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의 창작 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5월 18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막을 내렸다.
광복 80주년을 기리고 시인 윤동주의 서거 80주기를 추모하며 새롭게 돌아온 이번 공연은 실제 윤동주 시인의 시를 기반으로 제작한 넘버와 다양한 상징적 연출을 통해 일제 강점기 저항 시인으로서의 윤동주 시인을 부각한다.
이미 여러 차례 감동적인 무대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본 작품은 이번 공연을 통해 관객들에게 더욱 새로워진 무대로 다가가고자 했다.
시대의 청춘, 시인 윤동주를 무대 위에 다시 세우다
극은 일제의 국가 총동원령이 시행된 1938년 경성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대학생 윤동주는 송몽규, 강처중, 정병욱과 함께 조선어 강의를 들으며 시를 써 내려간다. 극 중 가상의 인물 이선화와의 만남은 그에게 내면의 위안을 제공하며, 이후 일본 유학과 체포, 교도소 수감으로 이어지는 일대기를 담담하지만 강렬하게 그린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청년’ 윤동주에게 집중한다. 1막에서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윤동주, 송몽규, 강처중의 모습이 그려진다. 셋은 평범한 학생으로 대학 생활을 보내던 중, 갈수록 심해지는 일제의 탄압에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특히 강처중은 가장 적극적인 형태로 항쟁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시를 쓰는 윤동주와 극명히 대비되는 태도를 취한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그런 윤동주와 주변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 윤동주라는 인물의 특성을 부각한다.
극 중 강처중은 윤동주에게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항쟁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윤동주는 펜만을 들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한다. 무기도 맨주먹도 아닌 ‘펜’을 쥔 윤동주의 손이, 본인에게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개인을 계속해서 흔든다. 흔들리는 가운데 중심을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약 80년 전 이 땅에서 청춘을 보내던 윤동주 또한 그렇게 끝없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극에서 제시하는 ‘나다움’은,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많은 고민을 던졌다.
‘삶이 쓰다’는 고백, 펜으로 쏘는 저항
작품은 총칼을 든 동지들과의 갈등 속에서 ‘펜을 드는 저항’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새긴다. 윤동주는 송몽규와의 우정 속에서 잠시 안온함을 느끼지만, 결국 ‘시를 쓸 수밖에 없는’ 내면의 에 다시 귀를 기울인다.
특히 2막 후반, 생체실험에 시달리다 결국 달을 향해 절박한 심정을 담아 외치는 장면은 윤동주가 끝내 외면하지 못한 자기 고백이자, 고통을 시로 승화시키는 예술가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달을 쏘다’는 이러한 부끄러움을 끌어안고 시를 쓰는 윤동주의 복합적 감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2막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윤동주는 처절한 심정을 담아 ‘달을 쏘다’를 노래한다. 무사의 마음으로 달을 향해 외치는 그의 모습은, 자신의 부끄러움에 짓눌린 청춘의 절규처럼 다가온다. 윤동주에게 달은 시대의 억압이자 내면의 부끄러움을 더욱 선명하게 비추는 상징이다. 그런 달을 향해 ‘쏜다’는 행위는 시인이 느끼는 무력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통쾌하다
부서지는 달빛을 보니
(중략)
오늘도 내일도 나는 무사의 마음으로
너를 쏜다
시를 쓴다
삶이 쓰다
달을 쏘다
- '달을 쏘다' 中
그의 등 뒤로 친구이자 동지들의 환영이 등장하고, 그들은 시 한 편을 써보라 외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윤동주에게 고통을 견디는 방식이자, 청춘을 불사르는 행위였다. 결국 달을 향한 화살은 세상과 타협하지 못한 양심, 끝내 부끄러움을 외면하지 못한 시인의 최후의 선택이었다.
적극적인 저항과 예술 행위의 대비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일, 혹은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런 의미에서 윤동주가 써 내려간 ‘부끄러움’은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
윤동주의 시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의 언어는 여전히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오늘의 청춘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예술이란 어쩌면 삶의 전선에서 고투하는 이들에게 숨을 불어넣음으로써 그 의의를 지닐지 모른다. 스스로의 양심을 마주하며 ‘부끄러움’을 잊지 않고, 시라는 예술을 통해 진실한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모습. 그것이 우리가 윤동주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유일 것이다.
조금의 아쉬움, 그럼에도
연출은 윤동주의 시를 기반으로 상징적 이미지와 무대 효과를 적극 활용하며 서정성과 상징성을 함께 추구한다. 붉은 조명 아래 배경이나 교도소 장면에서의 간접적 묘사는 일제의 폭압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독특한 표현 방식을 보여준다.
다만 윤동주의 고뇌와 예술혼이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졌다면,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존재로서의 절박함이 더욱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저항 시인 윤동주의 면모를 강조하면서도, 인물의 입체성은 다소 옅게 느껴졌다.
또한, 시를 다루는 작품 특성상 시 낭독이나 노래 장면에서의 대사 전달력이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윤동주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며 관객에게 그를 다시 만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하던 청년들의 모습은 오늘의 청춘과도 맞닿아 있다. 시인 윤동주의 삶은 지금의 청년에게도 수많은 질문을 건넨다. 아픔을 느끼지 않는 자는 시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는 무엇인가.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 시를 통해 저항하던 한 청년 윤동주의 모습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려 애쓰는 오늘의 청춘에게도 짙은 울림과 깊은 고민을 선사한다.
본 작품은 오는 7월부터 8월까지 익산, 강릉, 김해를 포함한 지역 투어를 통해 관객과 다시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