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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900년의 역사가 깃든 대학도시를 느끼다 [여행]

옥스퍼드를 방문하다

by 정진형 에디터
2025.07.09 13:03

 

 

약 900년 전부터 학문의 중심지로 성장한 대학 도시가 있다면, 그곳은 어떤 분위기일까?


지난주, 케임브리지와 함께 영국의 대학도시로 유명한 옥스퍼드를 방문했다. 1096년경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옥스퍼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이 설립된 이래로, 지금까지 약 30개의 단과대가 학문 공동체를 형성하여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기나긴 역사와 단과 대학들의 연합시스템으로 인해 도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이 도시의 매력이다.


특히 옥스퍼드는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대연회장 촬영지로 쓰인 성당이자 캠퍼스가 있으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가 이 도시에서 소설을 집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어 두 작품의 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다. 그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양질의 컬렉션과 특별전을 선보이는 다양한 박물관들도 있다. 지금부터 나의 옥스퍼드 당일치기 코스로 이 도시의 학술적인 분위기를 함께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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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의 대형 쇼핑센터인 웨스트게이트 옥스퍼드(Westgate Oxford) 옥상에서 촬영한 도시 전경. 

출처: 직접 촬영

 

 

*옥스퍼드 공식 관광 안내 사이트에서는 옥스퍼드 대학을 ‘영어권 국가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the oldest University in the English speaking world)’이라고 홍보하는데, 영어권 국가들의 역사를 따져보면 말장난과 다름없다.




영국 최초의 공공 박물관, 애쉬몰리언 박물관(Ashmolean Museum)


 

옥스퍼드에는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보다도 오랜 역사를 지닌 영국 최초의 공공 박물관, 애쉬몰리언 박물관이 있다. 대영박물관보다 규모는 작지만, 동서양의 고대 유물부터 모더니즘 회화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전시 공간은 지하를 포함한 총 4층으로 구성되어 있어 1~2시간 이내에 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나의 선택은 지하층이었다. 박물관의 역사적 컬렉션과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을 연결 짓는 “Ashmolean Now” 프로젝트의 네 번째 전시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조각가 다프네 라이트(Daphne Wright)의 전시 “Deep-Rooted Things”가 진행되고 있었다.


다프네는 제스모나이트**와 도자 등 다양한 매체와 몰드 캐스팅 기법으로 인간의 유한한 삶이 지닌 취약성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역사, 유산, 기억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탐구하는 입체 작업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가족들과 지내며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탐험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래서 전시의 작품들은 가정적인 대상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 “Sons and Couch”는 작가가 두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들을 자식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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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ns and Couch”, 2025, 제스모나이트와 합성 매체. 사진 속 소파를 일부 영어권 지역에서는 ‘Couch’라고 한다. 작품을 볼수록 거실 소파에서 뒹굴뒹굴하는 나와 아버지를 보는 어머니의 시야를 간접 경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출처: 직접 촬영

 

 

애쉬몰리언에는 잘 보존된 그리스와 로마의 석고상들***을 전시하는 캐스트 갤러리(Cast Gallery)가 있다.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석고상이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 표현된 인체라면, 다프네가 구현한 두 아들의 형상은 그녀의 경험적 서사를 드러낸다. 고대 석고상과 동시대 작가의 작품에 반영된 서로 다른 ‘인체’의 서사를 탐구하고자 한 Ashmolean Now의 시도가 인상 깊었다.

 

지하의 다른 전시실에는 화폐, 직물 등 과거의 생활상이 반영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마침, 직물 전시관에서 일본의 가부키 배우였던 반도 타마사부로 V의 기모노 컬렉션을 11월까지 선보이고 있다고 하여 잠시 방문해 보았다. 유럽 소재의 박물관에서 일본의 유물을 제대로 구경해본 적은 없었는데,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 정교한 바느질을 보니 무대에 대한 정성과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언젠가 애쉬몰리언에서 한복이 전시되는 날도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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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 타마사부로 V의 기모노 컬렉션 중 하나. 옷의 안쪽까지 섬세하게 연출된 아름다움이 깊은 여운을 남겼다.

출처: 직접 촬영

 

 

**영국 회사에서 만든 천연합성수지다. 소형 액세서리 트레이나 촛대를 만들 때 쓰이는 재료다.

***일부는 17-19세기경 교육을 위해 원본과 같은 크기로 복제 혹은 복원한 작품이라고 한다.




호그와트 거기,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크라이스트 처치는 해리포터의 등장인물들이 다니는 호그와트 대연회장의 촬영지인 “Tudor Great Dining Hall”로 유명하다. 1편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가 기숙사를 배정받고, 마지막 장면에서 우수 기숙사를 발표했던 그곳이다. 이름때문에 헷갈리지만, 옥스퍼드 대학의 단과대 중 하나이자 옥스퍼드 성공회가 관리하는 공식 ‘성당’이다. 입장권 현장 구매는 이른 아침에 마감되니 온라인 예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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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 처치 입구 근처의 정원. 관광객 전용 입구를 지나면 캠퍼스의 아름다운 정원 조경을 만날 수 있다. 특히 5월~7월 사이에 방문하면 꽃과 나무가 고풍스러운 건물과 어우러진 풍경을 사진으로 잔뜩 담아갈 수 있다. 

출처: 직접 촬영

 

 

내부는 그리 넓지 않아 1시간 내로 둘러볼 수 있다. 입장 후 앞선 인파를 따르면 대연회장에 어렵지 않게 도달한다. 벽에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와 역대 크라이스트 처치 단과대 졸업생 중 유명한 인물들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수능 윤리와 사상 과목에 사회계약론으로 홉스, 루소와 함께 언급되는 존 로크(John Locke)도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이용해서 컵과 식기들이 구석에 갖춰져있는 것도 볼 수 있는데, 약 500년 전에 학교를 다녔던 대학 선배의 초상화를 보며 식사하는 기분은 어떨지 궁금하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잘 살피면 앨리스도 찾을 수 있으니 해리포터의 향취가 느껴지는 내부 공간과 함께 창문도 유심히 살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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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스트 처치의 Tudor Great Dining Hall.

출처: 직접 촬영

 

 

대연회장의 방문을 마치고 들어온 방향의 반대쪽으로 나오면 출구로 향하는 길에 중세 종교화부터 매너리즘 시기까지의 회화를 볼 수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 픽쳐 갤러리(Christ Church Picture Gallery)가 있다. 크라이스트 처치 입장권이 있다면 3파운드에 입장 가능하다.




옥스퍼드의 모든 학문과 지식이 담긴 곳, 보들리안 도서관(Bodleian Libraries)


 

크라이스트 처치를 나와 이동한 다음 목적지는 보들리안 도서관이었다. 1602년 토마스 보들리 경(Sir Thomas Bodley)이 설립하여 영국에서 가장 큰 학술 도서관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일반 서적뿐만 아니라 옥스퍼드 대학과 도시의 박물관이 축적해 온 약 900년 간의 역사적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어 오랜 경력의 연구자들이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서관은 옥스퍼드 대학 소속 학생들이 이용하는 원형 도서관 래드클리프 카메라(Radcliffe Camera)****, 도서관 소장품의 보존 업무와 컬렉션 전시를 운영하는 신관 웨스톤 도서관(Weston Library), 일부 소장품을 보관 중인 3층과 과거 학생들의 강의실로 사용되었던 구관(Old Schools Quadrangle) 총 3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구관과 신관은 관광객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으나, 래드클리프 카메라는 투어를 예약한 인원들만 지정된 시간에 입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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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드클리프 카메라 외부 전경. 건물의 외관이 독특하게 생겼다. 

출처: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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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리안 도서관 구관 건물 외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출처: 직접 촬영

 

 

내가 방문했던 날은 신관만 개방하여 구관은 둘러보지 못했으나, 세 도서관 모두 근사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신관에서는 바흐의 악보와 보들리안 도서관의 멤버십 운영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 보물전을 열고 있었다. 바흐의 악보에 담긴 그의 필체처럼, 기록물에는 그것을 남긴 이들의 날것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예술가의 화풍이나 개념을 통해 감상이 이루어지는 시각예술 전시와는 또 다른 인상을 주었다.



****카메라는 라틴어로 ‘방’ 혹은 ‘열람실’을 의미한다. 즉 “래드클리프 열람실”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길거리도 구석구석!


 

이 외에도 옥스퍼드의 길거리 곳곳에는 다양한 여행 명소와 개성 있는 캠퍼스 건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는 시험을 망친 학생들이 탄식하며 지나갔다는 일화를 바탕으로 이름이 붙여진 “탄식의 다리(The Bridge Of Sigh Oxford)”와 1770년대부터 운영되었다고 하는 시장 “커버드 마켓(Covered Market)”이 있다. 커버드 마켓은 늦은 시간에 방문하여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지만, 쇼윈도에 비치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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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들을 위한 캠퍼스 오픈 데이를 맞이하여 식당의 메뉴를 계단에 적어둔 단과대가 있었다. 재치 있고 따스한 아이디어였다.

출처: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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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건물을 잇는 탄식의 다리. 옥스퍼드의 시험은 난이도가 높아 요즘도 탄식하며 지나가는 학생이 있을 것 같다.

출처: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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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드 마켓 천장의 장식품. 용의 짧고 둥그런 비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출처: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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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드 마켓의 한 가게에서 쇼윈도에서 발견한 달 인형. 표정이 귀엽다.

출처: 직접 촬영

 

 

옥스퍼드에는 그 오랜 역사와 함께한 유명 펍들이 있다. 빌 클린턴과 스티븐 호킹도 방문했다는 유명 펍 “터프 타번(Turf Tavern)”이 그 중 하나다. 골목길에 숨겨진 중세 시대 건물을 개조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오크통에 보관하는 12종류의 맥주를 판매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여행의 피로를 풀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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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프 타번 입구의 표지판. 맥주가 매우 향긋하고 4.6%의 도수임에도 목 넘김이 가벼워 술술 넘어갔다.

출처: 직접 촬영

 

 

마지막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대학과 해리포터 못지않게 옥스퍼드에서 유명하다. 크라이스트 처치의 입구 건너편에 앨리스의 캐릭터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앨리스 가게(Alice’s Shop)이 있으니 이 동화를 좋아한다면 작은 기념품을 구입해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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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가게에서 구입한 핀뱃지. 

출처: 직접 촬영


 

 

여행을 마치며


 

옥스퍼드는 대학 도시로 유명하지만 ‘젊음’보다는 학문 중심지의 ‘전통’과 ‘긍지’가 느껴지는 도시였다. 대부분의 명소들이 오랜 역사와 영국 최고의 학술 체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들은 지금도 지정된 옷을 입고 가슴에는 꽃을 착용한 채 시험을 본다고 하는데, 과거부터 유지되어 온 그들만의 엄격한 규율과 절차는 학술 도시의 자긍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런던을 포함한 다른 영국의 대도시 못지않은 옥스퍼드만의 뚜렷한 문화적 색채라고 생각한다.


런던과 달리 신식 고층 건물보다 중세와 바로크 시대의 건축들이 곳곳에 스며든 시내 중심지와 석조 건축물들도 도시의 오랜 역사를 굳건하게 담는 듯했다. 도보 20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대부분의 관광지와 좁은 도로는 건물들 사이를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도시만의 분위기에 빠져들기에 충분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나의 옥스퍼드 당일치기는 런던으로 돌아온 늦은 밤에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으로 옥스퍼드에서 인턴을 하며 나에게 여러 명소를 소개해 준 S에게도 감사를 표하며, 이번 여행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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