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스핀오프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 종영했다.
예상보다 아쉬운 성적이긴 했지만, 자체 최고 시청률 8.1%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의정 갈등 등 여러 외부적 요인으로 방영 시기가 지연된 점은 아쉬웠으나, 한 명의 의학드라마 덕후이자,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팬으로서의 감상을 정리해 본다. 내 감상에조차 명확히 호불호를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드라마이니만큼 솔직한 생각들을 나열해 봤다.
해당 드라마는 넷플릭스, 티빙 등 OTT 서비스를 통해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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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오피니언은 드라마에 대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슬기로워지는 중입니다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스틸컷 ©tvN
<언젠가는 슬기로운 전공의생활(이하 슬전생)>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배경이 되었던 율제병원 본원이 아닌, 종로에 있는 분원에서 일어나는 전공의들의 일상을 다룬 드라마다.
기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연출을 맡았던 신원호 PD는 이번 시리즈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젊은 버전이 아닐까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슬전생은 이전 시리즈와는 전혀 다른 결의 이야기였다.
‘슬기롭다’의 사전적 의미는 ‘슬기가 있다’로, 여기서 ‘슬기’란 ‘사리를 바르게 판단하고 일을 잘 처리해내는 재능’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았을 때는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저절로 그 의미가 느껴졌던 반면, 이번 <슬전생>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슬기롭다’의 의미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교수나 그에 준하는 위치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자기 일은 당연히 여유롭게 해내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거나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위치가 되어야 비로소 슬기롭다고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제목이 ‘언젠가는 슬기로워질’ 전공의생활이라는 건 아직 슬기롭지 않다는 뜻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느꼈던 안정감과 효능감이 부재한 이유는 아직은 슬기롭지 못한 그들을 보는 것이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위태롭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인 것이다.
극적인 연출과 불편한 감정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스틸컷 ©tvN
슬전생이 방영 초기 반응이 좋지 않았던 그 이유 중 하나가 주인공에게 느끼는 ‘불편함’ 때문이었다.
모든 인물에게 ‘쟤 왜 저래’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자기 발로 들어왔지만 그만두고 싶은 티를 팍팍 내는 이영, 공감 능력은 둘째 치고 눈치가 0에 수렴하는 사비, 허영심이 가득한 남경, 일머리가 없어 선배를 괴롭히는 재일. 작가가 인지하는 'MZ 의사’의 전형이란 이런 것인가 의문을 품게했다.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이 불편함이 극적인 연출을 위한 대비였음을 부분적으로 납득할 수 있었지만, 이 연출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삶은 ‘달리기’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달리기>, 노땐스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삶은 결국 ‘달리기’와 같았다. ‘끝’이 있다는 것, 그것은 단지 오프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당직이라는 개념을 모를 때는 밤을 새우고 그 다음날에는 쉬는 줄 알았지만, 그대로 정규 근무를 소화하는 거였다. 최소가 24+8+α = 32+α, 일이 끝나지 않으면 퇴근도 없다. ‘끝’은 쉼이 아닌 다음 다른 근무로의 연장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이 있다’는 건 결국 “언젠가는 슬기로워질 끝”이 있다는 응원으로 들린다.
매주 새로운 회차를 기다리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주중에 리뷰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미 전공의생활을 겪은 전문의 선생님들의 리뷰에는 당시 힘듦에 대한 회포와 더불어 아무리 원한도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의 설렘에 대한 동경이 담겨 있었다. 드라마에 비할 바는 아닐지라도 나름의 흑역사가 있었다.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스틸컷 ©tvN
드라마 속 비유가 현실과 1:1로 대응하지는 않겠지만, 잘못되면 윗사람 탓 아니면 시킨 사람 탓을 할 수 있는 건 정말 잠깐이다. 그렇다고 진짜로 맘 놓고 실수할 수는 없겠지만, 실수해도 이런 위로를 들을 수 있는 날이 길지 않다. 실수와 불안으로 포장된 설렘의 특권도 언젠가는 ‘진짜 끝’이 오기 마련이다.
그 시절 감성 재현에 진심인, tvN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스틸컷 ©tvN
tvN의 특기 그 시절 감성 재현하기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다.
엄재일이 본격적으로 의대 준비를 하기 이전에 활동했던 ‘하이보이즈’의 극 중 존재감이 남다르다. 그 시절 2~3세대 아이돌 감성을 제대로 구현해 내며, 퍼포먼스와 노래 모두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여전히 건재한 헬로우걸(하이보이즈 팬덤명) 성원에 힘입어 지난 22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 출연했다.
더 즐겁고, 무해한 드라마를 기다리며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은 마냥 애정할 수 없는 드라마였다. 두 달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주말의 적적함을 달래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맘 편히 볼 수만은 없는 장면과 현실에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의 고민과 고생이 담긴 한 편의 완성된 작품은 여전히 그 자체로 감동이다.
▲tvN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 스틸컷 ©tvN
새로운 얼굴을 주연으로 세우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제작자가 있다는 것도 콘텐츠 양산의 피로함을 환기해준다. 이번 작품을 통해 메인 연출을 맡은 이민수 PD와 김송희 작가에게도 이번 작품이 한 걸음 그 이상의 도약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새로운 작품을 새로운 마음으로 여는 즐거움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