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계에 나를 맡겼다 [문화 전반]

진짜 나의 실체는 어디에
글 입력 2022.04.2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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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에 나를 맡겼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을 듣고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계에 나를 맡겼다라... 고민해보니 정말 나를 그 조그만 핸드폰 하나에 욱여넣은 것 같은 기분이 문득 들었다. 내 모든 인간관계, 그들과의 소통, 나의 사진, 나의 추억들, 평소 생각들이 적힌 메모들, 나의 모든 것이 그 속에 담겨 있다.

 

폰을 잃어버리는 것은 마치 나를 잃는 것 같아 가장 두렵다. 그 안에 내가 있는 게 아니라면, 진짜 내 실체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핸드폰이 없을 때 나의 흔적들은 어디 있는 걸까.

 

자연스럽게 The 1975의 The man who married a robot 이라는 곡이 생각났다.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고찰을 담고 있는 A Brief Inquiry Into Online Realationships라는 앨범의 수록곡이다.

 

*

 

This is a story about a lonely, lonely man

He lived in a lonely house, on a lonely street

In a lonely part of the world 

이 이야기는 아주, 아주 외로운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외로운 집, 외로운 거리, 세상의 외로운 곳에 살았다.

 

but of course

He had the internet, the internet, as you know

Was his friend, you could say his best friend

그러나, 당연하게도,

당신이 알다시피, 그에게는 인터넷이 있었다.

그의 친구,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할 수 있었다.

 

Wherever the man went he took his friend

The man and the internet went everywhere together

남자가 가는 곳 어디든 그의 친구를 데려갔고

남자와 인터넷은 모든 곳을 함께 다녔다.

 

When the man got sad

His friend had so many clever ways to make him feel better

남자가 슬퍼할 때면

그의 친구는 그의 기분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는 많은 방법들을 가지고 있었다.

 

And he would always always agree with him

This one was the man's favorite and it made him very happy

그리고 인터넷은 항상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고, 남자를 아주 행복하게 만들었다.

 

The man trusted his friend so much

남자는 그의 친구를 매우 많이 믿었다.

 

And then he died in his lonely house, on the lonely street

In that lonely part of the world

그리고 그는 외로운 집, 외로운 거리, 세상의 외로운 곳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You can go on his Facebook

그의 페이스북을 방문해 보라.

 

- The man who married a robot

 

*

 

가사 중 가장 소름 돋았던 부분은 인터넷이 항상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준다는 부분이었다.

 

정말로, 기계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며 항상 나에게 맞는 걸 찾아주고 모든 부분을 나에게 맞춰준다.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왔지만, 실제 사람들과 맺는 관계들을 생각해보면 이 지점들이 참 무섭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작년에 인스타 계정을 삭제한 후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은 지 1년하고도 한 달이 좀 넘었다. 원래는 인스타를 굉장히 즐겨 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친구와 놀러간 곳에서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어떤 사진을 올릴지 고민하다가 갑자기 회의감과 무력감이 들었다.

 

내가 정말 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이렇게 사진을 몇십 장씩 찍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인스타그램에 예쁜 사진을 올리고 싶어서 그러는 건지 헷갈렸다. 내가 그저 남들에게 잘 살고 있음을 보이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닌지.

 

처음에는 굉장히 걱정하면서 비활성화 버튼을 눌렀었지만, 생각보다 그리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며 살고 있다. 남과 비교하며 우울해하는 시간도 줄었고, 사람들과 더욱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핸드폰을 없애고 과거의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진짜 나의 실체를 기계 밖에서 찾기 위해 조금씩 노력 중이다. 스크린 타임 기능을 통해 폰 보는 시간을 줄이려 노력하고, 종이로 된 일기장에 매일 밤 생각들을 적고, 필름 카메라로 사진도 찍고, 사람들을 실제로 많이 만나려 하고 있다.

 

기계에 내 전부를 주지 말고, 가끔씩은 기계에서 벗어나 진짜 내 실체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최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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