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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 전시장에서 ‘보다’란 무엇인가



 

요즘처럼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본다’는 건 여전히 어렵다. 아니, 오히려 제대로 보기 더 어려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떠 있는 것을 본다고 해서, 그것을 "내가 정확히 이해했다거나 진심으로 느꼈다"고 말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현선의 전시는 아주 이상한 전시였다. 나는 분명히 그림을 보고 있었지만, 자꾸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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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2에서 열린 전시 《우리의 눈꺼풀은 한 겹이 아니다》는, 제목부터 예고하듯 시선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풍경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정도의 시각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 보는 행위에는 우리의 해석과 인식이 반영된다. 그래서 작가는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그냥 보지 않고, 기억이나 상상, 욕망 같은 다른 감각들을 겹겹이 덧붙이는 데 집중한다.


즉, 다층적 보기에 주목한다. 

 

마치 눈꺼풀이 여러 겹인 것처럼, 우리는 여러 층위로 세상을 본다. 전시는 이러한 단일하지 않은 보기 방식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전현선 작가는 이러한 다층적 보기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하고 있을까?


본 글에서는 작가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세 가지 측면—콜라주적 표현 방식, 눈이라는 모티프, 색감이 환기하는 기억—을 중심으로, 감각과 인식이 겹겹이 중첩되는 '다층적 보기'의 구조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2. 콜라주적인 조형 방식이 유도하는 감각의 다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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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커다란 펠트 조형물이다. 이름은 《It’s Memory, Not Enemy》. 일단 너무 예쁜데, 너무 기묘하다.  생동감 넘치는 색감의 천들은 유쾌하고, 만져보고 싶을 만큼 촉각적이다. 그런데 안에 그려진 요소들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분홍색 늑대, 노려보는 눈, 폭죽 같은 패턴 등 서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미지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 느슨하게 나열되어 있다. 꼭 초등학생이 색종이 오려 붙이듯, 마음 가는 대로 만든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치만 그 안에는 단순한 유희를 넘어선 조형적 전략이 숨어 있다.

 

전현선의 작품은 의도적으로 현실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장면들로 구성된다. 분명 익숙한 사물과 감각인데, 전혀 예상 못 한 조합으로 튀어나오니까 보는 사람 입장에선 자연스럽게 ‘이건 무슨 의미지?’ 하고 묻게 된다.

 

근데 작가는 그 질문에 단일한 정답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장면을 해석해 나갈 수 밖에 없다. 이때 우리가 행하는 ‘보기’란 단순히 눈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각자의 경험이나 기억, 감정 같은 걸 끌어와서 장면을 뜯어보는 행위가 된다.

 

결국 우리의 보기는 하나의 뜻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람자가 여러 감각과 해석을 적용하는 열려 있는 과정 자체가 중요해진다.

작품은 관람자에게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층적 보기’를 체험하게 된다.

 

 

 

3. ‘눈’이라는 기호가 알려주는 여러 겹의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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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모티프는 ‘눈’이다. 마치 눈알 스티커처럼, 작가의 작품 곳곳에 눈이 붙어 있다. 쿠션 같은 조형물에도, 원뿔 같은 추상적인 형태에도 눈이 있다.

 

그리고 그 눈들은 모두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어떤 건 먼 곳을, 어떤 건 아래를, 또 어떤 건 내 쪽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런 여러 개의 시선은 한 가지 시점으로만 세상을 보는 게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하나의 눈으로는 모든 걸 다 볼 수 없다는 걸, 이 ‘눈들’은 조용히 알려준다.

 

그런데 이 눈들엔 좀 더 깊은 뜻도 담겨 있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선택하며 살아가지만, 그때 하지 않았던 선택들—‘하지 않은 선택’, ‘살지 않은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고. 예를 들면, ‘내가 다른 학교에 갔더라면?’ ‘다른 직업을 택했다면?’ 이런 생각, 누구나 한 번쯤 해본 적 있지 않을까.

 

작가는 이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눈으로 표현한다. 그 눈은 지금 내가 아닌 또 다른 나, 또 다른 가능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현선의 작품 속 ‘보기’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상과 감정까지 얽힌 복잡한 감각이다. 작가는 이 눈들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싶어 하는지’—어쩌면 모든 걸 다 알고, 가능세계마저도 다 보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도 드러낸다. 말하자면, 이 눈들은 보는 방식에 담긴 인간의 욕망까지 보여주는 장치다.


 

 

4. 색의 촉감: 기억으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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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한쪽 구석, 낮게 쌓여 있는 조형물들이 눈에 띈다.

 

베개 같기도, 장난감 더미 같기도 한 이 덩어리들은 처음엔 그저 유쾌한 오브제로 느껴진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이상하게 익숙한 색감들이 뇌리를 스친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쓰던 양면 색종이, 가방 속에서 굴러다니던 돌돌이 색연필, 반짝이는 십자수 실. 이 색들은 단순히 ‘보는’ 색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만져본’ 색이다. 내 몸 어딘가에 각인된 촉각적 기억을 깨우는 색이다.

 

전현선은 의도적으로 우리가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접했던, 사회화된 색감의 기억을 끌어와 작품 안에 배치한다. 그리고 감상자는 이 익숙한 색을 보며, 유년기의 어느 순간—미술 시간의 설렘, 종이의 냄새, 서툰 손놀림의 감촉—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색은 시각을 자극하는 동시에, 감각과 기억을 매개한다. 감상자는 단지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서, ‘기억을 따라 ‘느끼는 보기’를 실천하게 된다.

 

이때 보는 행위는 단순히 정보의 수용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과 감정이 개입된 다층적인 해석의 층위를 형성한다.

 

전현선은 색이라는 매개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보는가에 관해 다시 묻는다. 눈으로 시작된 감각은 손끝의 기억으로 이어지고, 감정으로 번진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다시 새로운 해석을 부른다. 그렇게 그녀의 작업은 보기의 방식을 넓힌다—단일한 시선이 아닌, 기억과 감각, 이야기가 얽힌 복합적인 경험으로서의 보기로.


 

 

5. 나가며 – 감각을 되찾는 시간

 

전현선의 그림은 단순히 뭔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하고 되묻게 만든다.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감정이나 기억은 다 다르다. 그건 우리가 하나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기억과 감정, 상상 같은 감각들이 겹겹이 얽힌 상태로 보기 때문이다.

 

전현선의 작업은 그 복잡하고도 인간적인 ‘보기’의 과정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했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선 그냥 그림을 ‘감상’하는 시간을 넘어, 내가 어떤 감각을 지니고 살아왔는지, 지금 이 순간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되짚어보았다.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시대, 쏟아지는 이미지 속에서 놓치고 있던 감각과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한 장면을 찬찬히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색의 시간을 전시는 조용히 건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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