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후계동에서 서성이다가 [드라마]

글 입력 2023.02.0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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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갈망이란게 차라리 있으면 좋으련만 소박한건지 갈망을 드러내볼 용기가 없는건지 내면의 눈으로 최대한 솔직하게 바라본 스스로의 마음에는 큰 갈망이랄 것이 없다. 찾아보면 애매한 정도의 인정욕구 같은게 다라서 허탈해질 정도로. 그래서 아버지도 오랫동안 이런 나를 답답해 했었더랬다. 친구들을 만나시면 '우리 애들은 욕심이 없다고' 아쉬운듯 웃으시며 얘기하곤 했지.

 

이런 생각을 올해 초에 슴슴하게 하다 어쩌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게 됐다. 세상에, 이런 드라마였다니. 사실 완전하게 다 보지는 않았다. 몇화는 클립으로, 몇화는 전체를 봤으니 빼먹은 감상이나 모르는 내용이 있을수도 있다. 이제부터 다시 찬찬히 보며 다 보면 그 때 다시 돌아와서 글을 더해야지.

 

드라마를 보며 소소하지만 확실했던 나의 아저씨 열풍을 이해하게 됐다. 나의 아저씨를 보고 있노라면 나에게도 내 삶에게도, 타인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싶다.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말해주는 아이유와 이선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리고 아, 나도 정말 이렇게 살아보았으면. 욕심이 생겼다면 후계동 사람들처럼 사는 것.

 

요즘 사람들은 인간인 서로의 존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위협을 가할수 있는 인물, 잠재적 가해자, 잠재적 또라이, 잠재적 싸이코패스 등… 아무리 가까이 사는 이웃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예외가 아니기는커녕 얼굴도 모르고 사는 것이 부지기수니. 이런 현대인은 똑똑하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악의 다양한 분화방식을 목도하며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하루하루 삶에서, 뉴스에서 꾸준히 배워왔다. 이런걸 다 보고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바보지.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복받은 사람이어라, 믿는 그 사람은.

 

드라마가 전개되는 곳은 후계동. 여기는 아이유도 살고, 이선균과 그 부인 이지아도 살고, 이선균의 형제들과 어머니도 살고, 홀로 식당을 운영하는 오나라, 후계동 조기축구회의 회원들도 산다. 축하할 일이 있으면 오나라의 식당에서 모이고, 이선균이 어디를 맞고 오는 날이면 나이든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다같이 뛴다. 때린 사람을 혼내주려고. 그리고 그들은 상처받은 아이유를 그들의 방식으로 그들에게로 거둬준다.

 

특별할것 없는 인간들이 서로를 생각해준다. 서로를 걱정해주고, 대신 화내주고 울어주고 농담까먹기를 하고…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위협을 가하는 것도 아니며, 어느정도의 간격을 유지한채 무신경한 에일리언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를 지탱해주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나의 아저씨의 오래된 그러나 새로운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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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이런 공동체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지아는 가족, 친구, 후계동에게 남편 이선균을 뺏겼다는 인상을 받는다. 항상 남편이 ‘전적으로’ 자신의 편이 였다고 느낀 적이 없음을 실토한다.

 

고백하자면 나도 이지아의 마음을 느낀적이 있다. 나에게는 연인이 있는데 연인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은 연인을 사랑한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고 모남없이 부대끼며 관계하는 법을 배운 티가 난다. 누구든지 일대일로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런 그가 신기한다.

 

많은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사는건 힘들어. 많은 사람들 속에 있자면 미묘해지는 관계역학에 부대낌을 떨쳐내기가 어려워서, 싫어하는 내 스스로의 모습이 튀어나오는데 그 모습을 견딜수가 없어서. 그래서 이때는 이런 이유로, 저때는 저런 이유로 밖으로 튀어나가는 내 연인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도 언젠가부터는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방식으로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사실 모르지 않지. 끊어내고 피하는 방법으로는 온전한 어른의 척도에 영영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유가 큰 일을 겪자 이선균의 큰형이 힘을 쓴다. 고이 모아두었던 돈을 쓰고 후계동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쓸쓸했던 공간이 메워진다. 신세를 갚는다고 하는 아이유에게 한 후계동 아저씨가 말한다.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것 아니에요.’

 

유투브 뉴스 피드를 오르락 내리락 하면 최근에는 2-3분 사이의 짧은 뉴스가 많이 보인다. 어떤건 끔찍하고 어떤건 탄식이 나온다. 나는 미움을 느끼고 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판하는건 쉽고 놀라게 하는 구석이 없어 지루하다. 다 맞는 말, 합리적인 소리라서.

 

가끔은 인간극장 같은 뉴스를 본다. 지하철에서 진상을 부리는 아저씨를 안아줬다는 청년의 뉴스나 아픈 아이를 차에 데리고 운전하다 자신의 차를 박은 젊은 엄마를 꼭 안아줬다는 아주머니의 뉴스나. 반대로 해도 욕을 일을 먹을 일은 없다. 진상을 부리는 아저씨를 깔끔하게 빗겨나가거나 볼멘소리 하나를 던져도, 또 내 차를 박은 차주와 깔끔하게 명함을 나누고 자리를 뜬다해도. 평범한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기어이 타인에 대한 경계를 넘고 가까이 다가가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후계동 마을의 사람들의 인생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현실과 마찬가지로 문제 많고 슬픔 가득한 모습들이다. 유일하게 현실과 다른 것이라면 그 마을에서 사람들이 맺고 살아가는 그 관계일터인데, 인간극장 같은 뉴스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또한 아예 유토피아적인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 같이사는 우리를 위해 너그럽기를 힘쓰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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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와 언니를 보며 우리는 결벽증 환자 같다고, 받고 나누고 도움을 받고 또 도와주며 살라고 하셨다. 이 가르침을 잘못받아 요즘에는 아주 뻔뻔해지는게 아닌가 싶지만. 부모님의 어휘를 따라, ‘결벽증’ 환자의 증상이 때때로 재발하면 스스로에게 무척이나 엄격해지는 모습을 발견한다. 작은 실수들과 어눌함, 서툼에 끊임없이 자책한다.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조금 더 경계를 문대고, 문지방을 넘나들고, 서툰 실수를 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살았으면 좋겠다. 너그러움은 매끈한 대리석보다는 찬찬히 걸어가는 돌길위에 있다고.

 

나의 아저씨로 새해를 시작했다. 후계동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고, 좋은 염원을 종이학처럼 하늘에 띄워날린다. 삶이 변변찮을때면 나의아저씨와 맥주를 한잔 기울여야지, 언제라도 돌아가 펴볼수 있는 책갈피가 생겼다.

 

 

[남영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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