 자연스럽고 평등한 인간 존재로서의 수면을 그려낸다.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인물들이 동일한 크기로,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으로 배치된 점 역시 차별 없는 평등성과 조화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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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amous 뮤직비디오 캡처 (사진=Kanye West 유튜브)

 

 

Kanye West, Famous(M/V), 2016

 

칸예 웨스트는 ’Sleep’의 구성을 자신의 뮤직비디오 ’Famous’에 차용해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영상은 원작의 고요하고 은유적인 분위기 대신, 정치적이고 에로틱한 패러디로 재해석되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테일러 스위프트, 엠버 로즈, 킴 카다시안 등 자신의 주변 인물 11명의 밀랍 인형을 나체로 등장시켜 하나의 침대 위에 나란히 눕힌 장면을 연출했다. 이 장면은 재매개 전략이지만, 그 방식이 조롱과 불쾌감을 유발할 만큼 도발적이었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작품의 원작자인 빈센트는 칸예를 “진정한 예술가”라고 평하며 그의 실험적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특히 테일러 스위프트를 비롯한 여성 인물들을 무단으로 사용한 점에 대해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원작의 의미를 확장하기보다는, 강도 높은 조롱의 수단으로 활용된 점에서 예술적 차용에 대한 윤리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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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olas Poussin(1594-1665), Narcissus and Echo, Oil on canvas, 72×96.5cm, 1650

 

 

 

신화적 모티프, 자아를 향한 다이브


 

예술은 신화라는 오래된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소환하며, 시각과 청각을 넘나드는 새로운 감상의 장을 연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한 점의 회화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IVE의 ‘LOVE DIVE’는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 이야기에서 출발해, 시각예술과 음악이 어떻게 교차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사례다.


Nicolas Poussin, Narcissus and Echo, 1650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은 나르키소스와 에코를 통해 신화 속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끝없이 바라보는 나르키소스,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에코의 슬픔이 화면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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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LOVE DIVE 콘셉트 포토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우)LOVE DIVE 앨범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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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 DIVE 안무

 

 

아이브, LOVE DIVE, 2022

 

아이브의 ‘LOVE DIVE’는 앨범은 나르키소스 신화와 비너스의 화살을 모티브로 구성해, 신화적 로망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젝트다. 큐피드의 화살이 멤버들에게 향했다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는 듯한 뮤직비디오의 설정은 자신에게 빠져드는 나르키소스를 연상케 한다. “Narcissistic, my god, I love it / 서로를 비춘 밤 / 아름다운 까만 눈빛 더 빠져 깊이 / 넌 내게로, 난 네게로 / 숨 참고 LOVE DIVE”라는 가사처럼, 이 곡은 자아와 자아 사이의 끌림, 그리고 그 사랑에 몸을 던지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안무에서 멤버 둘이 거울처럼 같은 동작을 하며 마주 보는 장면, 푸른빛 콘셉트 포토와 수면을 연상케 하는 배경은 모두 나르키소스 신화를 시각적으로 변형하고 차용한 요소다. 앨범 커버 또한 주목할 만하다. 'LOVE'와 'DIVE'를 단어 단위로 나눈 것이 아닌, 'LOVED'와 'IVE'로 색을 구분하여 '나를 사랑하는 나'를 강조했다.

 

 

 

경계를 넘어 감각을 잇는 예술


 

시각 예술이 청각 예술로 확장되고, 한 장면이 하나의 선율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감각의 통합을 일으키며 새로운 해석의 장을 연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매체를 넘어 공감각적으로 연결되는 이들 예술은 ‘예술에 경계란 없다’는 명제를 더욱 분명히 한다. 앞으로도 더욱 다양한 사례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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