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자르 발레 로잔(Bejart Ballet Lausanne) with 김기민>

2026년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인아츠프로덕션을 통해 서울 GS아트센터에서 (2011년 대전 공연 이후) 15년만의 ‘베자르 발레 로잔’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총 4회차 중 프로그램이 각각 2회차씩 양분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모리스 라벨의 음악을 기반으로 안무된 <볼레로(Boléro)>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바탕으로 안무된 <불새>는 모든 회차에서 공연된다. 그 외에는 프로그램 A(23, 25일)의 경우 아시아 초연인 <햄릿>, 프로그램 B(24, 26일)의 경우 아시아 초연인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Bye bye baby blackbird)>와 <라 루나(La Luna)>가 공연된다. ‘20세기 발레의 혁명가’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프랑스 출신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 1927~2007)는 1987년 스위스에서 ‘베자르 발레 로잔’을 창단한 인물이자, 고전 발레의 문법을 비틀고 철학적인 주제를 담아내며 모던 발레의 거장으로 통한다.

프로그램 A의 시작을 알리는 발렌티나 투르쿠(Valentina Turku)가 안무한 <햄릿(Hamlet)>은 60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단막 안무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을 기반으로 인물의 심리와 감정에 집중해 새롭게 재해석했다. 전반적으로 아버지의 죽음에 담긴 진실을 알게 된 덴마크의 왕자를 주인공으로 왕실의 비극을 그린 원작 『햄릿』의 사건 전개와 시간적인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특정 부분은 압축되거나 생략되며 드라마가 강조된다. 따라서 원작 텍스트를 이미 접한 이들에게는 이 작품에서 전면에 드러나는 비극적 사건의 흐름에 함축된 요소를 쉽게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 이점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은 클래식 발레가 음악을 일종의 형식의 일부로 여기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모던’한 안무와 조화된 음악인데, 작곡가 막스 리히터의 음악을 기반으로 락 밴드 'Muse'와 ’Cigarettes After Sex'의 음악을 활용하여 안무에 내재된 정서를 표현하고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연기를 통한 특수효과나 새로운 무대 소재의 활용, 레어티스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때 캐리어를 끌고 가는 연출이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칼싸움은 팬싱 칼로 대체되는 등 (신시 컴퍼니의 연극 <햄릿>에서도 유사하게 찾을 수 있는) 현대적인 연출 역시 돋보인다.
미니멀리즘의 경향을 연상시키는 간소한 무대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충돌과 그들 간 관계에 내재한 균열을 드러내며 이를 기반으로 원작의 주된 주제였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드러낸다. 우유부단한 햄릿,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트, 햄릿의 삼촌이자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를 계승했다는 혐의가 있는 클로디어스, 햄릿의 연인이지만 비극적인 결과를 맞는 오필리어, 교활하지만 허무한 죽음을 맞는 오필리어의 아버지 폴로니우스, 그리고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클로디어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스⋯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결함으로 인해 예정된 비극으로 달려간다. 원작에서 오필리어는 햄릿을 시험하려는 클로디어스와 폴로니우스의 계략에 이용당하고, 햄릿이 심리적으로 붕괴하는 상황 속에서 햄릿에게 버림받으며, 햄릿이 아버지 폴로니우스를 실수로 죽인 일 이후 미쳐버린 뒤 나무에서 꽃을 꺾다가 익사한다. 수동성과 희생자의 전형으로 통하는 오필리어는 현대적으로 많은 재해석과 새로운 독해가 이루어지는 인물로서, 이 작품은 오필리어의 내면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그에게 말할 권리를 준다. 이민경 무용수가 연기하는 오필리어는 원작과는 달리 햄릿과의 갈등 상황에서 햄릿의 뺨을 때리는 등 자신의 감정을 강하게 표현하지만, 인간의 숙명적 나약함과 취약성의 운명을 극복하지 못하는 ‘햄릿’ 속 인간 군상의 전형이다. 오필리어의 광기는 회전하는 팬에 달린 플라스틱 비닐을 웨딩 드레스처럼 두르고 무대를 활보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결국 비닐 안으로 들어가서 숨이 막혀 죽는 것처럼 묘사된다. 이러한 질식의 이미지와 비닐의 투명함은 원작에서 익사한 오필리어를 감쌌던 물을 연상시킨다.
유독 흥미로운 캐릭터가 있다면 햄릿에게 나타난 선왕의 유령이다. 원작 소설에서 햄릿에게 폴로니우스가 자신을 독살했다는 사실을 알린 후 사라지는 유령은 이 작품에서는 무대라는 공간 위에서 계속해서 존재하는 중요한 비인간 행위자로 등장하며, 산 자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등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또 다른 특이점은 원작의 ‘무덤지기 노인’을 일부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는 '엘시노어'라는 이름의 역할이다. 엘시노어는 원작 소설에서 모든 비극이 발생하는 공간인 성의 이름으로, 이 작품에서 엘시노어 역할을 맡은 무용수는 작품의 공간 자체가 의인화된 캐릭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엘시노어 캐릭터는 주요 캐릭터들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동안 모든 특수 효과를 만들고 어질러진 무대 공간을 치우며, 파멸을 맞아 사라지는 인간들과 달리 불변하고 자기 충족적으로 재현되는 성이라는 공간성을 드러낸다. 짧은 단막의 시간 속에 햄릿이라는 텍스트의 핵심적인 주제와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가 몸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되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고 똑똑하게 설계된 작품이다.

20분의 인터미션을 가진 후 시작된 2막의 첫 레퍼토리인 모리스 베자르의 <불새(The Firebird)>(1971)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22분짜리 짧은 안무로, 발레 뤼스에서 만들어진 미셸 포킨 안무의 단막 발레 <불새>와는 다른 방향을 택한 작품이다. 불새의 도움을 받아 사악한 마법사로부터 공주를 구해 결혼하는 차르의 아들 이반의 이야기를 담은 러시아 민담을 바탕으로 한 미셸 포킨의 <불새>는 서구 사회를 매혹시키기 위해 러시아의 민속적 색채를 강조하고 고전적인 발레의 동화적 서사의 환상성을 반대 방향으로 ‘뒤집었다면’, 불새를 혁명의 상징으로 의미화한 베자르의 <불새>는 서구 사회의 68 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반영해 의식의 각성과 주체화, 그리고 집단적인 힘의 위력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붉은 옷을 입은 불새가 인민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착용한 군무진들에게 혁명의 정신을 전파하고 이로 인해 군무진들은 즉자적 존재에서 대자적 존재로 각성하며, 후반부에 불사조가 쓰러진 불새를 되살리는 장면은 승리와 성공의 서사를 은유한다. 불새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추상화되었지만, 이 작품에 담긴 혁명의 상상력은 본질주의를 경유하는 모종의 낭만화가 느껴진다. 이 작품은 보편적인 혁명의 상징을 지향하고 있지만 여전히 피억압자를 본질화하는 특권적 주체로서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으며, 특히 인민복이라는 기표의 활용은 68혁명 당시 서구의 지식인들이 마오주의를 낭만화했던 경향에 대한 가야트리 스피박의 비판(『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을 연상시킨다. 또한 혁명이라는 소재와 배경을 다루는 클래식 발레 <라우렌시아>나 <파리의 불꽃>과 달리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에 노골적이거나 교조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무와 음악의 유기적 결합은 모던 발레로서 이 작품을 내적으로 자기완결적인 작품이 되도록 돕는다. 초반부 불새의 지저귀는 안무가 음악 속에 반영되며 ‘조류’의 특징을 살리고, 전체적으로는 음악의 흐름과 안무가 긴밀하게 맞물리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포킨의 안무에 비해 추상성이 돋보이는 베자르의 <불새>는 모던 발레의 효시라고도 볼 수 있는 포킨의 <불새>를 새롭게 재해석해 ‘모던 발레’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미를 장식할 이 공연의 마지막 작품은 모리스 라벨이 1928년에 작곡한 동명의 관현악곡을 바탕으로 1961년 초연된 <볼레로(Boléro)>다. ‘볼레로’는 스페인 전통 민속 무곡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스페인 국적의 어머니를 둔 라벨은 발레리나 ‘이다 루빈스타인’의 의뢰로 스페인의 한 술집에서 여성 무희가 볼레로를 추면서 주변 모든 이들이 춤을 따라 추는 상황을 담은 관현악 곡을 새롭게 창작했다. 스페인의 민속 무곡인 ‘볼레로’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모리스 라벨의 음악 ‘볼레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발레 안무는 니진스키의 여동생 니진스카에 의해 창작되었다. 그 이후에도 <젋은이와 죽음>으로 유명한 롤랑 프티 등 다양한 안무가들이 라벨의 볼레로를 활용해 발레 작품을 창작했고, 모리스 베자르가 안무한 볼레로가 가장 유명한 안무로 꼽힌다.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는 선율이 반복되면서 다양한 악기가 참여함으로써 점진적으로 고조되는 오케스트라 음악을 무대 위 붉은 원형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주역 무용수의 ‘멜로디’(La Mélodie)와 테이블을 둘러싼 주변 무용수들의 ‘리듬’으로 형상화한다. 1979년 발레리노 최초로 ‘멜로디’를 맡아 영화에 남은 조르주 돈 (Georges Donn)에 이어, 본인의 이름을 딴 발레 동작(<돈키호테> 키트리의 ‘플리세츠카야 점프’)이 있는 발레리나 마야 플리세츠카야 (Maya Plisetskaya)는 50세 생일 기념 공연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고, 발레리나 실비 길렘 (Sylvie Guillem)은 2015년 은퇴 공연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이번 공연에서 ‘멜로디’를 맡은 무용수는 마린스키 수석 무용수이자 브누아 라 당스를 수상한 발레리노 김기민으로, 한국 무용수 최초로 베자르의 <볼레로>에 참여한다.
원형 테이블 위 ‘멜로디’의 움직임이 이 공연 전체를 이끌어 가는 구조 속에서 멜로디를 맡은 무용수의 반복되고 변주되는 움직임과 점층적으로 악기의 구성이 추가 및 변화되는 관현악의 선율은 동일시된다. 음악이 고조되며 멜로디는 앉아 있던 ‘리듬’이라는 이름의 다른 무용수들을 차례차례 동원하면서 음악은 절정으로 향한다. 고양된 엑스터시가 만든 정신적 합일감 속에서 모두가 함께 절정에 도달하자마자 쓰러지는 멜로디와, 멜로디를 감싸고 동심원 모양으로 모여 있는 ‘리듬’의 모습으로 종결되는 방식은 그 특유의 파괴력을 통해 온몸에 전율을 흐르게 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는 파괴와 소멸을 지향하는 죽음 충동(타나토스, Thanatos)은 리비도를 기반으로 쾌락과 사랑을 지향하는 성 충동(에로스, Eros)와 연관되는데, 마치 이러한 철학을 그대로 차용한 것과 같은 베자르의 <볼레로>는 왜 이 작품이 초연 당시 ‘선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멜로디는 소멸, 즉 존재론적인 죽음이 예정된 상황 속에서 약 18분 내내 춤을 추고, ‘리듬’은 그 흐름에 합류해 집단적인 종교 의례에 참여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붉은 테이블 위에서 계속 춤을 춰야 하는 멜로디는 곧 볼레로의 주된 선율 그 자체이며, 의자에 앉아 흐름에 따라 점차 움직이게 되는 무용수들은 리듬, 즉 박자다. 음악의 형식을 메타적으로 안무로 옮겨낸 발상은 청각의 시각화로서, 마지막에 쓰러지는 멜로디가 곧 선율의 소멸, 즉 음악의 끝이라는 점은 고도의 치밀함이 엿보인다.
이번 공연에서 ‘멜로디’를 맡은 김기민에게 이 작품은 부상으로 인한 휴식기 이후 복귀작으로서, 그리고 2024년 <라 바야데르> 이후 선택한 한국 공연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카리스마와 아우라로 관객들의 시선을 장악했고, 단순히 이미 짜인 안무의 수행이라는 테크닉적인 차원을 넘어 왜 이 동작이 이 음악 속에서 안무의 형식으로 구현되었는지를 관객에게 납득시켰다. 의식의 전 과정을 춤을 위해 활용하는 강한 집중력 속에서 이 음악의 선율은 그의 춤과 완전히 달라붙어 떨어질 수 없는 동일체가 되었다. 모리스 베자르의 안무가로서의 ‘커리어 하이’라고 볼 수 있는 <볼레로>는 클래식 발레와 드라마 발레를 넘어 춤 그 자체를 새롭게 사유하기 시작한 모던 발레의 명작이며, 예술 작품을 접하는 것은 이를 자신의 몸으로 관통시키는 것과 같고, 그 경험은 종교적 영성과도 같은 체험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공연이다.
국립발레단 <더블 빌_맥그리거&테틀리>

2026년 5월 8일~10일 GS아트센터에서 국립발레단의 ‘더블 빌(Double Bill)_맥그리거&테틀리>이 공연되었고, 2026년 5월 15일~16일 세종시 예술의전당에서 동일한 공연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 1970~)의 <인프라(Infra)>와 글렌 테틀리(Glen Tetley)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작년 이어리 킬리안의 세 작품으로 구성된 공연인 <킬리언 프로젝트>, 2023년 다양한 안무가의 작품들로 구성된 <트리플 빌> 등 모던/컨템포러리 발레 작품들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 온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상 경향성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인프라>의 경우 국립발레단이 한국에서 올해 처음 라이선스 초연을 올리며, 테틀리의 <봄의 제전>의 경우 2014년 라이선스 초연(<교향곡 7번, 봄의 제전)> 이후 2016년 <세레나데 & 봄의 제전>에서 공연된 이후로 약 10년만에 돌아오는 작품이다.
영국 로열 발레단의 상주 안무가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단(웨인 맥그리거 무용단)의 수장인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의 안무작인 <인프라(Infra)>(2008)는 현대 음악가 막스 리히터의 음악과 미니멀리즘과 팝 아트를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로 주목받은 영국의 시각예술가 줄리언 오피(Julian Opie)의 미디어 아트를 접목시켜 도시의 일상적인 삶과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표현한다. 이 작품은 흔한 도시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거리를 걷고 있는 군중을 추상화해 표현한 미디어 아트를 LED 화면을 통해 공중에 배치한 채 지하철 플랫폼이라는 공간적 배경이자 무대에서는 12명의 무용수들의 다양한 움직임이 균형과 불균형, 조화와 균열, 단호함과 서정성, 의존과 단절, 반복과 변주를 넘나들며 춤을 춘다. 어느 시점의 무용수들은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시점에는 다양한 감정을 분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독무와 군무를 넘나들며 여섯 페어가 조명으로 구획된 공간 안에서 동시에 페어 안무를 선보이고는 흩어지기도 한다. 무용수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감정이 전이되듯 안무가 이어지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서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의 엔딩은 오열하는 한 명의 여성 무용수를 무대의 중심에 둔 채, 공중에 떠 있는 미디어 아트를 형상화한 것만 같은 평범한 일상복을 입은 군중들이 무대 위를 지나가는 장면으로, 모종의 역설과 대비 속에서 작품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 작품의 제목인 ‘인프라(infra)’는 일반적으로 ‘infrastructure’의 줄임말로, 사회적 생산의 기반이 되는 사회의 간접 자본이자 시스템과 제도의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토대를 의미한다. 이 무대의 배경이 되는 지하철은 도시의 대표적인 인프라(시설)로서, 도시의 움직임과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이다. 또한 ‘infra’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의 의미가 ‘아래(below)’라는 점이 작품의 소개에서 드러나고 있는데, 이러한 인프라(infra)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가 시각적인 차원에서(거리의 ‘아래’에 존재하는 지하철 플랫폼의 공간), 그리고 철학적인 차원(도시성이 함의하는 ‘표면’과 내면적 자아의 분리)에서 드러난다. 이 공연에서 외면과 내면, 사회적 자아(‘가면’)와 내밀한 사적 자아의 구분은 무대 위 걷는 이들을 표현하는 LED 스크린과 실제 다양하게 움직이는 무용수들의 안무의 시각적 경계로 형상화되는데, 그 괴리에도 불구하고 후자가 전자를 지탱함으로써 삶이 가능해진다는 역설을 품고 있다. 따라서 ‘인프라’를 더 광의적인 의미로 상상해본다면 곧 모든 인간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상호관계성이며 이는 단순히 관계가 수반하는 긍정성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페어 안무에서 무용수들이 주고받는 에너지가 조화가 아니라 갈등과 긴장과 유사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사회적 삶과 ‘진짜 나’를 분리하는 이항대립적 도식과 익명적인 도시성 속 고독과 소외라는 테마는 전반적인 공연 예술 장르에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주제가 되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메시지 자체의 신선함보다는 이러한 메시지를 어떻게 안무로서 잘 구현했는지, 그리고 같이 활용되는 기술은 무엇인지가 주된 관람 포인트가 된다.
또한 웨인 맥그리거는 기술을 안무에 활용하며 장르의 경계를 실험하고 ‘무용’의 의미를 새롭게 구성하며 현대 예술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 온 안무가인데, 올해(2026년) GS아트센터에서 웨인 맥그리거 무용단의 내한으로 공연된 <딥스타리아(Deepstaria)>(2024)에 비해서 이 작품은 (<크로마>와 더불어 그의 초기 작품이기에) 부분적인 방식으로만 영상 매체 기술이 활용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가 (예술에서의) AI와 기술의 활용에 대해 낙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 그렇기에 (신체성의) ‘해체’와 혼종적 얽힘이 활용되는 방식이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의 구분 속에서 전자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안무 궤적을 더욱 상세히 살펴보기 위해 그의 최근 안무작 역시 한국에서 더욱 마주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다음으로는 발레와 현대 무용을 결합시킨 작품을 창작해 온 미국 출신의 안무가 글렌 테틀리(Glen Tetely, 1926~2007)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1974)으로, 그의 작품들은 글렌 테틀리 레거시(Glen Tetley Legacy)에 의해 보존되고 관리된다. 테틀리 안무의 <봄의 제전>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동명의 음악을 기반으로 청년 제물, 대지의 신(Father), 대지의 여신(Mother)으로 명명되는 세 주역 무용수를 포함한 25명(군무 18명, 드미 솔리스트 4명)의 무용수들을 통해 원초적인 신체의 에너지와 공동체 의식을 표현한 작품이다.
<봄의 제전>은 여러 버전의 안무가 있지만 공통적인 원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장미의 정령> 같은 발레 뤼스의 작품에서 무용수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던 바슬라프 니진스키가 안무를 맡은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1913)이다. 니진스키가 안무한 발레 뤼스의 <봄의 제전>은 유럽 순회 공연 당시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원시 공동체의 의례에서 봄을 맞아 제물로 선택된 소녀가 희생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의 고전적인 발레의 낭만성이나 우아함이라는 정서, 움직임과 형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폭력성과 원시적인 야만성을 담았다는 이유로 초연 당시 관객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등 충격적인 반응을 얻었지만 이 작품은 발레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으로 남았다. 하지만 니진스키 사후 원본 안무 소실로 인해 <봄의 제전> 초연 당시의 안무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 이르렀고, 많은 안무가들이 <봄의 제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안무하기 시작했다. 그 중 미국의 ABT,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택하고 있는 글렌 테틀리 버전의 <봄의 제전>은 그로테스크함과 불쾌의 미학, 기괴한 음조, 종교적인 의례 속 희생이라는 기본적인 테마를 유지하면서 안무와 형식을 새롭게 재창조했다.
글렌 테틀리의 <봄의 제전>은 제전은 니진스키가 안무한 원전의 핵심인 슬라브족 이교도의 원시성을 연상시키는 의상과 안무 대신 ‘대지’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추상적인 의상을 택하고, 원작의 핵심 요소였던 부락 간의 (성적 행위를 통한) 교류나 현자 노인의 존재, 곰의 탈을 쓴 장로들의 등장 역시 사라졌다. 봄을 맞아 대지를 깨우는 축제인 1부와 희생 제물의 선택과 선택된 소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2부 같은 악곡의 구성이 안무가 되는 연출 역시 과감하게 변화시켰다. 희생되는 청년 제물이 소녀가 아니라 남성 무용수라는 점도 이 버전만의 특징이다. 대지의 신(‘Father’)과 대지의 여신(‘Mother’)이 등장해 안무를 이끌고, 희생되는 제물의 죽음으로 종결되는 마지막 장면도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와이어를 통해 무대 위로 승천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어떠한 봄의 제전이든 변하지 않는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종교성의 보편적 원형일 것이다. <봄의 제전>에서 나타나는 의례가 유독 기묘한 점은 제물이 되는 희생자 본인이 집단적 의식과 완전히 동화되고 일치되어 공동체의 의례를 위해 죽는 스스로의 선택을 무의미하다고 감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례를 위해 희생되는 제물이 느끼는 감각(두려움, 공포, 환희, 광기 등)은 버전마다 다르지만 집합적 열광 속에서 집단의 정신과 일치되어 의례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죽음을 맞이하고 그 시체가 ‘들어올려지며’ 성스러운 것으로 숭배의 대상이 된다는 점은 동일하다. 원작의 안무에서는 희생되는 소녀가 열광의 상태 속에서 춤을 추다가 죽음을 맞이하는데, 춤을 추다가 죽는다는 것은 생명체의 자기보존 욕구를 거스르고 공동체와의 합일감 혹은 종교적 엑스터시를 택해야만 가능하다. 테틀리의 안무에서 희생의 대상인 청년 제물은 자신의 예정된 운명에 대한 공포를 열광적 희생으로 전이시켜 불꽃처럼 산화한다.
기존 <봄의 제전>이 숭배하는 대상은 ‘대지’ 그 자체로, 테틀리의 안무에서는 그 숭배의 대상인 대지의 신과 여신이 직접 현현(顯現)하며 ‘원시적 야만성’이 보편적인 종교성으로 의미가 치환된다. 원본 안무에 강하게 내재되어 있던 원시 슬라브족이라는 배경의 탈피는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문화적 위계에서 벗어나 종교성이라는 개념을 확장하려는 시도로 독해할 수 있고, 동시에 당시 유럽 사회에게 러시아의 민속적 문화를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상품으로서 어필하려 했던 원작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라는 문제적인 맥락을 지우려는 태도로 읽히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이고 복잡한 개작의 과정 속에서 새롭게 안무된 <봄의 제전>은 주요 발레단의 대표적인 모던 발레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특히 이번 국립발레단의 <봄의 제전>은 레퍼토리 구성의 차원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재공연이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14년, 16년 공연에서 ‘신예’로 통했던 청년 제물 역할을 맡은 전호진, ‘대지의 여신’ 정은영과 ‘대지의 신’ 김기완으로 구성된 페어가 이번 공연에는 유일한 ‘경력직’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사진 출처: 인아츠프로덕션(@inartsproduction_official) 인스타그램, 국립발레단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