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며 살아가고 있는 나는 ‘토지’나 ‘소유’ 같은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아파트 값이 오르네 내리네 할 때마다 부동산 뉴스엔 관심이 가지만, 그것이 정의로운가, 공정한가를 고민한 적은 없었다.
그러던 중 톨스토이의 『거대한 죄』를 접했다. 처음엔 낯설고 어려웠다. 19세기 러시아의 토지 문제, 혁명가와 사상가들의 논쟁이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곱씹으면서 알게 됐다. 이건 단지 땅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구조와 윤리에 대한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톨스토이에 대한 정보를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토지를 가진 자, 일하지 않는 자
『거대한 죄』에서 톨스토이는 강하게 주장한다. 일하지 않는 자가 토지를 소유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거대한 죄라고.
그는 이 문제를 단순한 사회적 불평등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죄의 하나로 규정한다. 노예제도, 인신공양, 사법 고문처럼 과거엔 당연시되었지만 지금은 야만이라 여겨지는 제도들과 동등한 악으로 토지 소유제를 지목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게 정리된다. 현재의 토지 소유제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이 정작 그 땅의 수확물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막고, 일하지 않는 지주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렀다. 도시에서 월세나 전세로 살아가며, 월급의 대부분을 주거비로 지출하는 현실이 문득 겹쳐졌기 때문이다. 일하지 않아도 집값이 오르는 이 구조, 그 안에서 우리가 감내하는 불안은 톨스토이가 말한 구조적 불의와 다르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단순히 현실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토지 문제에 대한 여러 해결책을 검토하고, 그중에서도 헨리 조지의 '토지단일세'를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한다.
토지는 누구의 창작물도 아니므로 누구에게도 전유될 수 없고, 따라서 그 가치를 공적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제도는 토지를 몰수하지 않고도 불평등을 줄이고, 일하지 않는 자가 토지로 이익을 얻는 구조를 깨뜨릴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우리가 무엇을 소유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개인의 권리인가에 대한 질문은 당장 내 삶과도 연결된다. 내 집 마련이 인생 목표가 되는 사회에서, 과연 소유가 정의로운가?
헨리 조지와 톨스토이는 '소유'가 아니라 '이용'과 '기여'라는 관점에서 토지를 바라보자고 말한다. 이는 단지 제도만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보는 윤리의 틀을 바꾸자는 제안처럼 느껴졌다.
이 책이 가장 낯설었던 지점은, 톨스토이가 제안하는 비폭력적인 아나키즘, 즉 기독교적 무정부주의였다.
그는 정부나 법, 군대와 같은 제도를 '합법화된 폭력'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복종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 말을 서울에 살며 사회 규범을 따르며 살아가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톨스토이는 어떤 변화도 폭력으로 이룰 수 없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혁명조차 또 다른 억압의 시작일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바로 사람들의 의식 변화다. 정부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지 않고, 윤리와 신앙,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삶.
처음엔 공허해 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비폭력’과 ‘자발성’의 힘을 곱씹으며, 나는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는 법과 제도에 대한 감각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톨스토이의 머릿속을 상상하며
『거대한 죄』를 읽는 동안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 책이 단순한 분노의 기록이나 개혁 제안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톨스토이는 자신이 평생 고민한 윤리, 종교, 정치, 경제 문제들을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엮어 제시한다.
토지 문제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뿌리를 개인의 양심과 공동체 윤리에 두고, 제도 비판 속에서도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 도덕적 해법을 찾는다. 그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권력도, 제도도 아닌 인간의 내면과 삶의 태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사회 개혁론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고차원적 사유 구조처럼 느껴졌다.
읽는 내내 그의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토지 문제, 국가와 종교, 무저항과 기독교 윤리, 그리고 삶의 의미까지 이 모든 것이 톨스토이 안에서 어떤 구조로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그림처럼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단순히 생각을 전달받는 책이 아니라, 사고의 틀 자체를 바꾸도록 요청하는 책이었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도 한참을 생각하게 만든다.
평범하게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는 내게도, 지금 이 순간 여전히 이어지는 구조적 불의의 문제를 어떻게 윤리적으로 바라보고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어렵지만, 그 질문을 계속 붙잡고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톨스토이가 진정 바랐던 변화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