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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열린 결말로 이어지는 감각 [미술/전시]

세화미술관 유영하는 세계 Floating world: Bed, Bath, Bus

by 김민주 에디터
2025.07.13 12:12

 

 

흐릿한 초상이 있다. 그 옆에는 명확한 서사 없이 흘러가는 영상이 놓여있다. 처음 전시장에서 천경우 작가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낯설고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모호한 작업들은 언뜻 보면 미완성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의도일까?

 

전시장의 한편에 놓인 그의 작업노트『보이지 않는 말들』과 사진집 『Photographs』에서 해답을 찾았다.

 

앞서 본 불분명함이야말로 천경우 작가 작업의 본질임을 깨달았다. 작가는 완결되고, 고정된,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관람자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고 해석해가는 ‘열린 결말’의 작품 구조를 추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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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우 작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사진, 영상,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사람들 간의 ‘관계’와 ‘현장성’을 탐구해온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고정된 조형물을 통해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과 그 순간, 그들과 나누는 감각적인  경험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항상 실제 사람과의 접촉에서 출발하며, 이 만남은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와 소통의 방식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예술적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영상 작업 <가사 없는 노래 II>에서 잘 드러난다.


해당 작품은 한국의 청각장애인들이 만든 곡을 인도의 아이들에게 전하는 데서 출발한다.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은 이 낯선 곡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고, 새로운 음악으로 다시 빚어낸다. 그 과정을 담은 것이 바로 <가사 없는 노래 II> 퍼포먼스 영상이다.

 

화면은 긴장한 아이들의 얼굴, 클로즈업된 표정,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흩어지는 단음과 반복되는 장면들로 구성된다. 전체적으로 정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들은, 서사보다 분위기와 감정을 환기시킨다.

 

그래서 작품을 처음 맞닥뜨리면 의도나 초점이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작업노트를 읽어보면, 이러한 ‘불확실함’ 자체가 감상의 일부로 설계되었음을 알수 있 다. 천경우는 관객에게 정답을 주입하기보단, 불친절하더라도 각자가 장면을 해석하고 관계를 읽어가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천경우 작품은 폐쇄된 구조가 아니라, 감상자의 상상과 참여로 계속해서 의미가 확장되는 열린 구조다. 결과보다 과정, 완성보다 상호작용에 방점이 찍힌, 참여형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사진 작업 또한 이러한 철학을 반영한다. 전시장에서 본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시리즈의 흐릿한 인물 사진은 처음엔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현실을 드러낸다’는 설명과 어긋나는 듯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흐릿한 초상으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전시장의 작품 자체보다, 천경우가 다룬 다른 시리즈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고자 했다.

 

〈The Most Beautiful〉 시리즈는 도시가 잠든 밤, 거리의 환경을 정리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환경미화원들의 존재에 주목한다. 작가는 이들이 유니폼 뒤에 숨기고 있는 ‘개인의 초상’에 관심을 가진다. 특히 그들이 일할 때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연인, 가족처럼 삶의 원동력이 되는 얼굴들에 주목한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눈을 감고 그 얼굴을 손으로 그려보도록 요청한다. 그림을 그려본 적 없는 이들이 표현한 초상은 불완전하고 흐릿하지만, 오히려 그 안에 더 깊은 감정과 기억이 스며든다. 이로써 그의 작업은 소외된 사람들의 존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낸다. 천경우는 그들을 단순한 익명의 '노동자'가 아닌, '개별적 삶의 온도를 지닌 개인'으로 바라보며, 그 시선을 관객안으로 끌어들인다.

 

흐릿한 형상들은 감상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타인의 삶 앞에서 얼마나 진심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분명히, 천경우의 흐릿한 초상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타인의 삶을 상상하고, 그 안의 감정을 느껴보도록 유도한다. 그것이 바로 천경우 작업에서 보여지는 '흐릿한 초상'의 의의이다.

 

나 역시 작업을 구상할 때 '타인의 서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것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 해답을 이 전시에서 발견했다.

 

천경우 작가의 작업은, 예술이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그의 작업은 타인과 맺는 관계를 새롭게 상상하게 만들며, 예술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의 교류와 따듯한 연결을 끊임없이 탐색한다.

 

그렇기에 그의 작업은, 전시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관람자의 마음속에서 다시 시작되며, 열린 결말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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