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전쟁과 예술의 관계 [문화 전반]

글 입력 2022.03.0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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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다. 봄을 굉장히 오랜만에 맞이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학은 개강을 맞이했고 아직은 서늘한 강의실에서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새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잔디밭에는 청춘들이 둘러앉곤 한다. 봄바람은 사람을 들뜨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누리는 평화에 감사하는 한편, 어딘가에선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는 생각에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를 검색했더니 유엔난민기구에서 긴급구호를 찾을 수 있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대한 후원을 모집하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지구촌은 사실 평화롭지 않았다. 지금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을 뿐이다.


문화예술 애호가로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생각이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그간 예술가들은 전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왔는가를 살펴보았다.

 

 


전쟁과 회화



화폭에 전쟁을 담은 화가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은 고야와 마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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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1808 5월 3일의 학살>(1814) 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 이전까지는 단순히 전쟁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혹은 주로 전쟁에서 용감히 싸운 군인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회화가 많았다면, 고야는 그러한 전쟁 회화의 판도를 바꾸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양팔을 들고 있는 한 남자이다. 그림의 왼편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쌓여있고, 아마도 같은 운명이 될 한 남자는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이로써 고야는 전쟁에서 싸운 영웅이 아닌 전쟁의 피해자인 민간인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전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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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8년 작인 마네의 작품 <멕시코 황제 막시밀리안의 처형>은 한층 더 사실적인 모습으로 처형의 장면을 담았다. 마네는 처형을 행하는 군인들이 입은 프랑스 군복, 그리고 그들의 덤덤한 표정을 통해 프랑스군을 고발하고 마지막까지 당당한 모습이었던 막시밀리안의 죽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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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고야와 마네가 있었다면, 20세기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당시에는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피카소는 1937년, 나치군이 조국 스페인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가한 폭격에 분노하여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게르니카>에는 폭격을 가하는 군인의 모습이 없다.  학살당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혼란만이 그림 가득 채워져 있다. 제목을 보기 전까지는 게르니카라는 것을 특정할 수도 없는 이 그림은 전쟁에 의한 보편적인 비극과 참상을 전한다. 이것이 그가 조국을 위하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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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의 모든 작품과 행보는 우리 사회의 기존질서와 허례허식을 비판하고 풍자한다. 그 자체가 법을 어기는 행위인 그라피티는 그의 가치관을 담기에 가장 적절한 매체다. 권력과 그에 의한 폭력을 반대하는 뱅크시는 전쟁 또한 강하게 비판하며, 그의 많은 작품들이 반전(反戰)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질서와 명령을 어기는 건 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질서와 명령에 따라 폭탄을 던지고, 사람들을 죽이는게 진짜 범죄다."

 

 

위의 작품은 전쟁에 의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건너오지 못하도록 세운 팔레스타인 장벽에 그가 그린 그라피티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방탄조끼를 입은채로 겨눠지고 있는 모습은 망가진 평화를 은유한다.

 

 

 

베트남전이 미국의 예술에 미친 영향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무려 20년간 이어진 베트남전은 미국에 모든 방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고, 이는 예술도 예외는 아니었다.

 

1960-70년대, 미국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하고 있었고, 이는 그들의 정체성을 위협하였으며, 전쟁 사진의 보도를 통해 미군의 도덕성 또한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한편 미국 사회 내에서는 반전 운동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격변하는 시대, 당시 미국에서는 색면파 회화, 팝 아트, 미니멀 아트, 개념 미술, 퍼포먼스, 포토 리얼리즘,  옵아트 같은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예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1960년대 미국 예술가들은 작품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부 예술가는 작품에 특정한 메시지를 담는 것을 꺼렸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사회적 위기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을 느꼈다.


일례로 추상 미술가인 애드 라인하르트는 주로 반전 포스터나 엽서 작업을 통해 자신의 기존 예술작업은 고수하며 전쟁에 대한 반대의 입장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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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층 더 직설적으로 전쟁을 비판한 작가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못생긴 그림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내 작품들이 전쟁이 그러한 것만큼 추악하고 끔찍하기를 바랐다.”고 말한 주디스 번스타인은 폭력적이고 성적인 그라피티를 통해 전쟁을 비판했다.

 

연대를 통해 더욱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들도 있었다. ‘미술가와 작가 항의(Artists and writers protest, AWP)' 라 불린 뉴욕의 미술가 단체는 뉴욕타임즈에 “침묵을 끝내라”라는 제목의 광고 형태로 베트남과 도미니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비난하는 반전 성명서를 실었다. 1967년 열린 반전 문화제인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뿔난 예술주간>에는 여러 분야의 예술가 600여 명이 참여해 창작활동을 통해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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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너무나 쉽게 목숨을 잃는 장면들을 목격한 많은 예술가들이 몸에 대한 재정의와 신체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가졌으며, 전쟁을 일으키는 가부장적 세력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표하는 페미니즘 아트도 새로운 물결을 맞이하기도 했다.

 

 


6.25전쟁과 그림 속의 피난민


 

한국 전쟁을 다룬 회화는 어땠을까? 유독 한국 전쟁을 다룬 작가들의 그림에서는 피난민들의 모습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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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억, 6.25 동란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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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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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피난열차(1951)

 

 

세 작품 모두 피난 가는 모습을 수평 구도로 담았으며,  하나 같이 눈코입이 없는 얼굴들이다. 그렇기에 특정한 지역의 모습이라기보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야만 했던 우리 민족들의 보편적 고통이 잘 느껴진다. 동시에 전쟁 시기를 담은 그림이지만 어딘가 목가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특히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이 그러하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분명히 “가족”임을 나타낸다. 흥겨움이 느껴지기까지 한 이 그림은, 피난민들의 고통을 다루기보다는 가족애와 애틋한 그리움을 담아냈다. 가족, 이웃, 동포의 손을 잡고 떠난 불안한 길의 끝에는 평화가 있길 작가들도 바라지 않았을까?

 

 

 

현재 예술계의 움직임 



현재 우크라이나전에 대한 예술계의 움직임은 장르 불문 취소, 중단의 모습이다.


최근 밴드 그린데이와 원디랙션의 전 멤버 루이스 톰린슨은 러시아 공연을 취소했다. 2022 유로비전대회 주최측은 본 행사가 “국제 교류와 이해”를 촉진했으며 러시아의 참여는 이러한 행사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판단, 러시아의 참여를 거절했다. 영화계에서는 대형 영화사인 워너브라더스, 디즈니, 소니 등이 모두 러시아를 보이콧하여, 러시아 영화관에서의 영화 출시를 중단했다.


로얄오페라하우스는 모스크바의 볼쇼이 발레단의 공연을 취소했으며, 뮌헨 필하모닉은 수석 지휘자인 게르기예프를 해고했다. 지속적으로 푸틴에 대한 지지입장을 고수하는 그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필하모닉에서도 해고되었으며, 에든버러 국제페스티벌 등 운영진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던 유럽의 각종 예술 축제도 그와의 계약을 취소하고 있다.


미술계에서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러시아관 전시가 취소되었다. 예술가 사브첸코프와 수카레바는 공동성명에서 “민간인들이 미사일 발사로 죽어가고,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대피소에 있을 때, 러시아 시위대가 침묵하고 있을 때 예술을 위한 장소는 없다”고 밝혔다.

  

*


전쟁의 역사 속에서 예술은 때로는 사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때로는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고 그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일을, 때로는 전쟁으로 죽어갔던 이들에 대한 위로를 전했으며, 어떤 예술은 전쟁을 옹호하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해왔다.


그리고 현 시각 예술가들은, “전쟁 위에 예술은 있을 수 없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강하게 외치고 있다.


물론 예술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서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예술은 생명에서부터 비롯된다. 생명을 짓이기는 파괴의 현장에 예술이 설 수 없음에 절감하며, 우크라이나의 들판에도, 러시아에도 봄바람이 불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정무정(20009). 미니멀리즘과 베트남 전쟁. 미술사학(23), 45-71

How the Vietnam War changed art forever (2019), 워싱턴포스트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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