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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당시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예술가들의 삶'을 글의 소재로 다루려 했던 의도 중에는 예술과 예술가 모두에게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화가 누구누구가 아침으로 뭘 먹었는지 따위에는 가벼운 관심만 갖고 말지만, 피카소가 말라가에서의 어린 시절에 먹었던 수프의 맛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기억하며 그 맛과 똑같은 수프를 찾지 못해 슬퍼해곤 했다는 일화를 알게 되면 흥미가 돋는다."] - '들어가며'에서 18p

 

학창 시절의 나는 반 고흐를 참 좋아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친구들이 넌 고흐가 왜 좋냐고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온갖 이유를 대고도 모자라서 흥미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친구들에게 반 고흐의 에피소드를 늘어놓기 일쑤였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반 고흐보다 좋아하는 것들이 더 많아져서인지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아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나는 왜 이렇게 유독 반 고흐라는 인물을 좋아했을까?

 

물론 그 당시 답했던 수십 가지의 이유 역시 유효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 이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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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를 준비했을 당시의 나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긴 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기대 이상으로 잘하려고 할수록 더 이상 좋아하는 일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리는 현실이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고흐가 자신의 동생이었던 테오와 나누었던 편지의 내용을 열심히 읽곤 했다. 내가 고흐와 같은 유명한 예술인이라는 건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처치에 놓인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삶의 궤적은 사람들의 지문이 각기 다른 것처럼 모두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통은 비슷한 것들에게서 찾아온다.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통해 위로를 받고, 깨달음을 얻는 것처럼 말이다.

 

["다하우에서 죽은 이들을 가리는 무시치의 작품이 그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과장된 표현도, 복수심이나 분노의 흔적도 없다. 무시치는 그저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그건 일어난 일이야. 일어나지 않았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일어나고 말았어." 사실을 전하지만 이야기로 풀어내거나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 '조란 무시치: 디하우 강제 수용소 이후의 창작'에서 294p

 

이 책은 시중에 나와 있는 미술이론서와 같은 책들이 아닌, 예술가들의 삶에 초점을 두고 쓰인 책이다. 또한, 예술가들이 겪은 단순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닌, 작가의 시선으로 담은 예술가들의 삶이 적힌 책이기 때문에 색다른 시선으로 여러 예술가를 만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는 작가가 사랑했던 여러 예술가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했던 반 고흐에 대해서, 그리고 잘 알지 못했던 다른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작품을 본 적도 없는 몇몇 작가들이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그중에서, 크리스티안 샤드가 인상 깊었는데, 그의 이야기를 알아갈수록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사람의 손을 보면, 그 사람의 행적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부위에 굳은살이 배긴 것을 토대로 그 사람의 직업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처럼, 의외로 손은 우리의 시간을 대변해 주는 역할을 하곤 한다.

 

이 책은 예술가들의 손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술가들이 그려낸 시간을 작가만의 애정 어린 시선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매력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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