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과 청년의 차이를 아는가. 소년은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청년은 자신이 이미 어른이라고 믿는다. 그럼, 청년을 넘어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사실, 어른이 되는 결정적 사건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 보이스카우트 단원인 '그래스호퍼'와 '에이스'를 보라. 어른은 물론이거니와 청년도 아닌 이 어린 소년들은 아무래도 어른이 되는 방법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손에 침을 뱉고, 줄을 타고, 병정놀이를 (물론 착한 편에서) 훌륭히 수행하다 보면 '국가 공인', 적어도 '린든 B. 존슨 공인' 남자가 되는 것이라고 에이스는 믿는다. 수영도 잘하고, 보이스카우트 배지도 빽빽하게 모아놓고 심지어 하모니카도 잘 부는 그는 정말이지 '에이스'다. 보이스카우트가 정한 진짜 남자에 가장 가까운 소년은 아마 그일 것이다. 국가가 부여한 어른 남자라는 길에는 늘 신화가 있다. 피를 흘리고, 무언가를 통과하고, 마침내 신 혹은 왕에게 무언가를 건네받기까지. 그러나 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에서 피를 흘린 소년들은 대체 무엇을 받았나.
병정놀이는 전쟁이 되고
어른이 되고 싶은 소년들에게는 규칙이 있다. '다른 남자의 손을 잡지 말 것, 정말 위급상황이 아니라면.'
"Never hold hands with another man (unless it’s an extreme circumstance)."
- Ace의 작중 대사
하지만 예외란 언제나 찾아오는 법. 에이스와 그래스호퍼는 교관의 숙소 안으로 숨어 들어가 들킬 위험에 처했을 때, 그리고 에이스가 총을 맞은 비가 오던 그날 두 손을 꼭 마주 잡는다. '이건 위급상황이니까.' 생각하며. 전자는 보이스카우트 시절의 장난이라면 후자는 정말이지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다. 혈기 왕성하고 엉뚱한 초반의 보이스카우트 시절은 지나가고 어느덧 소년들은 전쟁의 한가운데로 던져진다.
그래스호퍼의 중간중간 끊기는 어눌한 발음은 이 전쟁 상황의 현실감을 더 떨어뜨린다. 미숙한 어린아이가 쥐고 있는 총이 진짜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들은 계속해서 병정놀이를 해왔기에 어디부터가 진짜 전쟁인지 혼란스럽다. 처음에는 분명 전쟁놀이였는데. 무생물에, 동물에 총을 겨누던 표적 연습은 어느새 지나가는 어부가 그 대상이 된다.
그래, 그들은 그리도 원하던 어른이 되었다. 총을 들고, 누구보다 많이 적군을 죽이고, 맥주를 마시며 무용담을 말할 줄 아는 남자. 에이스는 그렇게 국가가 주입한 남자다움을 수행했다. 이 군대식, 보이스카우트식 인재는 동료가 감염탓에 죽어가도 그저 잔을 들고 그를 위해 건배하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다. 배운 것이 그런 '멋진' 굴하지 않는 용맹함 뿐이기 때문이다.
어른 되기 신화와 신 없는 세계
그 장대같이 비가 오던 날, 에이스 본인도 죽음을 실감한다. 그는 총을 맞고 쓰러지며 그래스호퍼에게 유언 두 줄을 남긴다.
“엄마에게는 저녁 못 먹는다고 말해줘.”
“그리고 린든 B. 존슨이 내 이름을 꼭 알게 해줘.”
소년은 남자로 죽었나? 글쎄, 모르겠다. 어른이 되는 기준이 피를 많이 흘리고 또 타인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라면 에이스는 어른이 된 채로 죽었다. 흡혈과 성인식은 다른 소년, 그래스호퍼가 극 전반에 걸쳐 조금씩 들려주는 어른 되기 신화에 등장한다. 어른이 되고 싶던 소년은 마녀에게 어른이 되는 방법을 묻는다. 마녀가 말한다. 저 멀리 높디높은 절벽을 넘어 호수에 들어가 거머리에게 피를 빨리면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소년은 끝없는 절벽을 오르고, 오르고, 또 기어올라 마침내 호수에 도달한다. 풍덩- 소년은 몸을 담갔지만 그곳에 마녀가 말한 거머리는 없었다. 단지 시간이 흘러 소년의 얼굴은 자글자글해져 이미 어른이 훌쩍 넘어버렸을 뿐. 하지만 어른이 된 모습을 보여줄 부모님은 사라지고 없었다.
전쟁터보다도 오래된 이 '도전-시련-귀환'이라는 우화의 구조는 적어도 그래스호퍼의 이야기에서는 미완성이다. 소년은 마녀의 시험에 응하였지만 그의 귀환을 맞이하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얼굴에는 세월처럼 흙 자국이 번지고 거머리 같은 적군들에게 피를 많이도 빨렸지만, 그가 영웅이 되었음을 축복해 줄 린든 B. 존슨은 에이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그 소년은 어떻게 됐어?"라고 묻는 에이스에게 소년은 끝내 남자가 되었지만 아무도 그를 환영해 주지 못했노라고 말하는 그래스호퍼. 이야기 속 소년은 그 어른스러운 뒤틀림을 보아줄 증인이 없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에이스에게는 본인이 있음을 안심시켜 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년이 남자가 된 채 맞이한 마지막 순간에는 대통령도, 신도, 부모도 그의 곁에 없었지만 또 다른 소년, '그래스호퍼'가 그의 손을 꼭 쥐고 있었으므로.
편지의 수취인: 아버지, 신, 그리고 린든 B. 존슨
이 어른 되기 신화 속에서 어른이란 곧 영웅, 혹은 신이다. 그리고 에이스가 신 대신 린든 B. 존슨에게 기도를 올렸듯 린든 B. 존슨은 이 극에서 미국의 36대 대통령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신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정치적 대체물이다. 특히나 폭력적 남성성을 수행하는 군인 아버지를 둔 에이스에게 LBJ는 기도를 받아줄 대상이자 강한 남성성의 계보를 잇는 어른 남성의 이상적인 모델이다.
에이스는 어느 밤, 대통령이 탄 열차를 보기 위해 살금살금 집 밖을 빠져나간다. 그고는 울타리에 올라 커다란 트롬본을 들어 올린다. 대통령, LBJ가 탄 열차를 향해 숨을 고른다. 그가 마을을 지나가는 바로 그 순간에 혹시나 닿을지도 모를 연주를 하기 위해서. 한밤의 연주가 열차가 통과하는 굉음에 묻혀 철길 위를 떠돌다 그저 사라진다. 그래스호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자란 그래스호퍼는 희미한 아버지의 윤곽에 대통령의 얼굴을 포갠다. 그리고 사랑을 고백한다.
이 닿지 않는 꿈속의 고백, 한밤의 연주, 수취인 없는 편지는 같은 존재에게 향한다. 그러니까 아버지, 신, 그리고 린든 B. 존슨. 소년들이 생각하는 강한 어른 남성의 형상에게 보내는 인정을 받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A letter to LBJ or GOD, whoever reads this first'라는 원제에서 소년들은 둘 중 누구라도 빨리 이 움직임을 포착하기를 바랐을 테지만, 극을 보고 난 뒤 우리는 알 수 있다. 아마 둘 중 누구에게도 편지는 도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