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화성에 드리운 그림자’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퀸으로 불린 여성 SF 작가 ‘리 브래킷’에 의해 집필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현대 SF의 시조를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한 작가 메리 셀리로 보고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여성 SF 작가의 계보를 펼치며 미국 SF 황금기를 이끌어간 리 브래킷이 있었다.
리 브래킷은 ‘화성에 드리운 그림자’를 통해 여성 최초로 휴고상 최고작품상을 수상하며 할리우드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SF 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는데, 그만큼 이 작품에서는 남성 세계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하드보일드 장르에 대한 작가의 욕망이 담긴 거칠고 인상적인 문장들이 가득했다.
이제는 화성인이고 지구인이로 할 것 없이, 그저 가슴속에 똑같은 증오를 품고 같은 장벽으로 돌진하는 사람들 뿐이었다. (…)
“함께 피를 흘리면 다들 형제가 되는거야. 잠깐 만이라 해도…..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건 그 잠깐 뿐이야”
158P
소설은 영웅이자 노동자 계급의 호전적인 주인공 ‘릭’이 여러 이해관계 속 인물들과 일명 ‘회사’에 맞서 혁명을 일으키는 과정을 모험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협력 관계 사이에서 끈끈한 감정 교류 같은 것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출신과 소망을 가졌지만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잠시 힘을 합치고, 릭은 이를 이용하여 영웅의 길을 걷는다.
이 모험적인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낙관적인 에너지를 가져가며 다음 위기 상황에서 주인공 릭이 어떻게 그것을 타파할지 기대하게끔 만든다. 그러니까 위기 사건이 전개되어도 걱정이나 긴장 보다는 다음에 이어질 주인공의 행보에 대한 묘한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는 점이 굉장히 독특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개척은 좋지만, 그 뒤에 도로를 까는 건 힘들기만 한 일이야.
다른 사람이 해도 돼.
254P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 장르의 시초가 대공황 시기인만큼 이 시대의 작품들은 ‘자본가’를 악인으로 몰아 노동 계급이 이에 맞서는 구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대 작품들과 이 소설의 차별점이 있다면 주인공 ‘릭’의 서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낙관적인 에너지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동시대 대게 작품들에서 범인을 잡거나 악인이 물러기는 하지만, 불의는 그대로 남아있고 희망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릭’은 ‘회사’를 이끌어 가던 팰런과 스톰을 무너뜨려 개척을 이루어낸 이후에도 지배자 자리를 차지하기보다 순수한 모험가로 남기를 선택한다.
바로 이 부분이 부분적인 승리만을 거두거나 씁쓸하게 타협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타 작품들과 리 브래킷의 작품이 구분되는 점이다. 지구를 넘어 화성에서까지 이어진 착취와 학살의 고리를 끊어내며 영웅이 된 주인공은 이후 길을 까는 일은 다른 이들에게 맡겨둔 채 새로운 쟁취점을 찾아 나선다.
“사랑해요, 릭. 하지만 그것 때문 만이 아니에요. 난 화성을 사랑해요.
당신은 화성을, 사람들이 희망을 품을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어 줄 거에요.”
123P
리 브리캣의 소설이 또한 동시대 남성 작가들의 작품들과 다른 점은 여성 캐릭터의 위치와 표현에서 갈린다. 매력적이지만 탐욕스러운 팜므파탈로 자본가와 함께 응징 받아야 마땅할 캐릭터로 여성을 소비하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리 브래켓의 서사 속 여성 캐릭터들은 철저한 조력자이자 구원자로 등장한다.
작중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 메미요와 키라는 릭이 영웅의 길을 걸어가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메이요는 작중 초반 릭이 직면한 첫 번째 위기 상황에서 용감하게 나서 릭을 구했으며, 야생 동물 같던 릭의 깊은 내면 속에서 단단한 사랑의 힘을 발견하고 릭 자신조차 몰랐던 그의 영웅적 소명을 깨치게끔 도와 그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끔 이끌었다.
또한 키라는 여러 위기 상황들로 인해 취약해진 릭을 복돋고 치유하였으며 혁명을 위한 릭의 계획에서 상당 부분 중요한 역할을 맡아 활약하였다. 작중 후반에는 릭의 위해 기꺼이 죽음까지 불사하며 순수한 희생 정신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주인공을 이성적 연인으로서 사랑하기 보다 그가 이루어갈 미래의 가능성을 사랑했다는 점에서 또한 남다른 캐릭터성을 지닌다. 이들의 단단한 지지가 있었기에 릭은 온전한 영으로서 모험을 이어갈 수 있으며, 그의 업적을 통해 이어질 낙관적 미래에 이 여성들의 이름 또한 남을 것이다.