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로서 마지막 원고를 쓰고 있다. 웃긴 고백인데 사실 나는 에디터에 합격하기도 전에 합격이 됐다는 상상을 미리 하고 맨 마지막에 쓸 글을 정해놨었다. 그때 마신 김칫국은 정말 현실이 되었고, 지금 이렇게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다.
한 챕터가 마무리되면서 또 다른 시작 사이에 있는 지금. 개인적으로도 과도기 맞다. 6월의 끝자락이라 더 그런 것도 있다. 상반기는 저물었고 그래서 내가 반타작은 했나? 자꾸 점수를 매기게 된다. 알 수 없는 싱숭생숭함에 요 며칠 밤잠을 뒤척이기도 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면서도 가장 많이 떠오른 것이 <오구실>이었다. 이불을 풀럭거리며 천장을 멀뚱멀뚱 보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그러다 몇몇 장면들이 연속으로 튀어나와 계속 아른거린다. 일종의 계시다.
‘정주행할 때가 되었느니라...!’
그래서 모처럼 최애 드라마 <오구실>을 첫 회부터 다시 봤다. 평범함에서 오는 울림은 여전히 좋았고 이제는 전과 다른 포인트에서 공감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직도 모든 면에서 뚝딱거리고 또 때는 타서 어느 정도 알 건 아는, 그렇게 조금 애매한 포지션에서 바라본 드라마가 사람을 제대로 흔든다.
나 잘 사나? 의심될 때, 그냥 잠들기엔 왠지 허전한 기분이 들 때, 하루 끝에 그저 약간의 토닥임이 필요할 때. 그럴 때 만나면 정말 딱인 작품이다. 내겐 곁에 놓고 홀짝 들이켜는 맥주 한 캔 같은 존재다. 금이야 옥이야 소중히 품고 있던 드라마 <오구실>을 이제야 꺼내 본다.
보석 같은 웹드라마 ‘오구실’을 발견했다
1. 일상과 착 붙어 있는 생활밀착형 스토리
72초TV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감성 웹드라마 <오구실>은 평범한 30대 싱글 여성인 ‘오구실’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3분 남짓의 에피소드에는 오구실(이채은 님)의 일과 인간관계, 사랑 이야기가 밀도 있게 담겨 있다. 특히 작품 전반에 깔린 편안하면서도 위트 있는 정서가 아주 매력적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한번쯤은 겪어 봤을 법한 상황들과 감정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소소한 공감을 일으키는 포인트가 곳곳에 넘쳐 흐른다.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각각의 에피소드 안에는 재미와 감동이 적절한 비율로 압축돼 있다. 감정적 충만함까지 최대치로 느낄 수 있기에 여운이 꽤 짙다. 극적인 내용 없이 이야기가 편하게 흘러가는데도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평소에 잠깐 스쳤던 감정의 순간을, 그 찰나를 촘촘히 엮어서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점. 볼수록 세심하고 디테일하다 느낀다. 어딘가 익숙한 듯 새롭게 다가오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일 거다.
2015년에 시작한 <오구실>은 시즌3까지 이어져 온 시리즈물이다. 여러 주제를 담고 있고 시즌1과 2가 비슷한 톤으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시즌3부터는 시청자 모두가 응원하던 ‘오구실’의 러브 라인을 다루고 있어 내용적으로 더 다채로워진 느낌이고 시즌1, 2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긴 버전의 영상이 더 추가되면서 ‘오구실’이라는 캐릭터의 감정을 더 깊고 진하게 그려냈다. ‘구실’ 스스로 본인 마음을 헷갈려 하는 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감정에 충실하려고 하는 모습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스토리도, 배우들의 연기도, 다정한 목소리의 내레이션도, 이 모든 것을 센스있게 다 아우른 연출력도 최고였다. 밸런스가 참 좋은 작품이다. 단번에 몰아 봐도 무리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거다.
2. ‘다정함’ 맛집
몽글몽글, 사랑스러움, 귀여움, 포근함, 잔잔함, 따스함, 소소함, 평범함, 반짝이는, 정감 있는, 특별함, 토닥임. 오구실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단어들이다. 여러 단어 중에서도 드라마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는 ‘다정함’이다.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쓸쓸한 마음이 있다. 홀로 지내는 물리적인 외로움이 아니라 누구나 각자 간직하고 있는 저마다의 외로움이 건드려졌을 때의 허기진 감정을 말하는 것이다. 오구실은 정확히 그 지점을 어루어 만져 준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기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포근한 장면들과 함께 커피소년(노아람)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한몫한다. 오구실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달달한 내레이션! 커피소년의 다정스러운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와 이야기의 몰입을 한껏 높인다.
지금 다정한 토닥임이 필요하신 분들은 <오구실>로 지친 마음을 달래 보시는 건 어떤지. 허한 마음에 따스한 기운이 살며시 스며들 것이다.
3. 서툴지만 애쓰는 사람들을 조명하며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이름 ‘오구실’. 인물 이름이 곧 드라마 제목인 이 작품에서 구실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이야기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워낙에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산뜻한 커트 머리에 햇살 같은 미소가 무기인 ‘오구실’은 자꾸만 눈길이 가는 사람이다. 그녀만의 밝은 에너지는 사람을 무장 해제시켜 버린다. 거기에 모나지 않고 주변과 둥글게 어울리면서도 직장 동료들을 배려하고 챙기는 성숙함까지 겸비한 인물이다.
30대의 ‘구실’은 어떤 날에는 똑소리나고 야무졌다가 또 어떤 날에는 영 서툴고 얼렁뚱땅한 면모를 보인다. 열심히 일하다가도 삐그덕, 오랜만의 연애 사업에서도 삐그덕거리는 그녀는 중간중간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 버린다.
나인 듯 내가 아닌 듯 보게 되는 면도 있다. ‘구실’의 씩씩함과 단단함을 부러워하면서도 30대 어른의 어딘가 서툴고 능숙하지 못한 면모에 공감이 가서 더 응원해주고 싶다. 작품은 ‘오구실’을 비추고 있지만 사실 여기에 공감할 수많은 사람들까지 함께 조명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다 서툴지만 자기 자리에서 애쓰고 있는 기특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드라마가 역으로 알려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언제 어디를 펼쳐 보아도 다 말이 되는
N번을 봐도 좋다. 오구실이 그렇다. 볼 때마다 내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 나에게로 와서 콕 박힌다. 때마다 가장 적절한 정답을 제시해 주는 것 같아 신기하다. 한 번쯤은 자기 안에서 품어 봤을 법한 의심, 걱정, 고민, 생각이 드라마 안에 골고루 담겨 있다. 일상에서 자칫 무심하게 바라봤던 순간들, 알면서도 그냥 어쩔 수 없이 묻어 둔 순간들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며 위로 받는 기분이다. 그리고 점점 더 ‘오구실’의 입장, 감정이 잘 헤아려진다.
지금 시점에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영상은 시즌2의 세 번째 에피소드인 ‘무언가를 시작할 구실’이다. 비장해질 필요 없이, 편안하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여유. 바로 그 여유가 현재의 나에게 가장 적절한 처방 같다.
또 한번 힘을 낼 구실
헉. 좋아서 “헉”이 튀어나왔다. 섬세하고 따스한데 단단한 기운. 드라마 오구실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본 순간 힘이 났고, 반했고, 이 글을 쓴 사람을 동경하게 됐고, 질투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뭔가를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짧은 분량 안에서도 감정의 폭을 세세하게 다 아우른다는 게 인상적이어서 벙쪘던 기억이 난다. 오구실 드라마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이 너무나 조화롭고 자연스러워서 감동을 받기도 했었다.
점프해서 말하자면 나는 <오구실> 같은 이야기를 아끼고 이런 재미와 이런 위로를 사랑한다. 갈 길이 구만리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놓지 못하는 마음을 독려하는 이 드라마처럼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건네는 글을 쓰고 싶다.
주춤하고 시들했던 내게 또 한번 애쓸 구실이 생겼다.
이왕이면 ‘오구실’로 모두 행복해져라
<오구실>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전히 일과 관계, 사랑에 있어서 삐그덕대고 서툴지언정 씩씩하게 제 갈 길 나아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정말로 괜찮다고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극적인 변화가 매일 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잔잔한 일상의 폭 안에서 애쓰고 진솔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우리가 사는 모습과 가까이 닿아 있어서 큰 위로가 된다. 서툴면 서툰대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꼭 행복해야 할 필요도 없다. 이왕이면 덜 힘들었으면, 덜 지쳤으면, 어제보다는 조금 더 괜찮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래의 주문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커피소년-행복의 주문
버스에서 택시에서
자가용안에서
주방에서
혹은 야근하고 있나요
어깨는 축 쳐지고
다리는 쑤셔오고
머리는 천근만근
마음도 누르는데
내 속삭임으로
행복의 주문 걸어
그대 맘을 밝혀줄게요
따라하면 돼요
카운터줄게요
어렵지 않아요
단순하긴해도
힘이 될거에요
행복의 주문
하나 둘 셋 넷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우울한 사람도
지친 사람들도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