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플라잉의 라이브 공연을 처음 본 순간이 선명히 기억난다. 그들의 가사대로, 순간은 찰나였지만 무섭도록 강렬했다. 진정성과 기세로 좌중을 압도하는 이 팀은 그야말로 ‘무대로 말하는 팀’이었다.
유려한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엔 이 팀은 꽤 날것에 가깝고, 또 지극히 뜨겁다. 리더 이승협의 손끝에서 탄생한 대부분의 곡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드럼·베이스·기타·보컬이 라이브 무대 위에서 치열하게 그 감정을 구현해 낸다. 감정을 쏟아내는 듯한 특유의 거친 분위기는 상당히 중독적이다.
오는 5월 28일 발매되는 정규 2집 ‘Everlasting’ 역시 이들의 라이브 무대만큼이나 묵직하고 깊이 있는 감성과 세계관을 완성한다. 흥미롭게도 ‘영원’이라는 서사는 이미 2023년 발표된 곡 ‘Blue Moon’에도 담겨있었다. 앨범의 제목과 가사, 커버 이미지를 통해 연결되는 엔플라잉의 '영원'은 이들의 서사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영원 하나. Blue Moon
엔플라잉만의 영원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Blue Moon'이 상징하는 바를 짚어야 한다. ‘블루문’은 쉽게 말해 자주 보기 힘든 희귀한 달이다. 달의 공전 주기와 위상 변화 주기, 달력의 날짜 수의 차이로 인해 약 2.7년에 한 번씩 한 달에 두 번의 보름달이 뜬다. 이때 두 번째 뜬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한다.
‘옥탑방’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엔플라잉의 ‘Blue Moon’은 몽환적인 가사와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데뷔 8주년을 맞이해 팬들에게 선사하는 곡인 만큼, ‘순간’, ‘영원’과 같은 특유의 낭만적인 정서가 돋보인다. 앨범 커버 이미지에는 그런 찰나의 순간을 상징한 ‘Blue Moon’과, 영원을 상징하는 ‘만년설’이 함께 그려져 있다. 이 '만년설'이 바로 5월 28일 발매될 정규 2집 앨범의 타이틀 곡 제목이다.
푸르른 날의 눈부신
밤 향기에 빠져서
아리따운 너의 맘과
영원을 보고 싶어
이 풍경 속에 홀리듯
내 몸이 잠겨 버리게
푸르른 달아
텅 빈 그대 맘을 가득 채워 줘
- N.flying, 'Blue Moon' 中
순간이 영원히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토록 깊게 와닿는 이유는, ‘Blue Moon’의 서정적인 가사와 리듬감 있는 멜로디가 균형 있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달빛, 꿈,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은 화자의 간절함을 더욱 극대화한다.
소중한 순간은 블루문처럼 희귀하고 또 금세 휘발된다. 그 순간이 멈춰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은 지나치게 간절해서, 현실이 아닌 낭만의 영역에 놓인다. 찰나의 순간이 텅 빈 마음을 가득 채워주기를 바라는 낭만. 이때까지만 해도 ‘Blue Moon’은 어쩐지 청춘의 순간에서만 바랄 수 있는 비현실의 세계를 꿈꾸는 것처럼 보였다.
영원 둘. FULL CIRCLE
그런 낭만의 달이, 완전한 원형으로 차올라 현실의 밤을 밝혔다. 엔플라잉은 올해 5월, 10주년 콘서트 '&CON4 : FULL CIRCLE'을 개최했다. 영(0)과 원(1)이 만나 완전한 숫자 10을 이루듯, 데뷔 10주년을 맞아 다섯 멤버가 완전체로 참여한 이번 콘서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한 원’이었다.
누군가 엔플라잉의 콘서트가 어땠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역동적인 에너지의 폭발’이었다고 답할 것이다. 3시간 남짓한 시간 속에서 멤버들과 팬들은 함께 뛰며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들을 감성 밴드로만 알고 있었다면 무대 위 거칠고 선명한 에너지에 적잖이 놀랄 것이다. 모든 수록곡이 명곡이라, 이들의 진짜 색깔은 라이브 무대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날 엔플라잉은 특유의 두드러지는 강렬한 에너지와 러프함으로 자신들만의 완전한 원형을 정립했다. 이들은 자칫 놓쳐버릴 수 있는 작은 낭만을 거대하고 강렬한 악기의 소리로 증폭시켰다.
작은 별들이 모여 만든 별의 궤적은 결국 원의 형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Shooting Star’라는 곡으로 콘서트의 서막을 열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엔플라잉이라는 팀의 정체성으로도 느껴진 록 스타일의 애절한 기타 리프는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온몸으로 맞는 기분을 선사했다. 실제 콘서트 영상을 첨부하고자 했으나, 촬영 상태가 좋지 않아 본 글에는 '&CON3'의 라이브 영상을 첨부했다.
떨어지는 별똥별의 시선과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점이 교차하는 ‘Shooting Star’의 가사는 무대를 통해 더욱 웅장하고 애절하게 다가왔다. 유성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존재가 누군가의 기억에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름다웠던 ‘Blue Moon’이 영원하길 바라는 감정과 맞닿아 있었다.
무대 중앙의 둥근 메인 오브제를 바라보다 문득, 금세 사라지고 말 블루문이 아닌 오래도록 하늘에 머무를 둥근 달이 떠올랐다. 콘서트 메인 오브제로 자리한 원형에는 이들의 10년이, 팬들의 염원이, 앞으로의 희망찬 결의가 얽혀있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그 원처럼, 이들의 음악과 여정이 끊임없이 이어지길 바라는 멤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원 셋. 5월의 만년설
‘Shooting Star’ 속 별똥별은 또 다른 누군가의 별이 되어 사라지지만 우리는 여전히 밤하늘을 반짝이는 별들을 볼 수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남은 별들은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별자리를 수놓는다.
5월 28일 발매 예정인 2집 정규 앨범 ‘Everlasting’의 타이틀 곡 ‘만년설’에는 그렇게 서로의 점을 이어 나가서 새로운 별자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영원을 다짐하는 엔플라잉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미지 출처: 엔플라잉 공식 홈페이지 / FNC 엔터테인먼트
‘만년설’은 얼핏 녹지 않는 눈을 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온이 낮은 산 위에서 눈이 녹는 양보다 내리는 양이 많아 항상 덮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만년설이 존재하는 설산 위는 눈보라와 설인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의 삶도 설산처럼 춥고 고독한 순간을 반드시 지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사랑은 때론 거센 풍파에 휩쓸려 길을 잃기도, 아주 작아져 마치 사라진 듯 보이기도 한다. 엔플라잉은 그런 사랑의 본질을 잘 알고 있다. 현실의 세계에서 사랑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만년설'의 가사를 통해 서로가 별자리로 이어져 있다면 두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내게 있다면
몇 번의 계절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눈처럼 꽃처럼
너는 본 적 없는
진정한 행복을 주고 싶어
- N.flying, '만년설' 中
진정한 사랑이란 어쩌면 결코 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녹지 않도록 매 순간 더 큰 사랑을 건네는 일인지도 모른다. 5월의 계절 속에서도 눈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이들의 간절함이 있다면, ‘영원’은 더 이상 추상이 아닌 현실의 일이 될 수 있다.
'Eternal'이 아닌 ‘Everlasting’으로 표현된 앨범 제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verlasting’은 시공간을 초월한 초현실보다 시간이 흘러도 지속되는 현실 속 영원에 가깝다. 즉, 이들은 영원을 단지 꿈꾸는 것이 아닌 스스로 구현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고정불변의 완전무결한 사랑을 좇기보다는, 위태롭고 두려울지라도 이 땅에 발 딛고 서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어가자는 메시지. 그렇기에 거친 눈보라와 두려운 설인을 마주하는 가혹한 설산에서도, 블루문 같은 찰나의 아름다운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엔플라잉의 간절함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설득력을 지닌다.
게다가 이번 앨범에서 역시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완성도 높게 소화해 내는 엔플라잉만의 강점이 잘 드러난다. 서정적인 곡부터 리듬감 있고 강렬한 스타일의 곡과, 벅차오르는 청량한 무드의 곡까지. 다양한 장르의 수록곡들이 촘촘히 배치돼 있어, 앨범 전체를 감상할수록 또 다른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 같은 기대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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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화면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익숙해진 시대에 오직 악기와 목소리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란 참 어렵다. 그런 시대에서도 엔플라잉은 일상의 소소한 감정과 순간들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언제나 무대를 진정성 있게 마주해왔다. 그들의 음악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에 닿아 분명하고 특별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꾸준히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증명해 온 이들은, 어느덧 데뷔 10년을 맞아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이며 하나의 거대한 별의 궤적을 완성했다. 10주년 콘서트를 기점으로 이제는 다섯 멤버가 더욱 광활한 원을 그려나갈 새로운 장의 서막이 올랐다.
영원의 세계에서 무한대로 확장될 원의 반지름은 누구도 그 크기를 예측할 수 없다. 5월 28일 발매 예정인 정규 2집 앨범 ‘Everlasting’은 그 첫걸음이자, 이들의 진정성과 내공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결정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