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스페인어는 특별하다.
아니, 이렇게 쓰려니 이상하다. 세상에 특별하지 않은 언어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스페인어는 내가 처음으로 내 자유로운 의지로 학습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저번 달부터 나의 세 번째 언어,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물론 나의 첫 번째 언어는 모국어인 한국어이고, 두 번째 언어는 모국어에 버금가는 필수 외국어가 되어버린 영어이다.
나는 한국어를 배우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냥 한국에 태어났기에 세상에 나와서부터 배우기 시작한 언어였다. 나의 엄마도, 할머니도, 증조할머니도 한국어를 가르치기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자신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 역시도. 한국어를 배우지 않겠다는 고집은 나보다 수 세대 전부터 이미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꺾여 있었다.
내 세대에 영어교육 자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영어 교육 비디오 테이프와 학습지를 얻어 와 나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로 선택했다. 어떤 문장을 배우고 외울 것인지는 책이 정해주었다. 그리고 잘 외워 발화하면 칭찬을, 서툴게 더듬고 넘어가려면 벌을 받았다. 영어를 배우지 못하겠다는 반항심은 주로 철자가 너무 많은 단어를 정확히 외워야 할 때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그건 영어 자체의 체계와 영어로 짜여진 문장이 내포한 사고방식을 거부하겠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에 더 잘 순응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혐오가 길을 잘못 든 표현방식으로 드러난 거였다. 내 언어적 주도권에 대한 주장은 이미 나보다 몸집이 큰 어른들과 그들에게 예쁨을 받고 싶은 나 자신의 열망에 의해 소멸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스페인어를 배우라고 한 적은 없다. 그저 내가 선택했다. 최근에 내가 왜 스페인어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첫 번째 이유는 연극이었다 스페인어로 된 희곡이 좋았다. 한국에서 아직 출판되지 못한 스페인 희곡들, 한국어를 거쳐 탐사되지 못한 그 미지의 세계가 더욱 더 궁금해졌다. 난 모두가 반대하던 내 꿈을 위해서 새 언어를 배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목소리를 내어 말하는 새 방식을 배운다.
스페인어는 재미있다. 철자 하나하나가 어떻게 소리내는지만 알면 누구나 의미를 모르는 단어도 단순하게 음절을 조합해 발음해볼 수 있다. 발음의 복잡한 예외랄 것이 거의 없다. 그 점에서 스페인어 단어들은 그가 누군지, 그 깊은 뜻과 뿌리를 누구에게나 알려주는 가벼움을 지니진 않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 교묘한 말의 속임수로 감추지 않는 솔직함을 가졌다. 나는 언제나 익숙할 시간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이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서, 실은 더 가까워지고 싶은 이에게 나를 너무 포장해서 후회했다. 스페인어를 말하는 방식은 내가 갈망하던 말하기의 방식과 닮아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걸 배운다.
스페인어는, 최소한 내가 알아가는 중인 기초 스페인어에선, 명사를 꾸미는 수식어들이 명사의 뒤에 붙는다. 예를 들어, 스페인어 표현에선 '멋진 사람'이 아니라, '사람 멋진'이 된다. 스페인어로 말한다면 '갈색 책상'이 아닌 '책상 갈색의' 이므로 저 책상은 갈색이거나 흰색이기 이전에 책상이고, 또 저 나무는 높거나 낮기 이전에 건물이다. 스페인어를 배우다 보면 모종의 용기가 생긴다. 나도 모르게 내게 붙어버린 수식어이기에 앞서, 나는 나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렇게 선언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처음 선택한 언어, 내가 처음 선택한 목소리를 내는 방식인 스페인어를 배우며, 나는 어쩌면 나라는 사람의 주도권을 잡는 법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가진 나, 내가 원하는 나와 미세하게 가까워질 기회를 이제야 조금씩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는 별 볼일 없는 이야기를 한 번 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